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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듀본의 기도 - 아주 특별한 기다림을 만나다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오듀본은 미국 조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람이다. 그가 쓴 미국의 조류들이라는 조류도감은 세계에서 가장 큰 책으로 꼽히고 있다. 그는 이 책의 새들을 모두 손수 그렸다. 하지만 그도 자연, 특히 새를 사랑했지만 당시 수십 억 마리에 달하는 나그네기러기가 그렇게 순식간에 멸종할지 짐작하지 못했다. 이 작품의 제목인 오듀본은 사람 이름이다. 그런데 그의 기도란 어떤 기도일까.
책 내용을 살펴보면 일본이 쇄국을 단행했을 때 외따로 떨어진 작은 한 섬만 외국과 교류를 독자적으로 한다. 그리고 일본이 개방을 하자 이번에는 그 섬이 문을 걸어 잠근다. 일본 본토에서도 모르는 섬, 지도에도 없는 섬, 섬사람들은 단 한사람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섬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섬에는 이상한 것들이 있다. 말하는 허수아비가 있어 예언을 하고 섬사람들의 믿음의 구심점으로 자리 잡아 있고, 사쿠라라는 사람이 있어 누구든 죽일 수 있다. 그만이 총을 소지하고 있어 총에 맞아 죽은 자는 죽을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하고 항변하지 않는다. 사쿠라는 마을의 룰이기 때문이다. 또, 전설이 하나 전해 내려온다. 외부에서 사람이 와서 섬에 없는 한 가지를 전해주고 간다는... 그리고 때를 맞춰 이토가 섬에 들어오게 된다.
이토가 들어오자마자 말하는 허수아비가 살해당하고 외부에서 이토보다 먼저 들어온 사람도 살해당한다. 마을 사람들은 패닉 상태에 빠진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예전에는 허수아비가 말해주었기 때문에 안심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섬은 이 외에는 모두가 외부와 같은 섬이다. 경찰도 있고 우체국도 있다. 화가도 있고 또한, 범죄도 있다. 딱 한 가지만 없을 뿐이다.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할 인물로 사쿠라를 꼽고 싶다. 사쿠라는 새를 재미삼아 벽에 던져 죽이며 노는 아이도 가차 없이 처단한다. 그는 말한다. “이유가 안 돼!”어린 아이라고 새를 재미로 죽여도 된다는 것이 무죄를 받을 이유가 될까? 또 동생이 약하다는 이유로 통 속에 넣고 물을 채워 죽이려는 어린 형도 처단한다. 아이는 자기는 어리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역시 사쿠라에게는 이유가 안 된다. 꽃밭을 밟는 자는 죽인다고 말을 하고 실제로 그렇게 한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다른 룰에 의해 돌아간다. 완전히 인간 중심의 룰에 의해서. 하지만 큰 틀에서 본다면 인간도 자연과 지구의 한부분인데 그것이 공평한 것일까? 이 작품은 그렇게 묻고 있는 듯 보인다.
우리는 동물을 먹는다. 그 기준은 무엇인가. 이 책에서 이토는 말한다. 자신과 친구인가 아닌가로 나눈다고. 그래서 다시 묻는다. 친구가 아니라면 인간을 먹어도 되느냐고.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아니면 이것도 자연의 법칙이고 지구가 돌아가는 이유일지 모르지만 동물을 먹는다. 식물도 먹는다. 나무를 자른다. 취미로 새를 쏜다. 꽃을 꺾는다. 우리의 룰에서는 이것이 괜찮다. 하지만 진짜 괜찮은 것일까?
이스터 섬의 원주민들은 급격하게 자연이 파괴되고 자신들이 멸망하는데도 그것을 몰랐다. 그리고 지금 그 섬에는 모아이들만이 남았다. 원주민들 몇 천 명과 황폐한 땅과 함께. 이들에게도 룰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룰로도 한번 사라진 것은 복원하기 힘들다. 한번 변한 것은 되돌리기 어렵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지구 이외의 인간이 살 수 있는 행성을 찾으라고 한다. 지구는 점점 변하고 있다.
사쿠라의 룰과 오듀본이 목격한 나그네비둘기의 멸종이 우리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알려주는 것은 아닐까.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룰과 그에 따른 하나의 종의 멸종은 인간의 멸종, 더 나아가서는 지구라는 행성의 소멸로 이어질 수 있음을.
책에서 주는 메시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의 초기작이라 그런지 메시지의 강렬함 때문에 어설프게 제거되지 못한 쓸데없는 가지가 보인다. 그래서 매끄럽게 보이지 않고 끝맺음도 좀 그렇다. 약간 산만하기는 하지만 초기작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에 비해 전해지는 보기 드문 묵직한 메시지로 커버되는 점을 고려한다면 썩 괜찮은 작품이라고 여겨진다. 오듀본의 기도가 우리 모두의 기도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