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사요코
온다 리쿠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고등학교 3학년 때를 생각한다. 그때 나는 사실 그다지 괴롭지도, 진학에 대한 두려움도, 미래에 대한 설렘도, 그 어떤 것도 없었다. 너무 편해서 그때 제일 많이 살이 쪘었다. 차라리 어떤 면에서는 편했다. 고3이라고 하면 누구든 편하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그 처지를 동정하는 건지 건드리지 않아서 신경 쓰고 부딪칠 일이 없었다.

 

아마도 나는 내 팽이를 팽개쳐 버렸는지 모르겠다. 옆에서 아이들은 잘 돌아가게 채찍질을 멈추지 않는데, 선생님들도 아이들이 채찍질을 잘하도록 애를 쓰는데 나 혼자 팽이가 돌건 말건 그런 것인지 모른다.

 

학교는 아이들을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말하고 있다. 똑같이 담고 있어 추억을 공유하게 하고 같은 배움을 나누게 하지만 그곳을 나가면 그들은 또 다른 그릇을 찾아 들어간다. 인생은 그런 그릇을 옮겨 다니는 그릇살이가 아닌가 싶다.

 

사요코의 전설이 내려오는 학교, 매년 사요코가 비밀리에 정해지고 사요코가 된 아이는 자신이 사요코임을 누구도 알지 못하게 축제 때 연극을 잘 마무리하고 다음 사요코가 될 아이에게 사요코의 열쇠를 전해줘야 한다. 하지면 사요코가 여섯 번 있게 되는 올 해 같은 이름의 아이가 전학을 오게 되면서 이야기는 비틀어지기 시작한다.

 

어떤 학교에든 전설 하나씩은 있다. 대부분이 무섭거나 슬픈 전설이다. 우리 학교에도 그런 전설이 있었다. 매년 한명의 학생이 반드시 사고를 당하게 된다는... 얼마나 끔찍한 전설인가. 이런 전설은 소풍 때면 비가 온다는 전설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이들에게 공포심을, 뭔가 모를 불안감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다니던 3년 동안 어김없이 사고는 일어났다. 어쩌면 우연의 산물일 수도 있고 조심하라는 당부의 말이 와전된 것일 수도 있다. 그 전설의 시작은 그 누구도 모른다는 것 또한 전설의 일부분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사요코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릇 안에 들어 있던 우리, 그 그릇을 빠져 나올 수가 없어, 아니 빠져나가지 못하게 우리 스스로 막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팽이를 돌리건 돌리지 않건 하나의 그릇에서 다른 그릇으로 옮겨 가는 것은 힘든 일이고 앞서 옮겨 본 사람들은 아이들이 조금이나마 좋은 그릇, 편안한 그릇으로 옮겨지기를 바랄 테니까.

 

처음에는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는데 다 읽고 나니 단순하게 전설에 대한 이야기, 학창시절의 이야기가 아닌 거대한 인생 이야기의 한편을 읽는 느낌이다. 나는 그릇에 옮겨가지 못했다. 몇 번밖에는. 그래도 지금의 내 그릇에 스스로 만족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사요코가 바란 것은 그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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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7-01-13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요즘 뒤늦게 온다 리쿠에 대해 관심이 샘솟고 있어요. 이러다가 온다 리쿠 책 다 수집해놓고 또 한동안 쌓아놓기만 하는 건 아닌지.

물만두 2007-01-13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라이니님 제가 지금 그러고 있습니다^^;;;
켈님 그러게요^^

물만두 2007-01-14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켈님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모든 추리로 읽으면 안무서워한다구요^^ 이 책 추리로 읽어서 하나도 안무서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