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신유희
시마다 소지 지음, 김소영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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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미타라이 기요시가 난데없이 스웨덴 웁살라 대학 뇌과학 교수가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사건은 스코틀랜드의 네스호가 있는 티모시라는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다. 한 남자가 정신병원 생활을 오래하다가 간질 발작으로 쓰러졌다 깨어난다. 이때부터 그는 한 가지 그림만 그린다. 그가 알지도 못하는 곳의 성을 중심으로 아주 자세하게 그려내는데 그의 그림이 우연히 화제가 되어 그는 기억의 화가라는 이름으로 화가의 인생을 살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배운 적도 없는 다원우주라던가 양자역학적 설명을 한 교수의 도움을 빌어 자신이 미래를, 그것도 엄청난 비극이 일어날 미래를 예견하고 있다. 그 교수가 바로 미타라이다.

 

미타라이는 그 화가의 이야기를 듣고 그곳을 찾아보는데 그곳이 실제로 존재했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연쇄 살인 사건에 휘말린다. 도대체 그런 살인을 저지르는 정체는 인간인가 마물인가 사람들은 공포에 떨며 조심하고 작은 마을은 경찰들이 경계를 하지만 사건은 계속 일어나 마을의 육십이 넘은 할머니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엽기적 사건을 평온한 마을에 지옥도를 보여주게 된다.

 

시마다 소지의 미타라이가 등장하는 작품 <점성술사 살인 사건>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도 엽기적 살인 사건으로 독자를 숨 가쁘게 몰아붙인다. 그래서 그 사건의 장치만 빼면 옛날 옛적에 쓰였던 소재인데도 불구하고 깜박 속아 넘어가게 만든다. 탁월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일종의 독자를 위한 충격 요법을 쓰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언제 미타라이가 점성술사에서 교수가 된 건지, 그것도 어떤 계기로 그렇게 된 건지 사이의 작품들을 모두 빼고 보니 이렇게 작품이 생뚱맞게 공중에 뜨게 되는 것이다. 시리즈를 작가가 왜 쓴다고 생각하는 지 출판사가 좀 생각을 해줬으면 좋겠다. 물론 개별적으로 한 권씩 읽어도 상관은 없지만 그렇다면 작가가 굳이 미타라이라는 인물을 창조해서 시리즈를 만들어 낼 필요도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친절한 출판이란 시리즈는 아무리 다른 출판사에서 먼저 나왔더라도 그 다음을 이어서 후속작품을 내는 것이 예의다. 아니라면 차라리 완전히 다른 작품을 출판하던가. 시리즈 속에서 인물은 계속 성장하고 달라진다. 독자는 그것도 볼 권리가 있다.

 

인간의 공포는 신에게 의지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종교는 인간이 기대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 신이 진짜 포근히 기댈 수 있는 신인지, 아니면 힘으로 눌러 공포심을 조장해서 굴복하게 만드는 신인지 인간은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런 작은 마을에서조차 인간은 너그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니 작은 마을일수록이라고 해야 하나?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런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과 같다. 이런 작은 마을들이 모여 그들만의 세계, 그들만의 종교, 그들만의 온갖 것을 만드는 것이다. 어린 아이가 자신만의 작은 세상을 만들고 뿌듯해 하듯이. 어른이 되면 유치하게 생각할 일인데 말이다.

 

네스호에 괴물이 있다 없다 말이 많은 것처럼 정말 인간이라면 저지를 수 없는 일이 벌어지니 과연 이것은 인간이 저지른 일인가? 아니면 신의 저주인가? 안개와 눈 속의 작은 마을은 주정뱅이가 보는 세상처럼 빙글빙글 돌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을 펼치는 순간 독자도 그 안에서 빙글빙글 돌 수밖에 없다. 이제 미치광이 티파티 같은 이속으로 빠져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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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7-06-29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시리즈는 순서대로 펴내줘야지. 이것말고도 도중에 유명한 미타라이 시리즈 많은데...

물만두 2007-06-29 15:45   좋아요 0 | URL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아주 생뚱맞은 느낌이잖아요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