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
기리노 나쓰오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인간에게는 선과 악이 반반씩 있다. 밝음과 어둠이 있어서 그것이 어떤 환경, 어떤 상황에서 인간을 자라게 만드느냐에 따라 속에 있는 악의적인 독이 드러나기도 하고 감춰지기도 한다.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은 이런 인간의 근본적인 본성에 내제해있는 독을 표현하는 방식을 취할 뿐이다.

미로 시리즈의 최신작이라 역자는 어떤 방식으로 봐도 좋다고 말을 하지만 보는 독자는 처음부터 조금 당황스러울 수 있다. 미로의 갑작스런 악의가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읽다보면 그런 악의가 기본적으로 어떤 하나의 원인으로 표출된 것이 아님을 알게 되니 상관없이 읽을 수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될 것이다.

첫 장이 날 어떤 기억 속으로 침잠하게 만든다. ‘나이 마흔이 되면 죽을 생각이다.’ 미로의 나이 서른여덟이다. 우연이겠지만 나는 열여덟에 서른이 되면 죽을 생각을 했다. 그런데 지금 딱 미로가 죽을 생각이던 나이 마흔에도 살고 있다. 역시 세상은 살면 살수록 묘하고 재미있다. 자신이 감옥에 보낸 남자를 기다리며 죽을 생각을 하던 미로는 그 남자가 이미 감옥에 들어간 지 일 년 만에 자살했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모두 자신에게 알리지 않은 의붓아버지 탓으로 돌리고 그를 죽이러 간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지니게 되는 본성이 있고 태어나서부터 학습에 의해 쌓이는 감성이 있다. 그것이 바로 인간관계를 지속하게 만드는 사랑과 신뢰다. 그것은 제일 먼저 태어나서 부모에게 배운다. 부모가 자식에게 무조건적인 사랑과 신뢰를 보인다면 자식은 그 사랑과 신뢰를 배우게 된다. 뭐, 가끔 아닌 자식도 있지만 어디에나 예외는 있는 법이니까. 그런데 미로는 미혼모의 딸로 태어나 의붓아버지에게서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자랐다. 그래서 일찍 둘의 관계를 이어주던 엄마가 죽고 나서 함께 살면서도 타인과 다르지 않은 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 미로의 의붓아버지인 젠조의 친구 데이, 젠조와 함께 살던 맹인 여자와 미로가 이웃이라 믿었던 동성애자인 남자 모두가 젠조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각자의 계산에 따라 움직이는데 그들에게서는 그 어떤 신의나 신뢰, 사랑 한 조각 찾아볼 수 없다. 마치 이제야 자신들 안의 독을 깨닫고 마음껏 표출하듯이 그들은 미로에게 달려들고 미로는 낯선 한국인 서진호를 따라 한국으로 도망을 간다.

하지만 일은 그렇게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법이고 유능하지는 않더라도 탐정일로 먹고 살아 온 미로가 둔해지기는 참 많이 둔해진 모습을 보여준다. 그 둔함이 오히려 어차피 무너질 모래성이라면 무너지게 놔두고 다시 쌓아버리자는 작가의 의도라 생각하니 역시 기리노 나쓰오는 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역자의 말에서까지 앞날의 어둠을 예고한다. 그것이 작가에게 빠져들게 하는 마력적 어둠의 늪이다.

 

세상이 예전보다 더 나빠질 거라고 생각하는 작가의 말은 뭐, 언제는 좋았던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좋은 사람은 여전히 좋고 나쁜 사람은 언제나 나쁜 것이 세상인데... 그래도 이런 어둠이 책속에 갇혀 책으로만 읽을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은 해본다. 멍청한 생각인 줄 알지만 다행증(多幸症)도 병이지만 그 반대도 또한 병이지 싶기 때문이다. 어쨌든 미로의 이후의 앞날이 기대되고 걱정된다. 남자 복이 없는 건지 남자 보는 눈이 없는 건지 아무래도 더 험난한 일이 일어날 것 같다. 뭐, 그래도 미로가 알아서 하겠지만.

 

남성만 하드보일드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독자들에게 여성도 하드보일드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작가가 선사한 작품이다. 하드보일드라는 장르를 생각하고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 세계를 느끼며 본다면 그 어둠과 지독한 독 안에서 현실의 우리가 상실하고 있는 것, 지켜야 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독은 독으로 다스린다는 말도 있으니 독 많은 세상, 작가의 작품으로 풀어보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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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6-21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찍으면..음..무서운 페이퍼 제목이 되버리네요..^^

물만두 2007-06-21 13:10   좋아요 0 | URL
메피스토님 리뷰예요^^ 그리고 조선인님께 이를꼬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