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작품을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 어떤 식으로 읽느냐를 두고 고민을 했다. 그만큼 이 작품은 만만한 작품이 아니었다. 어떤 작품은 만만한 작품이겠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내게는 아주 껄끄러운 작품이었다. 그것은 내가 쓰고자 하는 것이 작품 내용과 무관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밖에 쓸 수 없을 것 같다. 소설가가 그렇게 쓸수 밖에 없었듯이.

이 작품을 끝까지 이어주는 것은 위선과 기만이다. 그것을 1부를 읽으면서 느끼게 된다. 1부에 등장하는 것은 어린 소녀의 성숙한 자아실현의 욕망이다. 그 욕망을 위해 그 소녀 브리오니는 어떤 일이든 한다. 그것이 범죄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더라도 당시에는 고집스럽게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그것은 어린 아이다운 일이다. 어린 아이는 거짓말을 하고도 어떤 때는 절대 잘못을 빌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의 마음은 어찌 보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그 어린 아이의 말만 믿고 자신들과 함께 살아온, 그 청년의 성장과정을 모두 알고 있고 그를 후원해서 대학까지 보내준 그 집안사람들은 아무도 그 청년을 두둔하거나 다시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보여주는 지독한 한 인간에게 보내는 위선인 것이다. 가정부의 아들이라는 신분에서 오는 격차를 넘을 수 없는 사람들이 그동안 보여준 것은 가식이었다. 그 아이들이 함께 어울렸던 것은 동정이었다. 그 아버지가 후원을 했던 것은 열성유전자를 가진 아이에 대한 실험이었을 뿐이다. 또한 로비가 대학에서 공산주의자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그것이 얼마나 덧없는 것이며 계층 간의 경차가 무너질 수 없는 것인지를 어린 아이의 말 한마디에 인생이 바뀌게 되는 그의 처지를 극명하고 잔인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주 영국다운 인간의 본성이 단순하다는 것을 그 시대 배경의 세심한 표현과 주변 자연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살아나는 그림 속에서 마지막에 너무도 간단하게 집어넣은 것이 오히려 더욱 그들의 그런 모순점을 쉽게 드러내고 있다. 로비가 가정부의 아들이 아닌 자신들과 같은 배경의 사람이었다고 해도 과연 이렇게 나왔을까. 어린 소녀의 마음과 연인들의 사랑을 발견하는 과정이 그래서 더욱 서글퍼진다. 마지막에 브리오니의 엄마는 자신의 여동생의 연극적 모습을 생각하지 않던가 말이다.

2부에서는 감옥에서 전쟁에 참가하는 조건으로 풀려나 전쟁터에서 낙오병이 된 로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로비는 세실리아와 만나기 위해 살고 있다. 전쟁을 참아내고 있다. 하지만 그가 그것만으로 참아내기에 전쟁이 보여주는 위선은 말 그대로 너무 폭력적이고 폭력이라는 단어로 간단하게 묘사하기에도 모자란 참혹함을 보여주고 있다. 로비는 그곳에서 자신이 브리오니의 죄를 탓할 자격에 대해 잠깐 생각한다. 자신은 살면서 누군가에게 죄를 짓지 않았을까를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 이 전쟁터에서 그는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다른 사람이 죽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죄를 짓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그것 또한 위선이다. 인간의 이기적인 행동은 본능이다. 남을 위해 죽는 이타적 행동이 그래서 더욱 빛이 나는 것이고 추앙받는 것이다. 전쟁 자체가 위선으로 가득 찬 것이고 그것에 몰아넣은 이들이 위선자인데. 전쟁의 참혹함과 로비의 변화하는 심정의 묘사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3부에서는 간호사가 된 브리오니의 시각을 담고 있다. 자신의 거짓에 상처받은 언니와 로비에게 어떻게든 속죄하고 싶어 간호사가 된 브리오니. 철이 들었다고 말을 하는 브리오니. 하지만 그렇게 간단히 속죄할 수 있다 생각하고 자신의 잘못을 용서받으려 하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일그러트린 것, 깨진 거울을 붙이면 원래의 거울이 될 거라 생각하는 그 자체가 위선이다. 그러면서 글을 써서 보내는 그녀. 자신의 것은 무엇 하나 버리지 않고 간호사라는 험한 일을 한다고 보여주려는 모습과 자신의 사촌을 원망하는 모습은 여전히 어린 아이의 모습 그대로이다. 아픈 발에 휴지를 끼워 넣는 모습에서 브리오니의 달라지지 않은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작품 속에서 읽는 내내, 그리고 책을 덮은 순간까지 위선만을 보았다. 이렇게 서평이랍시고 쓰는 나도 위선적일지 모르겠다. 상류층의 위선, 전쟁의 위선, 소설가의 위선, 독자의 위선이 모여 시간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고 누군가 무엇을 깨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못하겠다. 인간이 책 한 권을 읽고 달라질 수 있다면 그는 인간이 아니거나 본래 그런 사람이 아니거나 둘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만들고 뿌린 위선 속에서 살다 거기에 파묻히는 존재이다. 그러니 속죄란 말은 덧없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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