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들어선 길에서 (구) 문지 스펙트럼 17
귄터 쿠네르트 지음, 권세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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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엉뚱한 책을 살 때가 있다. 그런 뜻밖의 책이 보물로 변할 때도 있다. 이 작품, 내가 처음 접하는 동독 출신의 작가 귄터 쿠네르트의 단편집이 그런 책이다. 엉뚱하게도 이 책을 추리 소설인 줄 알고 샀다. 다분히 환상적이고 추리적이고 사색적인 작품들이다. 읽으면서 그의 작품은 미스테리적 요소도 포함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SF적이고 그것을 통해 사회주의를 비판하고 인간의 모순을 피력한 것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작가의 대단한 필력을 느낄 수 있고 그만의 독특한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가장 충격적인 작품인 <가정 배달>은 살인자에게 살해된 자의 묘지를 배달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살인이란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작품이다. 단순히 총이나 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만이 살인인가. 어떤 사람은 사고로 죽인 사람의 시체를 받기도 하고 주인공은 어린아이를 죽인 경험이 있는 애인을 비난했다가 자살한 애인의 시체를 받는다. <가정 배달>은 최근에 읽은 단편 중에 최고로 꼽고 싶은 작품이었다. 나는 무의식중에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고 가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살인이 아닐까 하는 물음으로 반성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장례식은 조용히 치러진다>는 아내를 살해한 남자의 이야기다. 사고를 가장한 의도적인 살인, 교묘하고 계획적이지만 아무도 알지 못하는.

<아담과 이브>와 <바라던 아이>는 인간의 비관적 미래, 멸종의 미래를 보여주기도 하고 장애를 가진 아이를 바라보던 아버지의 인식 전환을 통해 현실 사회의 인간 사이의 잘못된 시각을 지적하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날카롭다. 표제이기도 한 <잘못 들어선 길에서>는 인간은 발전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언제나 같은 자리를 맴돌고 같은 행동을 하는 존재라고 말하는 듯 하다. <동화적인 독백>은 강력한 힘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당시 동독을 위시한 동유럽의 생각을 나타낸다. 그것은 18세기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에서부터 비롯된 망상이라고 작가는 이 작품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때아닌 안드로메다 성좌>는 그런 사회주의 국가가 국민을 어떻게 지배하고 그들을 눈멀게 하는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텔레비전 속의 황당한 지속적인 보도의 오류를 통해서. 

이 작가를 알 수 있어서 더없이 좋았다. 그의 작품을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인간과 인간의 사상과 미래를 암울하고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작가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그의 작품 전반에는 사회주의 제도에 대한 비판과 인간의 물질화로 인한 비인간화가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병통신>에서는 미래의 이야기를 병 통신을 통해 현재 알게 된다는 피드백 현상을 접목시켜 그들의 체제가 미래의 잘못된 점을 시정하려 하지 않고 단지 그것을 없애고 차단하여 지배만을 목적에 두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회주의 미래에서의 인간의 식량화라는 끔찍한 사태를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지금이 과연 제대로 들어선 길을 가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는 잘못 들어선 길에서 잘못된 곳을 향해 가고 있는가 하는 진지한 성찰을 요구하는 듯 하다.

작품이 읽기 쉬우면서도 깊은 생각을 요구하고 많은 여운을 준다. 이 작품을 읽으면 동독이라는 나라에 살면서 그 사회주의 체제에 작가가 얼마나 암담한 심정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사회주의가 무너진 지금, 자유주의라는 허명 아래 생활하는 우리들의 미래는 이 작품 속의 이야기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 조지 오웰의 <1984년>에서의 빅 브라더가 지금 현실이듯이 이 작품의 이야기도 언젠가는 단지 사회주의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의 문제로 대두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 본다. 작가의 작품 제목이기도 한 <잘못 들어선 길에서>처럼 지금 우리가 잘못 들어선 길에 서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역시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절대 변하지 않는 인간이 가장 무서운 존재 같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길에 들어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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