러시아 인형 대산세계문학총서 15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지음, 안영옥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가끔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다시는 중남미 환상 문학에는 손도 대지 않겠다고 했었는데 이 무슨... 이 작품을 호러적 성격을 띤 미스터리 작품으로 생각했다면 미쳤었다고 할밖에... 작가 이름이 아돌포 비오이 까사레스라는 점에 조금만 신경을 쎴더라면 실수하지 않았을 텐데... 아마 이 작품을 살 때 다른 작품과 착각을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읽고 뒤의 해설을 보고 더욱 가슴이 메어졌다. 이 작가가 탐정 소설도 썼다는데 왜 하필 이 작품이 출판되었단 말인가...

이 작품은 단편집이다. 그래서 조금 읽기 수월했다. 가브리엘 마르께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보다는 더 현실적이고 호르헤스의 <픽션들>보다는 더 간결하다. 마르께스의 작품은 단어 하나 하나에, 장면 하나 하나에 집중을 하며 읽어야 하는 고통을 감내하게 하고 호르헤스의 작품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 사이에서 한없이 미로를 헤매는 느낌을 갖게 한다. 하지만 까사레스의 작품은 그런 무거운 환상 소설에서 가볍고 이해하기 쉬운 현실적 환상 소설을 짧게 보여준다.  

[러시아 인형]은 환상 소설이라기보다는 한 사나이의 살아온 경험담을 통해 인생의 달콤 쌉싸름한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마르가리따 또는 철분 플러스의 힘]는 다분히 환상적인 진짜 환상 작품에 속하는 작품이다. 갑자기 사라지는 사람, 연어가 되는 사람, 철분의 힘으로 엽기적으로 돌변하는 아이가 등장하는 작품들이다. 아돌포 비오이 까사레스의 진짜 환상 작품은 이들을 읽을 때 느껴질 것이다. 환상적이면서도 현실적이고 호러적 분위기가 있어 좋았다. 이 중에서 [물아래서]는  연어로 변하는 인간의 이야기가 다소 황당하지만 작가의 상상력의 깊이와 사랑에 대한 통찰을 느끼게 해 준다. 그리고 [카토]에서는 당시 아르헨티나의 처해진 상황과 그 시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애를 한 연극 배우의 죽음을 통해 공감하게 한다. [어떤 냄새]는 다소 상징적이다. 환상적이라기보다는 몽환적 느낌을 주는 작품들이다. 가브리엘 마르께스, 보르헤스와 비교해 보면 가장 읽기 편한 환상 작품을 쓰는 작가가 아닌가 싶다. [패배한 사랑]은 현실적인 가벼운 환상 작품에 속하는 작품들이다. 환상 작품이라기보다 그저 일상적인 단상에 대한 이야기거나 지극히 생활적, 인간적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다.

아르헨티나라는 나라... 환상 소설이, 유독 현실적 환상 소설이라는 장르가 보편적인 이유는 그 나라의 역사와 시대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 나라가 백여 년의 짧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은 변화를 겪게 되면 이런 모습으로 변화를 모색하게 되지 않을까... 현실 도피이기도 하고 자신의 사상이나 감정에 대한 표현이기도 하고 어쩌면 비유나 작품을 통한 외침이었을 지 모른다. 다음 번에 작가의 작품을 출판할 때는 <가장 훌륭한 단편 탐정 소설>이나 <사랑하는 자, 증오하는 자>, <하늘의 음모>를 출판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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