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추리작가 10인 단편선 밀리언셀러 클럽 79
엘레나 아르세네바 외 지음, 윤우섭 외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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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러시아 추리소설은 아직 우리에게는 좀 낯설다. 알렉산드라 마리니나의 아나스타샤 시리즈가 몇 편 번역된 것을 본 것이 전부다. 하지만 러시아는 문학의 나라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라는 추리소설에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진 작품을 탄생시킨 나라다. 그러니 러시아 추리소설을 무시하는 것은 어쩌면 편협하고도 독자의 독서를 편식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런 시점에 이 단편선은 새롭고도 익숙하게 러시아를 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열편의 작품들 모두 크리스마스와 새해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러시아 사람들의 일상과 그 속에서 펼쳐지는 사건들을 보여준다. 어린 딸을 유괴당하고 남편과 아들마저 교통사고로 잃은 한 여인에게 자신의 딸과 닮은 지하철역에서 앵벌이를 하는 소녀가 등장하는 <니나의 크리스마스 기적>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오지랖 넓은 탐정의 걱정이 담기 이야기다. 그 속에서 러시아 사회에서 유괴된 아이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단편적으로나마 알려주고 있다. <공포의 인질 또는 내 고독의 이야기>는 남편을 청부 살해당한 여자의 이야기다. 대낮에 대로에서 총에 맞아 죽는다는 이야기는 러시아가 점점 서구화로 나아간다는 반증으로 보인다. <천사가 지나갔다>는 의사로서의 사명감이 투철한 신경질쟁이 의사의 자신이 담당한 환자를 누군가 살해했는지를 알아내려 고군분투하는 유머러스한 작품이다. <이지 웨이>는 폭설 속에서 버스로 달리는 러시아의 길을 연상시키면서 그 안에서 전통적인 러시아의 삶과 서구 물질의 묘한 대비를 보여주고 있다. BMW라던가 제목인 이지 웨이라는 상표의 배낭 같은 물건과 러시아 전통 음식을 싸가지고 친구 집에 가는 모습 속에서 미스터리와 함께 오늘을 살아가는 러시아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새해 이야기>는 친구들 걱정만 하는 여자와 그래도 그런 여자를 사랑하는 남편, 그리고 자칭 산타가 꾸미는 유쾌한 소품이다. <행복한 크리스마스>는 러시아 사람들은 정말 참견을 좋아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러면서도 아직까지 친구가 있고 이웃이 있는 순수함을 느낄 수 있지만 점점 그것이 변해가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복수의 물결>은 러시아 대학은 공부를 잘하면 공짜로 들어가고 못하면 돈을 내고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줘서 요즘 우리나라 대학 등록금이 장난이 아닌데 부러움을 느끼게 만든 작품이다. 그러면서 대학에 가기 위해 스스로 돈을 벌기 위해 하녀로 일을 하기로 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맹랑한 십대의 미스터리를 풀고 미래를 생각하는 기특한 작품이다. <예정된 살인>은 현 러시아의 사회를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마피아가 등장하고 경찰이 등장하고 신흥 부자가 등장한, 그런 가운데 우리나라 현대 자동차에 기뻐하는 주인공이 고맙게 느껴지다니. 가장 러시아다운 소란스러우면서 전통과 현대가 복잡하게 얽힌 작품이다. 사람 이름만으로도 머리가 아팠다.

일상의 미스터리가 유행인 요즘 러시아의 일상의 미스터리는 일본적 일상의 미스터리에 약간은 식상해진 미스터리 독자들에게 위로가 될 만한 단편선이다. 기발한 트릭이나 대단한 사건, 반전은 없지만 러시아 사람들의 일상과 그 속에서 작은 미스터리 소품을 읽는 재미가 있는 작품들을 같은 계절로 묶어 보여주니 작품들을 비교해서 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이 단편선을 계기로 전통적 러시아 추리소설이 더 많이 출판되기를 바란다. 크리스마스나 새해를 앞두고 출판되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독특한 단편들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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