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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시골의사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
프란츠 카프카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평점 :
카프카의 변신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사과다. 그레고르의 등에 던졌던 아버지의 사과. 그리고 굼벵이를 봐도 변신을 떠올린다.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 날 깨어보니 흉측한 벌레가 되어 있었다. 굼벵이같은. 그의 소설은 장자와 같은 깨달음을 준다. 마치 “내가 나비가 된 꿈을 꾼 것인가, 나비가 내가 되는 꿈을 꾸는 것인가.”와 같은 철학적 물음을 던진다. 삶은 어쩌면 이런 변신 같은 것일 것이다. 그렇게 잔인하고 고독하고 항상 애정에 굶주려 있다가 허망하게 사라지는 꿈같은.
자고 일어나 보니 벌레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환타지 소설도, SF 소설도 아니면서 인간이 벌레가 된다는 가정을 작품 속에 추구하고 있다. 그레고르가 변신한 이유는 무얼까. 중압감, 일과 가족에 대한? 사회에 대한 움추림? 아니면 그 자신이 자신을 벌레만도 못한 인간으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이런 가정은 가히 충격적인 효과를 만들었다. 그래도 벌레로서의 소외감, 따돌림, 추방은 견디기 쉬운 것일지도 모른다. 벌레니까.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을 당한다면 그게 더 견디기 힘들지 않을까. 그래서 어쩌면 그레고르, 카프카는 스스로 이런 변신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이 편이 낫다고 느꼈기 때문이리라.
어느날, 나는 벌레가 되었다. 당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여기서 말하는 벌레란 어떤 의미인가.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가치관의 껍데기다. 당신은 어떤 눈으로, 어떤 가치관으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는가. 그것이 바로 벌레를 만들어내는 본질이 아닐까. 이 벌레는 자신이 만들어내기도 하고 주변인에 의해 만들어 지기도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간을 인간으로 바라보려 하지 않고 그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판단하고 재기 때문이다. 그 판단에 부합하지 못하고 잣대에 모자라는 인간은 벌레가 되는 것이다.
변신은 카프카의 심정과 소시민으로 살아가는데 따르는 불안을 나타내고 있다. 아마 그레고르처럼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벌레로 변하지는 않지만 자신들을 벌레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혹은 벌레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자학하기도 한다. 또한 산업사회의 도래로 카프카가 얼마나 고뇌했는지를 알 수 있는 작품이다. 마치 찰리 채플린의 영화에서 인간이 기계 문명에 의해 단순한 기계로 전락하는 것처럼 카프카는 산업사회가 인간을 벌레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으리라. 하지만 그 시각은 옳았다.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므로. 당신의 눈앞에 있는 인간은 어떤 모습인가. 당신 스스로 물어보라. 카프카는 이것을 자신만의 현실적 환상문학으로 만들어 문학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것이다.
인간의 불안을 이보다 더 극명하게 나타낸 작품일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 작품이 끊임없이 읽혀지는 것 같다. 현재도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의 불신, 사회의 부조리, 불안한 세상. 그 속에서 사람들이 살아가야만 하는 상황에서라면 미치지 않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그레고르의 변신을 통해 사회와 가정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다. 한 인간이 사회와 가정에서 어떻게 취급되고 소외되는지, 그레고르의 변신은 역설하면 사회와 가정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인간을 만드는 것은 가정과 사회다. 개인은 벌레와 다르지 않다. 가정과 사회를 벗어나거나 소외되는 순간 벌레만도 못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레고르의 심정을 나는 얼마만큼이나 공감하고 있는 지 생각해 본다. 만약 그레고르처럼 어느날 내가 벌레로 변한다면 우리 가족은 그레고르의 가족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레고르의 아버지처럼 혐오감을 담아 사과를 던지지는 않겠지. 하지만 아무 것도 확신할 수 없다. 그것이 오늘 날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