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를 묘사하다!

악의 ㅣ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8년 7월

베스트셀러 작가 히다카 구니히코가 캐나다로 이사가기 직전 혼자 작업실에서 남은 원고를 쓰다 살해당한다. 발견자는 그와 약속이 있어 찾아왔다가 불꺼진 집을 보고 호텔에 있던 히다카의 아내에게 전화를 한 중학교 동창이자 아동문학가인 노노구치 오사무, 그리고 그와 재혼한지 한달된 그의 아내 리에다. 이 사건을 우연히 우리의 호프 가가 형사가 맞게 된다. 가가 형사는 <붉은 손가락>에서 나왔지만 이 작품이 먼저라 신참으로 등장한다. 또한 가가 형사는 노노구치와 같은 학교에서 교직에 몸담았던 인연도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범인은 쉽게 드러난다. 그리고 범인이 드러난 뒤 사건은 더욱 꼬이게 된다. 

작품은 살인 사건이 일어난 뒤 노노구치가 쓴 수기와 가가 형사가 쓴 기록이 번갈아 가며 등장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모든 트릭은 문장들 사이에 숨어 있고 가가 형사는 그 문장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생각과 상상을 총동원해서 사건을 해결했다가 다시 뒤집었다가 또 다시 헤집어 놓기를 반복한다. 정말 단순한 작품을 가지고 작가는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을 풀어놓듯이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인간의 내면, 그 근원에 뿌리박힌 악의를 묘사하고자 애쓰고 있다. 

작품 안에서 특히 눈에 띄는 요소는 학원 폭력, 소위 말하는 왕따 문제다. 그 심각성은 가해자는 모른다. 오직 피해자만이 알 뿐이고 교사는 더더욱 그 문제에서 하나의 벽을 만난 것처럼 해결할 수 없음을 느끼게 된다. 그것이 가가 형사가 교사에서 형사로 인생을 바꾼 계기가 된 것이기도 하다. 처음 등장 장면에서 히다카의 작품 속의 인물이 자신의 오빠에 대한 묘사라며 책을 회수하라는 여동생이 등장한다. 그 오빠는 학원 폭력의 가해자로 잔인한 모습으로 묘사되었는데 그것이 사실임을 아는 사람이 보면 다 알 수 있도록 정확하고 자세하게 묘사했다는 것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것이 문제 제기 사항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혈육이라도 잘못에 대한 반성없이 나오는 것은 현실에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행하는 뻔뻔함, 가해자 가족이 피해자 가족에게 행하는 상식이하의 행동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이 느껴졌다. 이런 이유로 왕따문제는 근절되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이것도 악의에 대한 하나의 단적인 묘사가 아니었나 싶다. 

악의를 묘사한다. 책을 읽다보면 인간을 묘사한다는 말이 있더라는 가가 형사의 말에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미스터리 작품에서 '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것, 그것이 나아가 범죄소설로 만들어지는 것은 모두 악의를 묘사하려는 작가들의 집념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은 또한 사회 문제를 돌아보게 만들기도 한다. 근거 없는 악의란 그다지 많지 않은 법이니까. 하지만 때론 근거없는 악의, 이해할 수 없는 악의도 있음을 안다. 그건 아마도 아직 이해하지 못한 인간의 내면에 남아 있는 찌꺼기가 아닐까 싶다. 아무리 닦아내도 남아 있는 어떤 것들 말이다.  

마지막 가가 형사는 모든 것을 조사하고 독백처럼 이야기한다. 가가 형사의 조사를 따라 다니면서 과연 가가 형사는 악의를 이해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과연 이런 일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없다고는 말 못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별의별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 사람들의 생각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다시 생각했다. 내 안에도 이런 악의가 있을까 하는.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다만 꾹꾹 눌러 떠오르지 않게 막을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