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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지의 표본
오가와 요코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수첩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오가와 요코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었지만 미스터리가 아니어서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제목이 약간 미스터릭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 작품을 보기로 했다. 표본이라는 말이 주는 뉘앙스가 왠지 모르게 섬뜩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표본을 하는 곳에 사이다 공장에서 약지의 살점을 잃어버리고 상경한 한 어린 여인이 취직을 한다. 그곳 주인은 지하의 표본실에서 주로 표본을 한다. 그곳은 본래 여성전용아파트였지만 이제는 나이 든 두 할머니가 살 뿐 나머지 공간은 모두 표본을 보관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여인은 취직한 지 얼마 안 돼서 남자에게 까만 구두를 선물 받는다. 하지만 그 구두는 발에 너무 딱 맞아 마치 그녀의 족쇄 같은 느낌을 주지만 그녀는 결코 그 구두를 벗을 생각을 못한다. 남자를 사랑하는 지 확실히 알지도 못하는 여인의 불안한 심리가 마치 손에 잡힐 것 같았다.
구두라는 족쇄와 표본이라는 영원한 틀은 일종의 포기를 뜻한다. 저항할 수 없는 것이라면 차라리 불안해하느니 눈을 감고 잡아먹히겠다는 항복의 표시다. 그것은 사랑이 아닌 상처를 잊기 위한 수단밖에 안 된다. 그것을 상처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살다보면 누구나 어떤 것을 영원히 가둬두고 싶을 때가 있다. 자신에게서 멀리 떨어뜨려서 잊고 싶을 때도 있고 또 그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가두기도 한다. 그 가둠은 어떤 것이든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하면 치유가 아닌 상처를 더 벌어지게 만들 수도 있다. 적당함을 모르는 인간의 마음은 가끔 이런 괴리를 낳는다. 약지의 표본 같은 상처의 제물을.
그런데 이 이야기 어디에 사랑이 있고 영화 같다는 건지는 모르겠다. 나약한 인간의 포기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일 뿐인데. 만약 더 나이 많고 세상 경험 많은 성숙한 여인이었다면 과연 이런 일이 일어났을 지를 생각해보면 미숙의 표본이라고 하고 싶을 뿐이다.
또 다른 작품 <육각형의 작은 방>은 어른 동화 같은 작품이다. 외로운 현대인들의 마음 풀기라고나 할까 이런 방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이들의 삶이 가엾다는 생각만 든다.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가슴에 담아두면 병이 된다. 그래서 어디엔가 그것을 풀어내야 한다. 그런 방을 찾게 된 한 여인의 이야기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서글픈 우리의 자화상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들어주는 이 하나 없는 세상이라면 이런 방 하나 있는 것도 괜찮겠지만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들어주는 이 없는 방에서 혼자 모노드라마 한편을 찍고 나온다 한들 그것이 진짜 상처의 치유 방법일까? 그것보다는 말할 수 있는 상대를 찾아 노력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점점 고립으로 나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영 개운치 않다. 아무리 잘 표현했다 해도 말이다.
상처의 치유가 아닌 덧나게 하는 두 작품이라는 느낌이 든다. 실(室)과 방(房) 사이에 상처만이 부유하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