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의 마술사 샤갈 전
2004년 11월 13일(토) ~ 2005년 01월 16일(일)
부산시립미술관.7 주제 전시
연인-COUPLE & LOVERS
상상-IMAGINATION
파리-PARIS
지중해의 세계-MEDITERRANEAN WORLD
서커스-CIRCUS
오딧세이-ODYSSEY BY HOMER & ETC
성경-BIBLE

무슨 일일까, 달리 전시회에 이어 보게 된 것은 바로 마르크 샤갈의 전시회.
달리가 알렝보스케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무능한 화가로 꼽았던 바로 그 마르크 샤갈의 전시회가 바로 이웃한 곳에서 열리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샤갈보다
달리의 그림에 더 끌리지만, 이번 전시회만 놓고 본다면 단연코 샤갈의 전시회가 훨씬 만족도가 컸다. 화보집이나 책에서 조그만 토막으로 봐오던 사진이 전부가 아닌 실제의 그림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황홀한 일이었다.

사람들도 많고, 시간도 부족해서(반나절로은 너무 짧다) 푹 빠져서 못 본 것과 전시회에 출품된 그림들 중 대작이나 유명한 그림은 몇점 안되었다. 특히나 가장 유명한 샤갈의 [도시 위에서]는 복사본 이어서 한숨을 절로 자아내게 했고, 그나마 러시아와 파리 시기의 매력적인 그림들은 단 몇점 뿐이었고 120여점 가운데 대부분이 말년의 그림이거나 삽화의 석판화본들과 성서의 에칭, 말년의 유채로 작없한 성서연작 들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수탉]이나 [비테프스크 위의 누드], 이디시 실내극장의 벽화4점을 본 것만 해도 해외의 미술관들을 돌지 않는 이상 꿈도 못 꿀 일이었는데, 닥치고 보니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다.

전시실은 4개로 나뉘어져, 연인-COUPLE & LOVERS과 상상-IMAGINATION, 파리-PARIS와 지중해의 세계-MEDITERRANEAN WORLD, 서커스-CIRCUS와 오딧세이, 성경-BIBLE으로 굵직하게 나눠 놨다.

아쉬우나마 [도시 위에서]의 사본에서 살작쿵 일기 시작한 행복의 기운은
[꽃], [가족], [파리 위의 신부], [파란 풍경속의 신부], [파란 얼굴의 약혼녀],[생폴 위의 부부]들을 살펴 가는중에 아지랑이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는데, 후기의 작품들에선 밝은 색조가 확연히 느껴지기 시작했다.
[검은 마을], [파란 추시계], [초록색 밤], [땅거미 질 무렵], [추시계와 자화상
], [비테프스크 위의 누드], [흐린 햇빛마을], [수탉]에서는 마르크 샤갈의 비테프스크와 자신감 혹은 자존심, 종교에 대한 끝없는 구애에 도취되었으며,






[바스타위], [베르시 부두], [노트르담의 유령], [굿모닝 파리], [연보라색 누드]를 포함한 샤갈의 대부분의 유화들에서 내가 새삼 발견한 탄성은 환상적인 색조의 자연스러운 어우러짐이었다. 고흐가 의사를 그린 노랑과 녹색의 보색 그림이 닭장 구멍을 막을 정도로 보색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당대의 사람들을 경악시켰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러나 샤갈은 위험한 시도를 하지 않고도 많은 보색들이 우리 눈안에 편안하게 인도된다. 샤갈의 붓끝을 통해, 보라색 누드, 노란 달, 빨간 얼굴과 초록색의 말얼굴, 그외도 많은 현란한 색을 버무려 놓았는데도 오히려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니 내 짧은 생각에도 색의 경계를 없앤 마르크 샤갈이 그렇게 위대해 보일 수가 없었다. 하물며 각각의 색이 전하는 그 맑으면서 아렷한 감동은 더 말해서 뭣하나. 아니, 샤갈의 색채에 대해서 깐죽깐죽 더 멘트를 달지 않는 것은 내가 아직 색깔을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마티스나 피카소 관련 책들은 즐겨 읽고 있지만 그건 어디 까지나 '교양의 수준'이지 색에 대해서는 오리무중의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그저 샤갈의 색이 내 눈에  인상을 남기는 그 찰나에
아직은 감동하는 것이 내겐 더 편하기도 하고.

 



오늘의 하일라이트는 국립 이디시 실내 극장의 벽화로 발굴.복원된 4점의 벽화패널은 한동안 나를 그 자리에 벌 세워 놓기도 했다.
광대의 모습과 이디시 관용구들이 연상되는 [연극], 중매 아줌마의 춤사위에서부터 레이스 스타킹의 정밀한 묘사에 침을 흘리며, '거꾸로 서있는 남자'를 발견한 [무용], 바짓자락이나 회당 지붕등에 말레비치를 비웃는 추상의 검은 조각들을 보며 키득 거리고, 바이올린 악사의 비딱한 웃는 표정에선 샤갈의 인간적인 면모에 너무나 재밌어했다. 특히 '똥 누는 남자'까지 확실히 마무리시켜 준 [음악]이었다.유대 필경사의 모습이나 나무, 다리 등의 세밀묘사와 유대인의 수건들 묘사가 혁명에 대한 샤갈의 낙관적 자세를 풍기고 있는 [문학]까지 너댓번은 왕래하면서 봤었는데, 패널의 벗겨진 허연 뭉퉁이마저 다시 보고 싶을 정도로 감탄스럽고 경이로운 작품들이었다 싶다.

