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전 누군가 내게 슬쩍 보여줬던 시집 한 권에 나는 매료되었고, 더 이상 편지지에 쓰여 있는 사랑에 관한 시를 읽지 않게 되었다. 시를 좋아하고, 시인을 좋아하고, 어쩌면 내가 걸었던 길을 시인도 걸었을 지 모른다는 생각에 행복하던 스물 몇 살의 나를 돌아보니 우스운 생각도 들지만 어쩔 수 없이 그때가 생각나는 것은 따뜻한 봄 볕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이 세계의 문법을 그는 매번 배우지만 / 매번 잊어버린다. / 세계가 마취된 것인가, / 자신의 두개골이 마취된 것인가, / 그는 매번 판정을 내리지 못한다. /그는 물질이 정신성으로, 정신이 물질성으로 / 이동해가는 통로를 너무나 잘 알고 / 때로는 너무나 까마득히 모른다.시인의 시는 매력적이다. 가끔 나도 이런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쉬운 듯하면서도 통찰력을 보여주는, 미사여구를 전혀 쓰지 않고도 정곡을 찌르고, 슬프면서도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시를. 하지만 그녀의 시는 외롭다. 고독하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들수록 시에 매료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