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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ㅣ 이룸 해외문학 2
에르네스토 사바토 지음, 조구호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한 남자가 자신이 가장 사랑하던, 그리고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여인을 살해했노라고 말하며 시작하는 이 작품은 시작부터 심상치 않고 라틴 문학 특유의 어려움을 느끼게 해준다.
책을 읽다 보면 남자와 여자 사이에 유리벽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자기 말만을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사랑의 이기적인 병적 심리 상태를 잘 보여준다. 여자는 죽었기 때문에 남자의 관점에서만 이 작품을 읽어나가야 하지만 읽어가면서 그 유리벽 반대편에 서서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 말 하고 있는 여자를 본다. 그 여자가 같은 관점에서 남자에 대해 쓴다면 또 다른 작품, 소통되지 못하는 절망적인 이야기가 나올 것이고 화자가 제 3자가 되더라도 그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에 빠지면 상대방을 배려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것보다 자신의 사랑에 대한 과대망상을 품기 때문이다. 내 사랑은 이렇게 크고 당신만 생각하는데 당신은 왜 나처럼 사랑을 하지 않느냐고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비단 사랑에서만 생기는 문제는 아니다. 인간이 존재하는 어떤 곳에서든 이런 문제는 발생한다.
한 남자가 터널을 빠져 나오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터널 앞에 유리벽이 있음을 몰랐다. 자신이 만든 터널과 유리벽이. 소통하려 하지 않고 자기만을 내세우는 사람들 사이에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다. 오로지 있는 것은 깊고 어두운 터널 속에 습한 냉기와 지저분함 가득한 광기와 공포, 그리고 파괴되지 못한 자신의 분열된 조각들이 쌓이게 될 뿐이다. 그리고 흐르는 피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자기 자신의 피일뿐이다. 그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를 살해했지만 사실 그가 살해한 것은 자기 자신이고 자신의 자아, 자신을 더욱 가둘 삶이었을 뿐이다. 그 살해로 더 깊이 숨어버릴 수밖에 없는...
라틴 문학의 전형을 보여주듯 이 작품에서도 현실적 환상 문학은 짙게 드리워져 있다. 하지만 보르헤스나 다른 라틴 문학 작가와는 조금 다른 느낌을 받았다. 나는 그에게서 이완 맥완의 <위험한 이방인>과 줄리언 반스의 <그녀가 나를 만나기 전>에서 느꼈던 집착과 광기어린 사랑을 보았다. 남자가 원하는 사랑의 방식이 어쩌면 <위험한 이방인>에서의 그런 사랑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위험한 이방인>은 주인공이 만들고자 한 사랑의 결말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사랑으로 보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녀가 나를 만나기 전>은 만약 여자가 모든 것을 다 보여줬더라면 그래도 주인공이 같은 결말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에 대한 내 결론이다. 그래도 주인공은 아마 이러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위험한 이방인>과 <그녀가 나를 만나기 전>의 중간쯤에 놓이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모두 사랑의 광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편이 내게 이 작품의 이해를 좀 쉽게 하게 만든다.
세 작품을 비교하며 보는 것도 나름의 멋진 독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