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레르노 [Salerno]
(라)Salernum.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 지방 살레르노 주의 주도.
나폴리 남동쪽으로 살레르노 만의 이르노 강 어귀 서쪽에 있다. 에트루리아인의 마을로 보이는 이른티라는 옛 마을 자리에 BC 197년 살레르눔이라는 로마의 식민지가 세워졌다. AD 646년부터 롬바르드족의 베네벤토 공작령에 속했으며, 839년 롬바르드 독립공국의 수도가 되었다가 노르만족 로베르 기스카르가 정복하여 웅장한 중심지가 되었다. 1194년 슈바벤 공국의 호엔슈타우펜 가문에게 약탈당했으나, 이곳 출신으로 프랑스에 대항하여 시칠리아의 베스페르 가문이 일으킨 전쟁(1282)의 영웅이 되었던 조반니 다 프로치다가 지배하면서 활기를 되찾았다. 그는 항구를 확장하고 대규모의 연례 박람회를 열기 시작했다. 1419년 콜론나 가문으로 넘어갔으며, 그후 오르시니 가문과 산세베리노 가문으로 넘어갔다가 나폴리 왕국으로 넘어왔다.
살레르노가 역사 속에서 지녔던 영향력은 주로 의학교 때문으로, 이곳에 아직도 남아 있는 유럽 최초의 의학교는 11, 12세기에 발전하여 유럽·아시아·북아프리카에서 많은 학생들이 모여들었던 곳이다.
제2차 세계대전중의 1943년 9월 8~18일 살레르노 해안에서 연합군 상륙 부대와 독일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 영국 제8군의 전위부대가 칼라브리아로부터 이곳에 도착하여 독일군을 몰아낼 때까지 이 옛 주교관구 도시는 큰 피해를 입었다. 베네벤토 공작 아레치의 성채 유적, 출입문, 궁전 유적지는 롬바르드족이 통치하던 시대부터 전해져오는 것이다. 그러나 도시의 주요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845년에 세웠다가 로베르 기스카르가 1076~85년에 고쳐 지은 산마테오 대성당이다. 대성당 지하실에 있는 성(聖) 마태오의 무덤은 그 유해를 10세기에 살레르노로 가져왔다는 전설을 갖고 있다. 이 성당에는 또한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의 무덤도 있다.
활발한 티레니아 해의 항구이며 나폴리-레조디칼라브리아 간 철도가 지난다. 주요 공산품·수출품은 식료품·건축자재·섬유·기계·도자기·연철제품 등이다. 인구 153,807(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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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 전문 의사 트로툴라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된 뒤 여자들의 병과 출산에 대해서 많은 연구와 진찰을 하고, 《여자의 질병과 치료》와 《약물의 조제》라는 책을 쓴 의사
십대 후반이 되자 자기가 사는 도시의 자랑거리였던 살레르노 대학에 가서 학생으로 받아 달라고 말했어. 트로툴라는 출세를 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었어.
만약에 트로툴라가 실존 인물이라면 1050년경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살레르노에선 여자들도 의술에 종사했다고 하는데, 알려진 사람은 트로툴라(Trotula)
공주의 충고대로 살레르노로 돌아가 약을 받았고,... 아마도 여성에게 처방약을 써주던 여성전문의인 트로툴라Trotula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