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환상문학 단편선 Miracle 2
김재한 외 지음, 김봉석 해설 / 시작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환타지 작품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상상력이 거의 없기 때문에 미스터리나 SF 장르와는 다르게 잘 안 읽게 된다. 그런데 이 단편집은 좀 달랐다. 우리나라 환상 문학의 현주소를 알려주는 작품들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무엇보다 읽기가 편했다. 소재도 다양하고 내용에 그다지 무리가 없었다.  

<상아처녀>는 한번쯤 SF나 미스터리에서도 본 소재를 다루고 있다. 뻔한 구성과 뻔한 결말이지만 인간을 배양하는 장면은 곧 다가올 미래의 이야기같아서 늘 오싹함을 준다. 뻔뻔한 인간의 욕심은 정말 어떤 일을 벌이게 될지 걱정된다. <카나리아>와 <사육>은 뱀파이어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같은 소재지만 다르게 그리고 있다. <카나리아>는 인간의 자아를 조금이나마 붙잡으려는 뱀파이어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욕심과 허영을 보여주고 있고 <사육>은 뱀파이어가 되기를 자청했다가 뱀파이어 사냥꾼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주인공과 뱀파이어 사냥꾼을 통해 인간의 영원한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용의 비늘>은 만화같은 작품이었다. 14번째로 태어난 딸, 여인들만의 나라, 저주받고 핍박받다 용의 비늘을 구해와 자신의 자리를 되찾겠다는 소녀, 그리고 용의 비늘을 찾기까지의 모험이 어디서 많이 본 만화같은 느낌을 준다. 만화로 만들어도 재미있을 것 같은 작품이다. <윈드 드리머>는 비공정이라는 날으는 물체를 띄우기 위한 비행석이라는 돌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과 살육의 참상에 회의를 느끼고 시골에서 은둔해서 사는 황제의 사생아가 비행석없이 날으는 물체를 만드는 이야기다. 이 작품도 만화같았다. 환상이라는 문학적 소재가 만화같다고 느껴지는 것은 나의 아둔함일까, 아니면 만화와 문학의 폭이 그만큼 좁혀진 것일까 궁금하다. <목소리>는 중국의 고대 요괴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태어나자마자 흉측한 몰골과 뱀의 혀같은 혀, 말하지 못하고 기이한 소리를 듣는 것 때문에 사람취급을 못받지만 그것이 아버지가 도사가 준 부적을 붙이지 않는 탓이라는 것을 알고 집을 떠나 자신에게 저주를 씌우고 목소리를 빼앗은 요괴를 찾아간다는 이야기다. 고전 형식이라 고전처럼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다. <내가 바란 단 하나의 행복>은 한 여자에게 버림받고 자신의 친구가 모든 행복을 차지하고 자신이 불행해진 것이 전쟁 중 저주에 걸린 탓이라고 생각한 주인공이 행복을 되찾기 위해 친구를 암살하러 가는 내용이다. 행복과 불행은 사람마다 생각하기 나름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모른다. 뻔한 이야기에 뻔한 교훈이었다. <세계는 도둑맞았다>는 마법사의 등장, SF적 평행차원론, 외계인의 침략, 그리고 악마와의 약속이 모두 들어 있는 독특한 작품이다. 미래의 과학을 들여와 마학이라 하고 마법사가 세계를 장악해서 미래에 쳐들어올 외계인의 침략에 대비한다. 그리고 악마와도 손을 잡는다. 만약 외계인이 이 정도로 막강하다면 인간의 멸종은 순식간이고 인간의 역사 자체가 사라지는 것 또한 순식간이다. 이 단편집에서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마지막 <과거로부터의 편지>는 지박령이라든가 퇴마사, 영계같은 소재가 사용되는 요괴와 요괴를 잡는 사람의 이야기다. 거기에 말려든 인간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낯선 곳에 무턱대고 들어가면 안된다는 얘기다. 비오는데 산에 오르는 것도 금지. 마지막 편지가 오싹하게 다가왔다. 단순한 작품이 마지막 반전으로 멋지게 변했다.  

환상문학 고수들이라고 해도 나는 읽은 적이 없는 작가들이라 오히려 신선하게 읽을 수 있었다. 소재가 다양한 것도 좋았고 어렵지 않게 이야기를 구성하고 풀어가는 것이 좋았다. 단편이라 약간 아쉬운 작품도 있었고 식상한 작품도 있었지만 재미있었다. 한 낮에 백일몽을 총천연색으로 다양하게 꾸고 난 기분이다. 한번의 백일몽으로 끝나지 않고 더 좋은 작품으로 만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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