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자를 위한 마법
켈리 링크 지음, 이은정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장르문학을 좋아하지만 다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 중에서 환상 문학, 즉 환타지 장르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서 나를 곤란하게 만든다. 내가 그다지 상상력이 풍부한 인간이 못되는 까닭에 무심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스릴러 작가라고 하더라도 스티븐 킹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런 공포, 스릴러는 질색이다. 그런데 이 작가가 바로 스티븐 킹적인 작가다. 읽는 내내 그만 읽을까를 고민했지만 휴고상, 네블러상을 수상한 작품은 봐야겠기에 다 읽고 말았다.

<고양이 가죽>은 한마디로 잔혹 동화다. 마법사에게 살해당하면서 복수를 위해 자신이 유괴하거나 사온 아이 셋 중 가장 예뻐한 아이에게 고양이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히고 고양이로 나타나서 복수를 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자세히 읽다보면 그 안에 현실적인 이야기가 있다. 자신들이 유괴된 아이라는 것을 아는 아이들이 친부모를 찾아갔을 때 그들은 이미 늙어 자신들을 부유하게 먹여 살릴 수 없을 뿐 아니라 생계를 위해 다시 팔아버릴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는 작품이 환상적이고 무섭지만 그 안에 현실을 품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현실도 그만큼 환상적이며 공포를 품고 있다는 것을.

<요정 핸드백>은 진정한 환타지를 구현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핸드백을 만들어 그 안에서 산다는 이야기는 진짜 어느 중앙아시아에서 전해 내려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전설적인 면이 있다. 그것이 현대와 결합해서 도서관에서 책을 훔치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핸드백은 사라져 꼭 찾아야만 하는 모험을 남겨두지만 어쩌면 시간 여행이라는 SF적인 측면도 이런 요정 핸드백 속을 드나드는 것과 같고, 우주라는 것도 할머니의 뭐가 들어 있을지 모를 핸드백처럼 어둡고 찾아 나서야 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멋진 이혼>은 발상부터가 환타지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결혼할 수 있다. 그러다 아이를 낳고 잘 살게 되지만 그들도 보통 사람들처럼 이혼을 원하게도 된다.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다. 말이 안 통하는 두 사람이 만나 결혼하는 것은 어쩌면 이런 결합과 같을지도 모른다.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결합이라는 측면만 빼면 인간의 결혼 생활과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호르트락>은 인간과 좀비를 대상으로 물건을 파는 가게 이야기다. 그러니까 이 편의점은 인간이 운영하는 곳이야? 좀비가 운영하는 곳이야? 정체를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물건만 팔 수 있다면, 그리고 꼭 돈으로 값을 받지 않아도 된다면 이런 가게가 꼭 어디엔가 있을 것도 같다. 인적 드문 곳에서 딱 하나밖에 없는 편의점이라면 혹 이런 가게는 아닐지 의심해 보시길. 그렇다고 우리가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 당신이 인간이든 아니든 물건은 파니까.

<대포>는 대포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결혼까지 한 남자와 그럼에도 대포만 남아 그 임무에 오늘도 충실히 임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작품은 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유머라고 생각되는데 웃기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대포 이야기에서 머리로 카펫을 짜고 모든 생활용품을 만든다는 나라 이야기가 나왔을 때 갑자기 대포와 머리카락이 무슨 관계일까 생각하다가 대포에서 날아가다 보면 그런 이상한 나라에도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이승과 저승처럼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마치 회전문이 돌아가면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관점에 도달하게 만든다. 서로 통해 있지만 우리가 발견하지 못해 갈 수 없는 곳에 대한 갈망이 대포로 표현된 것은 아닐까 싶었다.

<돌로 만든 동물들>은 스티븐 킹의 <샤이닝>과 비교된다고 하는데 샤이닝을 읽어봤어야 비교를 하지. 교외로 이사를 오면서 벌어지는 가족 간의 일들과 그 집 마당에 사는 토끼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다. 얼마 전에 읽는 일본 작가의 작품이 생각나는데 그 작품보다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낫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인의 물질만능주의와 일중독에 대한 비판을 읽을 수 있다. 가정이 점차 붕괴되는 것이 마치 이사 때문인 것 같지만 이전부터 이어지던 것의 이어짐이 발화점을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토기들은 그들의 소통 부재와 신뢰 부재가 낳은 산물이다. 그것들은 집 아래로 굴을 파서 가정을 붕괴시키는 존재로 등장한다. 의미심장한 상징인 것이다. 토끼들의 번식이 얼마나 빠르고 왕성한가 하는 점 또한 한번 쌓인 불만과 불안이 얼마나 빠르게 가정 내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불안하게 퍼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 점이 바로 이 작품이 현실 문제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초보자를 위한 마법>은 현실을 사는 아이들이 별자리 대신 밤을 수놓은 광고판의 휘황찬란함에 더 길들여져 있고 그들의 환타지는 텔레비전 드라마로 완성됨을 이야기하고 있다. 해적 드라마를 보는 아이는 그 드라마로 꿈을 꾸고 그 드라마 속 주인공이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함을 알게 된다. 그때 그의 작가 아버지는 자식이 죽는 책을 쓰고 그에 격분한 엄마는 아들과 함께 대고모의 유산을 보러 떠난다. 초보자, 즉 우리들을 위한 마법이란 이 정도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로 완성되고 드라마로 만족하는. 그런 마법이야 지금 이 시간에도 펼쳐지고 있다.

내가 제대로 작품을 읽고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리고 작가의 글쓰기가 마음에 든다고도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작가에게 뭔가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보르헤스의 현실적 환상 문학과 비교하는 것은 뭣하지만 나름대로 라틴문학적 리얼리즘 환상 문학에서 벗어나 미국적 리얼리즘 환상 문학을 선보이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카프카의 몽환적 알레고리와 커트 보네거트의 비틀린 풍자는 모르겠지만 현실에서 다른 세계를 잘 보여줘서 자연스럽게 보게 만든 점은 인정한다. 그런 세계를 모두 다르게 그리고 있는 작가의 상상력도 높이 사고 싶다. 한마디로 ‘초보자를 위한’이 아닌 독자를 위한 마법이 담긴 작품들이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털짱 2008-01-10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하는 만두님, 게으른 침묵 속에서 잠시 나와 새해인사드립니다.

알라딘 서재주인장들 중에 가장 사랑받으시는 만두님, 늘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님이 있어 더욱 훈훈한 알라딘입니다.

님이 그리워 오늘은 아침부터 물만두를 먹었습니다.

물만두 2008-01-10 11:49   좋아요 0 | URL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안 늦었어요. 아직 무자년도 아닌데요^^;;;
저 생각하며 물만두 잘 드셨기를...
하지만 아침은 밥을 드세요.
건강하셔야죠.
저도 님 생각 많이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