『오딧세이아』(호메로스)를 위한 삽화는 83점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시지프스],[오딧세우스와 페넬로페],[향연],[에콜레성],[아테나여신에게 바치는 제물],[기우페이레스],[나우시카앞에 모습을 드러낸 오디세우스],[키르케],[오딧세우스의 침대],[폴리페모스], [참새와 비둘기][테오클라메노스]등을 내 눈에 박아 넣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역시 이 작품들에서도 샤갈 특유의 유대적 정서와 행복한 판타지가 주조를 이룬다. 『오딧세이아』의 삽화들은 대부분 석판화였는데, 벨라의 책에 실렸던 것들이나 『마인 레벤』의 범상치 않은 에칭 삽화들도 보고 싶었는데, 흐음 이건 다음에 또 기회가 오겠지. 마르크 샤갈이야말로 대중적인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니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 같기도 하다.



[서커스를 위한 대형 스케치]에선 유대 악단의 흥겨운 모습, 파란얼굴, 거꾸로 서있는 남자,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등장하는데, 실제로 보니 대단하긴 한데 툴루즈 로트렉의
회화 사진들에서 봤던 비감어린 얼굴들이 샤갈의 그림에선 없었다.
그러나 정말 즐거운 얼굴들을 한 바이올린 연주자와 광대, 수탉, 염소들이 등장하는 [서커스에서], [하얀 여곡마사와 광대], [서커스의 영혼], [광대연주가], 군중들의 모습은 생략적으로 그려진 데 비해 염소와 꽃다발등이 유독 강조된 [퍼레이드]를 보며, 말 그대로 즐기면서 다음 그림들로 넘어갔다.
석판화인 [수탉의 날개]에서 나름대로의 이미지를 연상해 본 [마술적 비상], 붉은 강과 누운 두드, 꽃다발에서 행복을 만끽한 [노트르담의 풍경]과 [오페라 하늘 안에서], [황혼 속의 부부], [센느 강변], [환희]등에선 과연 색채의 마술사다 싶을 정도로 유화 뿐만 아니라 다색 석판화까지 영역을 넗힌 그의 손과 열정에 시샘을 내고 말았다. 그 외에도 [밤의 아틀리에], [검은 바탕위의 화가]는 노년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로잡았던 석판화의 세계에 자못 도취되기도 하고.
당대 최고의 인쇄 출판 업자와 공동으로 작업한 일련한 석판화집 들에서도 그런 감탄은 내내 이어졌는데,
[포로스 섬],[인어공주와 나무], [니스 하늘의 약혼녀], [일몰], [장미와 마술사], [꽃다발을 든 여인], [부부와 물고기], [검은 바탕위의 화가], [인어공주와 물고기], [니스의
빅트와르 거리], [인어공주와 시인], [장미 꽃속의 천사의 만], [니스의 꽃 축제]들이 바로 그런 감탄을 자아낸 작품들이었다.

 

마지막으로 마무리는 역시 성서에 관련된 석판화와, 애칭, 유채 들이었다. 이상한 대조를 보였지만, 샤갈의 의도가 싶게 눈에 들어오는 [야곱과 천사의 힘 겨루기]와 다윗왕의 얘기가 재밌게 표현된 [파란색 다윗왕], [다윗왕의 노래], [다윗의 시편]들이 인상에 강하게 남았다.


또한 구약을 충실히 반영한 유채들에선 [인간 창조],[아가, 솔로몬의 노래I], 결혼의 이미지로 바뀐[아가, 솔로몬의 노래I],[아가, 솔로몬의 노래II],[바위위에 새김], [노아와 무지개] 등 샤갈 특유의 등장요소들이 변함없이 어우러졌다.  또한 구설수도 많게 신약의 이미지들을 구약에 함께 표현했던 [강변에서의부활], [십자가에서 내려진 그리스도], [야곱의 꿈]에서는 화가의 고집과 그 다운 종교관에 또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전시회를 둘러 보고 나서 나오는 길에 욕심이 솟구친 까닭에
'폐관시간 몇분전입니다'라는 직원의 독촉을 등 뒤로 흘려 들으며 또 한 바퀴 돌았는데, 그래도 물컵의 물을 다 못 마신듯 아쉬웠다. 전시된 작품들 외에도 큐레이터를 따라다니는 갤러리들도 진기한 볼거리였다. 일요일이라서 그랬는지 아이를 데려온 부모들이 많았고, 작품 설명의 토씨 하나 놓칠까봐 아이들의 손목을 우겨잡고 달음박질 치는 부모들의 모습이 재밌기도 했다. 오죽하면 뚫어져라 쳐다 보는 군중의 시선이 무서웠는지 그 큐레이터는 웃으면서 제발 자기 얼굴말고 작품을 좀 봐 달라고 했는데, 나는 그 큐레이터가 더 재밌어서 한참을 구경했다.

달리전에서도 마찬가지 였지만 사걀의 전시회에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나 종교와 관련된 작품들이다. 내가 지금껏 다녀 본 대가의 몇몇 전시회들은 대부분 끼워 팔기처럼 꼭 성물이나 성화, 성경이니 하는 작품들이 꼭 채워져 있었다. 사실 그런 종교적인 작품들도 작가의 작품임을 부정할 순 없고, 흥행의 여지도 고려되야 하겠지만 가끔은 말이다, 가끔은 오로지 비종교적인 작품들로 구성되거나 아예 반종교적인 작품들로만 맞춰진 그런 전시회에 가보고 싶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헨리 다거의 전시회라던가, 사람들 반응이 정말 재밌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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