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루
니시카와 미와 지음, 오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에서는 살인자가 된 형과 그 형으로 인해 고통 받는 동생의 인생을 보여주며 형제란 그래도 끊어낼 수 없는 존재라는 점을 역설적으로 이야기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 작품에서는 이미 일어난 사건이 아닌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처음 이 작품을 접했을 때 영화로 만들기 위해 나온 건 줄은 몰랐다. 단지 사건인지 사고인지 두 형제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작품 속에는 두 형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형제란 어떤 존재인가 하고 묻고 있기 때문이다. 의절하다시피 사이가 안 좋은 아버지 형제와 그래도 착한 형으로 인해 별 탈 없이 관계가 잘 유지되어 온 아들 형제, 이 두 종류의 형제가 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한 여자의 죽음에 의해서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려서부터 주변에서 그런 말만 들어 그것이 자신의 모습으로 자기도 모르게 되어버린 것을 뒤늦게 깨달을 때가 있다. 자신이 만들지 않은 모습은 갑갑하고 싫어도 벗어버릴 수 없는 족쇄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미노루에게도 그런 시점이 찾아온다. 그것은 그 흔들리는 현수교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든 자신의 동생 다케루가 자신을 믿지 않는다는 근원적인 배신 때문이었다.

 

흔히 우리는 이런 말을 한다. 형제는 설사 형이든 동생이든 살인을 저질렀다 해도 감싸줘야 하는 것이 형제라고. 그것은 원초적인 핵심이다. 세상에 모든 이들이 자신에게 등을 돌린다 해도, 자신을 믿지 않는다 해도 끝까지 자신을 믿어줄 사람은 가족, 부모와 형제라는 혈연에 의해 형성된 묘한 논리, 이해할 수 없는 논리가 이 작품 안에 숨어 있는 것이다.

 

자라면서 형제는 질투하고 시기하고 싸우고 화해한다. 영원한 애증의 관계가 아마도 형제일 것이다. 그래서 성서에서 최초의 살인자는 자신의 동생 아벨을 살인한 카인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 영원한 수수께끼 같은 이해하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고 단절되면 남보다 더 단절되게 되는 관계... 이 작품은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말을 했다면, 사랑받는다는 것을 이해했다면, 진심이라는 것을 보여줬다면 아마도 그들은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어긋난 대화, 소통의 단절과 서로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이 그들을 돌이킬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살아온 삶이 달랐다고 이해의 폭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해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점점 틈은 벌어지고 관계는 흔들려 급기야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다케루는 아직도 미노루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모든 것을 잃고 난 뒤 그때 비로소 손을 내밀지만 벌어진 상처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처럼 치유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대화하지 않는 형제들, 가족들은 이 작품에 눈길을 돌리시길. 세상에서 절대 잃어서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 당신들이 서 있는 흔들리는 현수교 아래 차디 찬 강물이 당신들에게 비춰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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