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행 1 -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현각 지음, 김홍희 사진 / 열림원 / 1999년 11월
평점 :
절판


예전에 텔레비젼에서 한 외국 스님을 봤다. 가사장삼이 잘 어울리고 고무신을 폼나게 신고 뉴욕을 걸어다니는 모습이었다. 무척 지적으로 잘 생긴 사람이라 한동안 뇌리에 남았었다. 그가 바로 현각 스님이었다. 그리고 책에서 다시 만났다.

누군가 어떤 이의 말 한마디에 자신의 진로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은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신부님이 되는 길과 스님이 되는 길을 또 다른 같은 모습이겠지만 서양에 많이 알려진 티벳의 승려가 될 수도 있었고, 그럴듯하게 포장을 잘한 일본에 가서 그들의 말로 젠이라고 일컬어지는 선을 배울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별로 잘 알려지지 않고 잘 알지도 못하는 한국이라는 곳에 스님이 되기 위해 왔고 스님이 되었다. 하긴 남아있는 대승 불교국은 우리 나라밖에 없다고도 하니 그는 잘 찾아온 것일 지 모르겠다. 

종교가 사람에게 사는 의미를 부여하고 안식을 준다면 그것이 어떤 종교이든 그 종교는 참 좋은 종교다. 나는 고등학교를 원불교 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학교 기념일에 가끔 파란 눈에 키가 껑충한 외국인 스님들을 볼 수 있었다. 그때는 참 신기한 일일세 하고 지나쳤는데 지금 현각 스님을 접하고 그건 그렇게 새삼스러울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2천년을 불교 국가로, 5백년을 유교 국가로 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인구의 40% 정도가 기독교인이다. 이렇듯 종교는 자신의 마음에 와 닿으면 무섭게 퍼져서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 이겨낼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아마 현각 스님도 그런 이유로 부처님을 믿고 불교에 귀의하게 된 것이리라. 하버드에 그의 길이 있었다면 그는 하버드에 남았을 것이고 화계사와 인연이 없었다면 그가 한국이라는 낯설고 조그만 땅을 찾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앞날은 모르는 것이니 인연이 어디서 끝나고 어디서 시작될 지는 부처님만이 아시는 일이라 우리, 가여운 중생들은 그저 마음 편한 곳을 찾아 잠시 쉬었다 가면 그뿐이다. 그러니 왜? 라는 우문은 제발 이제 그만 벗어버렸으면 한다. 산이 있어 산에 오르는 등산가가 있고 불교가 좋아 스님이 된 서양 사람도 있고 기독교가 좋아 목사님이 된 동양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

진리란 무엇인가보다 그것을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을까를 깨달은 사람은 자신이 찾고자 하는 것의 절반은 찾은 것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 모르는 자입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모른다는 것은 알고 있다. 이 한마디가 가슴에 남을 수 있는 사람이 우리 나라에 과연 몇이나 있을 수 있을까. 어쩌면 그는 스승을 뛰어 넘어 살아있는 부처로 추앙 받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부디 정진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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