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디타운
F. 폴 윌슨 지음, 김상훈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작가의 라나그 연방(LaNague Federation) 시리즈인 1989년에 지금의 형태로 발표된 이 작품은 사이버펑크 SF에 해당되는 작품이다. 작품은 독특하게 레이먼드 챈들러를 연상시키는 삼류 사립탐정 시그가 등장해서 클론인 진의 의뢰를 맡으면서 시작된다. 실종된 남자를 찾아 달라는 의뢰에서 시작해서 각기 독립된 세 편의 단편을 일게 되는 줄 알았는데 그 세 편이 하나로 이어지는 큰 틀의 한 작품이었다.

미래, 지구가 있고 외항성계가 있고 법에 따라 자녀는 한 명만 가져야 하고 불법으로 낳은 아이는 업둥이로 버려져 그들만의 생활을 하게 되고 하지만 그런 것들을 빼면 현재와 다른 것이 별로 없는 사회를 살아가는 하층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중국은 한 자녀 정책을 하고 있고 그로인해 남아선호사상때문에 버려지는 여자아이들이 많다는 외신을 우리는 접하고 있다. 중국은 인구억제정책으로 그런 일을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런 버려진 아이들이 없는 나라는 없다. 잘 사는 나라든, 못 사는 나라든 이것은 시스템과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진민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이것은 클론과 업둥이들과는 다른 진짜 시민을 뜻한다. 우리는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많은 곳에서 일어나는 차별에 대해 느낄 수 있다. 피부색이 달라서, 국적이 달라서, 여자라서, 등등 온갖 이유로 인간은 인간을 차별하고 있다. 클론도 인간이 만들었는데 만든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차별을 위해서인가?

결국 마지막은 제목과는 조금 다르게 끝난다. 제목은 하드보일든데 내용은 아니다. 읽을수록 미래에 정말 인간이 지구 밖으로 나아가 식민 행성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우습게 느껴진다. 전형적인 백인들의 남의 땅 뺏기가 이렇게 SF에도 고스란히 스며있다니 보면 볼 수록 놀랍기만 하다. 지구가 그정도로 강하다고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백인우월주의는 끝내 버리지 못하는 것인지...

레이먼드 챈들러 비슷하게 보이려 했지만 시그는 내 개인적 취향으로 보면 레이먼드 챈들러보다 더 낫다. 버튼해드였던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하기도 하고 클론에 대한 혐오도 고스란히 드러내고 업둥이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차츰 클론에 대해, 업둥이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슴 속으로 느끼고 BB의 잘려나간 팔에 우는 모습, 업둥이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BB가 자신을 부모가 아니라고 한 말에 상처입기도 한다. 그런 시그의 모습이 좋았다. 그의 약간 불법적인 친구들도 좋았고 그래서 오히려 시그는 레이먼드 챈들러가 아닌 매트 스커더를 연상시켰다. 이 시리즈가 시그 시리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때 얼마나 당황했던지... 그만큼 또 다른 작품에서 시그를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작품은 사이버펑크다운면을 잘 보여줬지만 마지막 감상적인 모습이 약간 어울리지 않았다. 결과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지만 너무 쉬웠다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아무리 SF라지만 말이다. 그밖에는 꽤 괜찮았다. 미래가 아닌 다이디타운이 바로 지금 내가 사는 곳이라 느껴졌으니까.

다만 시리즈는 첫 작품을 출판해주는 것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또 남는다. LaNague Chronicles를 출판했다면 앞의 세 작품 1976년 작품인 Healer, 1978년 작품인 Wheels Within Wheels, 그리고 1980년 작품인 An Enemy of the State를 한꺼번에 볼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이 작품들은 1992년에 한 권으로 출판되었다. 그 다음 이 작품을 보았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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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6 11: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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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6 12: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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