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럿이 뭉쳐 극장에 가서 즐기기 좋은 아이템으로 더 할 나위 없는 영화다. 잘 나가고 재밌어할 블록버스터. 괴상한 영화 골랐다고 친구들로부터 욕먹는 최악의 경우는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재난영화를 보는 이유? 액션과 스릴, 그리고 스케일을 한번에 느낄 수 있는데다, 영화를 보는 나 만큼은 그 재난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안도감이 보상처럼 따라오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투모로우>> 는 전자를 확실히 만족시켜 준다. 전작 <<고지라>>, <<인디펜던스데이>>를 훨씬 압도하는 특수효과가 스크린을 종횡무진 누빈다. 그러나 후자의 안도감을 느끼기는 커녕, 영화보는 내내 머리 뒷골을 서늘하게 만들더니 나중엔 에어콘의 냉기가 아닌 현실화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로 몸을 떨어야 했다. 무지 춥더라.
"BREAK DOWN", "생존게임", "DRAGON HEAD""에서 느꼈던 종말의 그 공포를 영화에서 다시 확인하는 기분이란 살인마가 등장하는 보통의 호러무비와는 그 체감온도가 확실히 틀린 것이다.
코흘리개 때 봤던 SF소설중에 (작가가 암스트롱이었는지는 기억이 안난다만) 양극의 빙하가 녹아 온 지구가 홍수로 뒤덮이며, 생명을 얼려버리는 빙하시대가 도래한다는 그런 내용이 있었다.
피난처도, 비상식량도 소용없는 종말을 어린 나이에도 느끼고 무서워서 얼마나 울었었던지. 태풍 매미나 최근 들어 벌어지는 여러 기상 이변 뉴스를 대할 때 마다 나는 그 소설의 마지막을 항상 머리에 떠올리곤 했는데, 영화<<투모로우>>때문에 이젠 3D로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게 된것이다. 태풍 매미가 강타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던 것도 한몫했었고.

여러 스펙터클한 장면들 중 얼음에 휩싸인 자유의 여신상은 장관이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시선을 압도하는 그런 볼거리 외에도 외국 감독 답게(?) 미행정부를 비난하는 스토리와 대사들이 많은 공감을 산다. 뭐, 요즘은 다들 들먹이는 비아냥이라 빤해 보이긴 하지만, 미국인들이 줄줄이 멕시코의 국경지역에 난민둥지를 틀고 빌빌 거리는 장면만큼은 솔직히 쾌감을 준다. 재난대비엔 뒷북치는 관리기구나 특종에 목 매단 미디어들의 간은 여전히 배밖에 나와 있는 풍경도 그만그만하고.
미국영화면 으례히 자국을 <<태양의 눈물>>이나 <<아마겟돈>>처럼 세계의 히어로이자 인류애로 포장하려고 생똥을 사는 그런 영화들보다는 보기가 훨씬 편했다.  미국인을 살리려고 난리부르스를 치고, 미국의 기후학자 (그것도 고대전문의)가 경고를 하긴 하지만, 미국이 전세계를 재앙으로부터 구한다며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것은 아니니깐.
그러나 도쿄에 우박이 내리는 에피소드가 있어서 세계적인 기상재앙을 조금은 다뤄줄까 했던 기대는 역시나 어긋나 버렸다.  아직도 아시아의 인명은 이야기 거리도 안되고, 유럽은 빼먹으면 곤란하니까 곁다리로 등장하고 말이지.

아무리 아들을 구하려는 아버지의 부성애와 재난을 강조하려고 했기로소니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아들 한명 구하려고 동료의 죽음도 마다하는 설정은 진부하고, 후반부 부터는 허리케인이 몰아닥친 후 재앙의 크기를 보여주는데 치중한 장면의 연속과 소품적인 대사들로 메꿔서인지 슬슬 스토리가 허술해졌다. 그래서 아들내미의 짝사랑이 이뤄진다는 설정이 한 부분을 장식했던 거긴 하지만. 그나마 웃었던 부분이란 니체의 책을 불쏘시개로 태우려자 흥분하던 책벌레의 대사 때문이었다.
도서관에서의 풍경은 폴 오스터의 『폐허의 도시』의 도서관을 생각나게 했다. 종말의 폐허 속에서 은신처로 찾아든 그 도서관에서 장서들을 불쏘시개로 태우던 얘기가 있었거던.
살아남으려면 못할 짓이 없겠지만, 개인적으로 책을 태우는 것은 가장 최후에 선택하고 싶은 일이다.

* 데니스 퀘이드를 위시한 캐릭터가 다들 심심했다.
하긴 재난 영화에서 사람이 너무 튀면 재미없긴 하지만, 아들을 구하고자 하는 부성애와 가족에 소솔했던 반성, 위험을 감지하고도 자신이 할 수 있는 한계에 괴로워하는 심정 등 감정적인 공감대 형성이 어려웠던 것이 이 영화의 스토리 다음으로 미진했던 바다.
그래도 아들 샘으로 나왔던 Jake Gyllenhaal이 잘 생겼다고 심봤다고 녀석도 있는 걸 보면 그럭저럭.

** 영화관에서 늑대가 으르릉 거리는 그 장면에서 나와 같이 영화를 봤던 사람들은 모두 황당한 경험을 했었다. 스피커로 들리는 늑대의 짖음 말고도, 실제로도 으르릉 거리는 사운드가 live로 우리를 압도했다.
그 진원지는 앞자리에서 엎어져 자는 한 아저씨였는데, 코고는 소리가 얼마나 우렁찼던지 늑대의 표효는 저리가라였다. 아무리 영화가 초반부 때려 붓다가 조용해졌다지만, 아저씨가 그렇게 골면 열심히 보는 우리가 얼마나 산통이 깨졌겠냐고.
영화가 끝나고 모두들 뒷문으로 퇴장하지 않고, 몸소 계단밑 까지 내려와서  아저씨를 한번씩 감상하고 갔다는 것은 나 혼자만의 불평이 아니었다는 증명 아니겄소? 담부터 자고 싶으면 조용히 주무시던지, 댁으로 가셔요, 잉?

*** 본지 2주일이나 지난 이런 걸 열심히 올리는 걸 보니  슬슬 블로그에 미쳐가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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