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팡이 경주 높새바람 16
김혜진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7년 6월
장바구니담기


지팡이가 자란 만큼 아현도 자라고 변했을까. 많은 게 변하지는 않았다. 르겔의 상처는 채 낫지 않았고 뮌의 검은 머리도 붉어지지는 않았다. 아현은 여전히 불완전한 세계의 아이였다. 그래도 좋았다. 그것 자체로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았고, 앞으로 변해 갈 것이라는 것을 아현은 알았다. 르겔의 상처는 나을 것이고 뮌은 섬나라에서 더욱 강해질 것이다. 르에도 아현도, 지팡이가 변하고 자랐듯이 달라질 것이었다. 그러니 감추지 않아도 되었다. 아현의, 모두의 불완전함을 그대로 받아들여도 좋았다.-569-570쪽

완전한 세계는 바로 그렇게 안으로 모이는 곳이야. 책 한 권으로, 근원으로 수렴되는 곳. 완전한 세계 사람이라면 근원에서 더할 나위 없는, 완벽한 이상을 찾아내었을 거다. 그랬다면 나와서도 역시 그곳에 마음이 끌려갈 수밖에 없지. 근원에서 비롯한 지팡이를 먹게 만들 정도의 갈증을 느낄 거야.
...
하지만 불완전한 세계는 밖으로 팽창하는 곳이지. 넓어지고 변화하고 퍼져 나간다. 너 역시 그곳에서 네 꿈과 바람들을 보았겠지만 네 가장 깊은 소망은 보지 못했을 거야. 그건 근원에 없고, 완전한 세계 안에도 없어. 결국 너는 근원에 묶일 수 없어.-57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플로라의 비밀 - 3단계 문지아이들 82
오진원 지음, 박해남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월
장바구니담기


"너희들은 페페르온들이야. 작은 어른들이지. 혼자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나이란다.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힘은 없어. 그것을 절대 잊으면 안 된다. 아주 사소한 생각이라도 거대한 소용돌이를 몰고 올 수 있는 법이니까. 너희들은 어른들이 없어서 무서운 게 아니라 혼자라는 생각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뿐이야. 두려움은 진짜 감정이 아니라 가짜 감정이야. 거기에 속으면 안 된다.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네 옆을 돌아보렴, 마로와 로링이 네 손을 꼭 잡아 주고 있을 테니 말이다."-76쪽

"우리는 때로 다른 이의 짐이 자신의 짐보다 가벼울 거라 생각하지. 하지만 우리는 각자 감당할 수 있는 짐을 짊어지고 태어난단다. 자신이 짊어지고 있는 짐이 가장 극복하기 쉬운 짐이야."-13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어떻게 바보가 되었나
마르탱 파즈 지음, 용경식 옮김 / 작가정신 / 2005년 2월
절판


"사실, 저는 사는 데 워낙 재주가 없다보니, 죽음을 통해서 자아를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아마도 사는 것보다는 죽는 것에 더 능력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59쪽

구약의 전도서에는 "학문을 많이 쌓은 사람에게는 고통도 쌓여간다"라고 씌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어린이들과 함게 교리문답에 가는 행복을 가져보지 못한 나로서는 공부의 위험을 미리 알지 못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정말 행운아들입니다. 어려서부터 지식의 위험을 경계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들은 평생 그 위험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단순한 사람들은 행복합니다.-77쪽

물고기는 언제 비가 오는지를 알지 못한다는 의미의 중국 속담이 있습니다. 이 속담은 지식인에게도 완벽하게 적용됩니다. 지식인은 스스로 똑똑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두뇌를 사용해서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석공은 손을 쓰지만 '어! 이 벽은 똑바르지 않군. 네가 이음 부분에 시멘트 넣는 것을 잊었던 거야"라고 자신에게 말할 때는 두뇌도 씁니다. 그러니까 노동과 이성 사이를 왕복합니다. 이성을 가지고 일을 하는 지식인은 이런 왕복작용을 하지 않습니다. '이봐, 너는 착각을 하고 있어! 지구는 둥글어'라고 그의 손이 그에게 지적해주지는 않거든요. 지식인에게는 이렇게 입장 바꿔 생각해보기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어떤 주제에 대해서든 옳은 의견을 가질 수 있따고 믿습니다. 지식인은 피아니스트와도 같아요. 어떤 피아니스트는 자기 손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포커나 복서나 신경외과의 그리고 화가까지도 당연히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87쪽

