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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사냥꾼 ㅣ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2월
평점 :
미미여사의 이 작품에 <이와 손톱>이 나온다고 해서 나는 부랴부랴 <이와 손톱>을 봤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이 작품을 먼저 보고 낭패를 당할까봐서. 내가 자발적으로 떡밥 만들고 내가 낚인거니 할 말은 없지만 <이와 손톱>에 대한 미미여사의 대응 작품이 아닐까 생각했던 나에게는 조금 씁쓸한 작품이 되고 말았다.
친구가 하던 헌책방을 친구가 죽자 얼결에 하게 된 이와 씨가 운영하는 다나베 헌책방은 손자가 주말마다 도와주러 요코하마에서 와서 하는 할아버지와 손자 미노루의 아옹다옹하는 재미를 주는 것이 더 매력적인 작품이다. 핵가족화는 옛말이 되고 이제는 일인 가족시대가 되어버린 오늘날, 그래도 할아버지와 손자가 함께 하는 모습은 그 모습만으로도 가슴 따뜻하게 해준다.
6편의 작품이 등장하는데 <무정한 세월>을 빼고는 모두 책이 등장하고 있다. 한 마디로 헌책방 속 책을 둘러싼 미스터리 단편집이라고 할 수 있다. 첫 작품에는 <이와 손톱>이 등장하고 나머지 작품에도 내가 모르는 작품들이 등장하고 마지막 작품에는 표제가 된 <쓸쓸한 사냥꾼>이 미완성된 추리작가의 책으로 등장한다. 이 작품이 <모방범>의 원형이 된 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모방범>에서 나온 두부가게 할아버지의 모습이 이와 씨의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정한 세월>을 보다 잠깐 울컥했다. 1945년 도쿄 대공습때 8만여명의 도쿄의 무고한 시민들이 죽었다고 나온다. 잔인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도 잔인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전쟁 가해국이든 피해국이든 죽는 이들은 힘없는 이들뿐이다. 영국이 독일의 무기공장을 폭격한다고 하고 무고한 시민들만이 사는 곳을 공격해서 일부러 많은 이들을 죽였고 그 장군은 영국에 동상을 남겼다는 얘기를 들었을때도 나는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본인, 그것도 공인인 작가의 입에서 이런 말을 들으니 기분 안좋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미미여사 이래도 되는 건가요? 라고 묻고 싶었다. 그 뒤 <거짓말쟁이 나팔>에서 작가는 일반 시민들은 전쟁이 좋은 거라는 말에 속아 전쟁에 동원되었을 뿐이라고, 거짓말에 속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두번 다시 속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도 어떻게 대공습에 대해 가르치는지는 알고 싶다. 전쟁이 잘못이었고 주변국에 피해를 끼쳤다고 반성하는 모임으로 후세에 가르치기를 바라지만 글쎄...
다나베 서점 이와 씨를 중심으로 그 서점에 오는 사람들에게서 벌어지는 미스터리, 일상의 미스터리, 살인과 범죄의 미스터리가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이와 씨는 손자 미노루가 열살 연상녀를 사귀는 것에 속앓이를 하고 손자와 냉전도 벌인다. 이와 씨는 아무리 까치발을 들어도 아이는 아이이고 어른일 수 없다고 말한다. 어른이 애를 도피처로 삼아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나이는 그 나이만큼만 먹는 법이라고, 아이같은 어른, 어른같은 아이라해도 진짜 자기 나이보다 애가 되거나 어른이 되지는 않는다고. 이 말이 와닿았다. 나이를 먹을 수록 나이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있음을 느낀다. 이와 씨만큼의 연륜은 아니지만 사십이 넘으니 그만큼의 세상이 보인다고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이와 씨, 참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가 있어 이 작품은 빛이 난다.
사건보다 오히려 이와 씨와 손자 미노루의 이야기가 더 재미있었다. 그리고 <거짓말쟁이 나팔>에서 아이가 학대받고 있음을 금방 알아내고 걱정하고 경찰에 신고까지 해주며 아이를 보호하는 마음이 바로 <쓸쓸한 사냥꾼>에서 이와 씨가 마지막에 중얼거리는 구절과 닿고 있다. 사람이 가장 무서운 세상이지만 그래도 사람의 온기때문에 사람인 우리는 살고 있는 거니까.
280쪽에서 281쪽에 걸쳐 나오는 마지막 내용이다.
『쓸쓸한 사냥꾼』에 나오는 한 부분이 문득 이와 씨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우리는 모두 쓸쓸한 사냥꾼이다. 돌아갈 집도 없이, 거친 들판에 내던져진 외톨이다. 이따금 휘파람을 불어도 대답하는 것은 바람소리뿐이다.'
그 젊은이가 저지른, 변명할 길이 없는 끔찍한 살인 뒤에서마저도 고독한 휘파람 소리와 그 소리에 대답하는 공허한 바람소리가 들려오는 걸까?
그리고 그 부분은 이런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잠이 든 미노르 곁에서 이와 씨는 살며시 그 구절을 암송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을 사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사람의 따스한 온기를 그리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