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설이다 밀리언셀러 클럽 18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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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것들로부터 공격을 당하며, 고독하고 소외된 채 살아가는 남성”을 작가는 1950년대 작품들의 주제라고 말했다고 작품해설을 보면 나와 있다. 이것은 비단 <나는 전설이다>뿐만 아니라 수록되어 있는 단편 중에서도 볼 수 있는 특징이다.

1950년대란 어떤 시대이기에 작가가 이런 남성을 주인공으로 만들게 된 것일까? 그 시대는 바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대다. 전쟁의 공포가 아직도 남아 있고 남자라는 이유로 전쟁에 참가를 강요당하고 그 끔찍함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작가에게 편집증처럼 달라붙어서 이런 작품들을 쓰게 만든 것이다. 그들 중 가장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위치에 있던 중산층의 남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피할 수 있는 선택이 없고, 그렇다고 절망하기에는 행복이 남아 있는 계층이 바로 중산충이기 때문이다.

시대 배경은 1970년대다. 핵전쟁이 있었고 세균전까지 벌어져 모든 사람들이 흡혈귀가 되어버리고 자신만이 감염되지 않은 채 혼자 남아 외롭게 사투를 벌이는 것이 <나는 전설이다>의 내용이다. 흡혈귀가 된 친구가 밖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미칠 것 같아 술과 담배로 참고 지내지만 결코 자신이 흡혈귀가 된다거나 자살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어쩌면 살아남은 인간이 자신 혼자만은 아닐지도 모르는 희망 때문이다.

그런 힘겹고 고독한 사투는 계속되고 그는 이제 좌절과 분노의 경지를 넘어서 체념과 수용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자신만 살아 있다고 해서 인류가 다시 복원되는 것도 아니지만 낮에는 햇볕을 피해 잠자는 흡혈귀를 찾아 처치하고 다니고 흡혈귀를 없앨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의학 서적을 보고 밤의 흡혈귀 공격의 피해를 복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마지막 장에서 주인공은 ‘이제 나는 전설이야.’하고 생각하며 끝을 맺는다. 그것이 신화와 종교의 탄생을 연상시켰다. 누군가에게 두려움을 주거나 받들어지는 이는 정상인이 아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정상이란 책에서 주인공이 생각하는 것처럼 다수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무엇이 되었든 소수는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바꿔 말하면 소수, 단 한 명이 남았다는 것은 다수가 된 이들 사이에서 그가 전설이 될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에서 아내와 아이를 잃고 고독과 맞서고 흡혈귀와 맞서 싸우다 스스로 전설이 된 남자의 사투를 다룬 이 작품을 공포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말해버리기에는 작품의 스케일이 크다. 단순한 공포소설이 아닌 작품이고 또한 흡혈귀가 등장한다고 공포소설은 아니다. 물론 인간 고독의 내면의 공포와 단 한명의 인간만이 남은 인간 멸종에 대한 공포라는 측면에서 보면 엄청난 공포겠지만 그것은 단순한 장르적 의미가 아닌 인간존재론까지 이어지고 있는 작품의 성격상 이런 단순한 획일화는 독자에 대한 배려도, 작품과 작가에 대한 예의도 아니므로 쉽게 규정짓지 않았으면 한다.

단편들 중에서는 <루피 댄스>가 역시 <나는 전설이다>와 비슷한 면을 보이고 있다. 3차 대전이 일어난 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평범한 네 명의 대학생 가운데 순진한 주인공이 루피 댄스를 보러 가는 내내 엄마의 말소리가 귓가에 맴돌고 그렇지만 혼자 있기 너무 외로워서 탈선을 감행한 결과가 너무도 섬뜩하게 그려지고 있다. 50년대 중산층 남성이 <나는 전설이다>의 주인공이라면 50년대 순진한 중산층 대학생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 이 작품이 아닌가 싶다.

작가들 사이에서도 살아있는 전설이 된 리처드 매드슨의 작품은 정말이지 장편, 중편, 단편 그 어떤 것도 빠지지 않는 대가의 작품들이다. 전설이 될지언정 스스로 파멸하지 않는 그가 만든 주인공들에게서 오늘을 살아가는 위태로운 우리를 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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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송이 2008-01-16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대문 사진 보고 한참을 웃었잖아요.^^
넘~ 귀여우세요.
전 이 책은 못 보고, 영화만 봤어요.^^
영화와 책은 조금 다른 것 같군요.

물만두 2008-01-16 15:26   좋아요 0 | URL
ㅎㅎㅎ 예전에 선물받고 찍은 사진 재사용중입니다^^
책이 훨씬 낫습니다.
책을 보세요~

순오기 2008-01-18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영화만 봤고, 아이들은 어제 책이 와서 세놈이 다 봤어요.
책이랑 영화랑 다 좋다누만요~ㅎㅎ

물만두 2008-01-18 16:25   좋아요 0 | URL
오,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었나봅니다.
대단하네요.

핑크팬더 2008-03-23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전설이다 란 제목이 의미하는 바를 마지막에 가서야 알게되더군요. 이 책을 통해 sf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담으로 본 책이 두개골의 서였는데 짐 다잉인사이드 주문한 상태네요. 나중에 여력이 된다면 이 작가의 줄어드는 남자도 한번 보고싶네요.

물만두 2008-03-24 10:18   좋아요 0 | URL
SF 매력있는 장르죠. 줄어드는 남자 꼭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