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 미상 여자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조용희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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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느 순간 자신이라는 존재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여기 세 명의 여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제 막 십대를 졸업하게 된 열여덟의 금발머리 여자와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열여섯의 갈색 머리 소녀와 실연을 당하고 낯선 도시에서 고독을 느끼며 외로워하는 좀 더 성숙한 여인이.

 

이들은 모두 떠난다. 금발머리 여자는 모델이 될 수 없음에 좌절하고 무작정 파리로 떠나와서 한 남자를 만나지만 그 만남은 정체불명의 남자와의 한 달 간의 만남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뒤로 오래도록 그 시간을 기억하며 살고 있다. 이제 그녀는 신원 미상의 여자가 되었다. 그녀는 그 남자처럼 되고 싶었는지 모른다.

 

열여섯에 수녀원 기숙학교를 과감히 떠나 자립을 선택한 소녀는 고단한 나날을 보낸다. 사람들은 그녀가 잘될 거라고 말을 하지만 그녀는 결코 잘 되지 않는다.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두려움 가득한 세상에 홀로 던져진 외로운 소녀의 고단한 삶은 자신을 찾을 기회조차도 주지 않는다. 다만 과감한 결단력만을 가르쳤을 뿐이다.

 

말발굽소리를 싫어하던 여인은 좀 더 남아 있기로 한다. 아직 더 있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역시 좀 더 나이를 먹은 사람이 자신에 대해 여유를 갖게 되는 모양이다. 자아 찾기라... 과연 그들의 자아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마치 가족이, 사회가 이들을 세상에 내버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난 느낌을 갖게 한다. 버려진 사람에게는 보호가 되는 울타리가 없기 때문에 자신을 찾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어쩌면 평생 찾지 못하게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이 아닐까. 울타리가 있는 사람이든, 울타리가 없는 사람이든 찾지 못하면 절대 찾지 못하는 법이다. 의미를 어디에 두느냐가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읽는 내내 사라지고 싶습니다. 떠나고 싶습니다. 누군가 저를 안아주세요. 나를 좀 바라봐 주세요. 하는 것 같은 그들의 속삭임이 들리는 것 같았다. 외롭고 쓸쓸하고 슬프고 고단한 세상 어디에나 있을 신원 미상의 여자들이 지금 구원의 손길을 뻗고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여전히 이들은 신원 미상일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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