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피부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1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지음, 유혜경 옮김 / 들녘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無의 평화를 원했을 뿐이라고? 그것이 그리 쉽다고 생각하다니 가련한 인간이다. 인간에게 평화란 존재하지 않는다. 평화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신기루처럼 믿고 눈을 감고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으며 그저 주어진 것이 평화려니 생각하는 것뿐이다.

아일랜드의 독립을 원했다.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면 새로운, 더 나은 미래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 될 뿐이었다. 정치가 그런 것임을 모르는 자만이 투쟁을 하는 것이고 진짜 투사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이 뿐이라는 사실이 뼈아픈 진리다. 독재를 겪어본 나라의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것이라 우리가 지금 절망하는 것은 독재는 독재라 부르고 투쟁할 수 있지만 민주의 탈을 쓴 정치의 무능함은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치는 독재든 비 독재든 똑같다는 사실, 식민지배때나 독립을 한 뒤나 같다는 사실을 주인공은 스스로를 섬에 유배시킨 뒤 깨닫는다.

섬에는 등대지기만 있었다. 자신의 전임 기상관은 사라지고 없었다. 도대체 어찌된 일인지 생각해 볼 여유도 없이 그 밤, 한 무리의 괴물의 습격을 받는다. 1년 동안 그들이 괴물이라 부른 차가운 피부를 가진 이상한 동물과 싸우면서 점차 그들은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허울을 벗어던지게 된다. 그럼으로써 주인공은 깨닫게 된다. 인간의 본능이라는 그 남루한 사실, 맹목적 자기 보호라는 망상에 대해서. 거기서 더 나아가 존재 이유에 대해서도.

자, 하나의 사람이 살지 않은 섬이 있다. 그 섬에 발을 디딘 사람은 그 섬을 처음으로 발견한 발견자일까? 아니면 사람 이외의 동물들의 섬에 발을 디딘 침략자일까? 다시 생각해보자. 사람이 살고 있는 섬이 있다. 그런데 낯선 이방인들이 쳐들어와 자신들이 처음으로 발견한 섬이라고 하며 원주민을 학살하고 자신들의 섬으로 만든다. 이것은 침략인가? 발견인가?

전쟁은, 싸움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그것은 침략에서 비롯된다. 기본적으로 남의 것을 탐하는 마음에서, 공유할 수 없는 생각에서,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행동에서 시작된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 사랑과 삶과 인생의 진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모두 거짓이다. 누구의 피부가 더 차가운가? 잔인함이 가득한 인간의 피부가 더 차갑다. 그러면서 살기 위해 애를 쓴다. 구차한 목숨이나마 인간이라는 이유로. 참, 그 인간이라는 것이 대단하기도 하다. 정말 왜 사냐고 묻는다면 ‘실성해서 삽니다.’ 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총 쏘지 마라. 차라리 쏘려거든 네 머리에 쏴라. 지금 총을 들고 남을 향해 겨냥하고 있는 자들이여. 하지만 이 말도 그냥 폼으로 하는 말일 뿐이다. 나만 안 쏜다면 내가 누구를 진정으로 걱정하랴. 나도 인간인 것을...

간단하고 단순한 구조의 플롯을 사용하면서 거대한 주제를 담고 있는 창의력이 돋보이는 좋은 작품이다. 인간의 존재 가치는 폭력에 있다고 말하는 것 같은 고발성을 띠면서 인간 근원에 대해 묻고 있다. 인간의 폭력성, 공포심, 소통부재에서 오는 고립감과 고독함, 자신감 결여에서 오는 무력감, 그로 인해 되풀이되는 무자비함, 그 속에서도 자신 내면을 끊임없이 들여 다 보려고 애를 쓰는 탐구심, 모든 것을 포장하려는 허영과 사랑에 대한 집착, 질투와 자해, 자기중심적 오만과 포기에서 오는 자기기만, 그리고 그리움에서 오는 허탈 등의 모든 인간 감정과 인간 사회가 가지고 있는 점을 잘 표현하고 있다.

아네리스만이 어쩌면 진정한 이 섬의 주인인지 모른다. 폭력과 무자비한 남성성을 무력하게 만든 무관심과 복종하는 것처럼 보여 지지만 실상 자기중심적인 듯 보여 지는 행동에서, 좌절하는 이들과 달리 좌절하지 않는 변하지 않는 모습에서 붕괴되는 인간과 대비되어 각인되고 있다. 그나저나 진짜 삼각형은 다시 나타날까 나도 궁금하다. 삼각형이 자라면 어떻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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