우리가 보통 상식이라고 부르는 것을 밝혀내기 위한 아이큐 테스트는 없습니다. 큐브릭에 대한 미셸 시망의 뛰어난 책에서, <풀 메탈 자켓>의 시나리오 작가 마카엘 에르가 한 말을 되새겨봅니다.
"사람들의 어리석음은 그들의 지성의 부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용기의 부재에서 나온다."
우리가 인정할 수 있는 유일한 사항은 대작들을 자주 접하고, 머리를 쓰고, 천재의 작품들을 읽는 것. 그런 활동이 지성인을 만든다고 보장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지성인이 될 위험성을 더 높여주는 것이 사실입니다.-88-89쪽

앙투안은 완벽한 멍청이가 되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지성을 삶이라는 혼합물 속에 녹아들어가게 하고, 늘 매사를 분석하고 철저히 껍질을 벗겨내려는 시도를 하지 않게 되기를 희망했다.-93쪽

나는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열정을 바치면서도 이런 일들에는 무관심했어. 나는 그것이 좋다 나쁘다를 말하려는 의도가 아니야. 다만 나는 연대감을 가지려고 노력하겠다는 거야. 그렇다. 이른바 '여론'이라는 위대한 정신에 공감을 표하겠다는 뜻이야. 나는 타인드로가 함께 있고 싶고, 그들을 이해하려 애쓰지 않고 그들처럼 그들 속에서 같은 일에 참여하고 싶은 것뿐이야.-95쪽

그렇다고 그가 환경운동가, 평화주의자, 국제주의자는 아니다. 다만 그는 자기 양심이 시키는 대로 할 뿐이었다. 생활 속에서 그의 활동은 도덕 개념의 산물이지, 정치적 신념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131쪽

의심이 너무 많은 그는 편파적인 판단을 내리고 다른 사람들의 기호를 경멸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정상성을 획득해가고 있는 중이므로 자신의 사회통합이 성공적인지 여부를 증명하기에 안성맞춤인 테스트를 해보기로 했다. 장소는 바로 맥도날드.
예전에는 결코 가볼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의 소굴이며, 기름기와 설탕 공급자이며, 생활패턴의 획일화를 상징하는 곳으로 생각했었다.-134쪽

자신이 인간관계에서 도덕적 원칙들을 지키는 희귀종 중 하나라는 것을 확인했을 때, 어떤 신념이나 기쁨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더 이상 고통받지 않기 위해서, 무도덕성 속에 빠지고 싶어질 수 있다.-152쪽

돈, 성공, 확고한 기반을 가진 유명인사들과의 빈번한 교류. 이런 모든 요소들은 자신을 소모시키지 않게 해주었다. 이제 더이상 자신의 욕망, 도덕, 행동, 친구, 인생을 생각할 필요가 없었고, 그것들을 이해하거나 연구할 필요도 없었다. 이러한 배경이 이 만능 열쇠를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앙투안은 사회와 결혼한 대가를 받은 것이다.-158쪽

그녀는 힘을 사랑에 쓰는 편이 나을 거야. 감정만이 그녀와 같은 빈약한 육체를 초월하게 해줄 수 있으니까. 이런 속담 알아? 그녀는 우정용이지, 키스용은 아니다.-174쪽

"너는 왜 더이상 친구가 없어?"
"그들은 곰팡이 슬었어. 나는 그들이 유통기한이 있다는 걸 몰랐었지. 거기에 주의를 해야 해. 내 친구들은 부패의 흔적을 보이기 시작했어. 몹시 역겨운 푸른 반점. 그들이 말하는 모든 것이 정말로 고약한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어..."
(...)
"그래서 그들을 쓰레기통에 넣었어?"
"아니, 그럴 필요가 없었어. 그들은 스스로 어리석은 삶 속으로 뛰어들었는걸."-211-21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마르셀 에메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3월
장바구니담기


쓸모없는 사람들, 곧 '부양을 받고 있을 뿐 그것의 실질적인 대가를 전혀 치르지 않는 소비자들'의 무리에 놀랍게도 예술가와 작가가 포함된다고 하지 않는가! -「생존시간카드」중-40쪽

열흘 전부터 아주 열심히 살고 있다. 일기 쓸 시간을 못 낼 정도로 삶이 분주하다. 이토록 짧은 삶에서 무엇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밤잠을 잊을 지경이다. 글을 쓰는 것도 예전과는 다르다. 정상적인 삶을 살 때 석 주나 걸려서 쓴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원고를 최근에는 나흘만에 헤치웠다. 그런데도 문체에선 전과 다름없는 광채가 나고 사유에는 변함없는 깊이가 있다. 쾌락을 추구할 때도 그와 똑같은 열의로 정력을 쏟고 있다. 세상의 예쁜 여자들을 모두 나의 여자로 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게 유감스러울 따름이다. 또 암시장에서 매일 두 끼씩 아주 푸짐한 식사를 한다. 흘러가는 시간을 온전하게 활용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기도 하고 어쩌면 복수심에서 그러는 것일지도 모른다. -「생존시간카드」중-47쪽

그녀가 삶에서 일시적인 죽음으로 넘어가는 순간에 나는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려고 주의했다. 그녀는 내가 들려준 이야기를 듣고 웃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웃음소리가 뚝 그치며 눈앞에서 그녀가 가뭇없이 사라졌다. 마치 어떤 마술사가 그녀를 감쪽같이 숨겨버리기라도 한 것 같았다. 나는 그녀가 누워 있던 자리를 손으로 더듬어보았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그녀가 사라진 자리로 정적이 밀려와 나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꽤나 고통스러운 장면이었다. -「생존시간카드」중-51쪽

자기 생존 시간 배급표를 팔겠다는 그의 제안은 나를 몹시 난처하게 만들었다. 나 자신이 마치 동화에 나오는 식인귀(食人鬼)나 사람을 공물로 받았다는 옛날이야기 속의 괴물처럼 느껴졌다. -「생존시간카드」중-55쪽

나는 영벌을 받은 영혼처럼 고통을 겪고 있다. 이 고통의 끝에서 잘 팔릴 책이나 한 권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 「생존시간카드」중-71쪽

자기의 정치적 신념에 비추어 차마 군비 확대를 정당화하는 그런 편향된 예를 선택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 거였따. 그는 너무나 정직해서 자기의 소신을 저버릴 수 없는 사람이었따. 하지만 어렵게 생각해낸 그 소재를 버린다는 건 어쨌든 아까운 일이었다. -「속담」중-91쪽

"그래, 어서 베껴라."
그렇게 말하는 자코탱 씨의 어조에는 머리를 별로 쓰지 않아도 되는 부차적인 활동에 대한 경멸이 드러나 있었다. -「속담」중-9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녀, 소녀를 사랑하다 올 에이지 클래식
낸시 가든 지음, 이순미 옮김 / 보물창고 / 2007년 11월
구판절판


누군가와 아주 가깝다고 느껴 본 적이 있는가? 너무 가까워서 그 사람이 왜 나와 다른 피부, 다른 몸을 갖고 있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됐던 적이 있는가? 그 날부터 그런 느낌이 시작됐던 것 같다.-122쪽

내 안에서 전쟁이 일어난 것 같았다. 나는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어떤 소리가 들렸다.
"아니야, 이건 옳지 않아. 너도 알잖아. 이게 잘못되고, 나쁘고, 죄악이라는 걸."
다른 소리도 들렸다.
"어느 것도 온전히 옳고, 자연스럽고, 진실된 것은 없어!"-125쪽

이런 그리스 전설이 있다. 아니, 플라톤이 말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두 연인은 원래 같은 사람이었는데, 반으로 갈라진 것이라고. 그래서 사람들은 잃어버린 반쪽을 찾았을 때 비로소 그들은 완전한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모든 사람들은 다 짝이 있는데, 그 짝이 남자와 남자일 수도, 여자와 여자일 수도, 또 여자와 남자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반쪽을 찾아 온전하게 된 한 쌍의 인연(오역이지 싶다. 인연->연인)이 신들과 전쟁을 하게 되었다. 신들은 그들에게 벌을 주려고, 두 패로 갈라 놓았다. 한 패는 여자와 남자가 사랑하는 사람들이었고, 다른 패는 여자와 여자, 남자와 남자가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154쪽

나중에 선생님이 말해줬는데 목이 쉬어서 한 번은 담배를 끊으려 했다고 한다. 합창을 하는 선생님으로서 당연히 담배가 나쁘고, 토론회를 이끄는 지도자로서도 안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몸무게가 많이 늘고, 하루 종일 기분이 나빴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나, 자신에게나 차라리 담배를 피우는 것이 더 낫겠다고 판단했다고 한다.-175쪽

하지만 그 날, 두 분은 아주 오랫동안 같이 살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나눠서 소유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집에서는 아주 오래 된 신발 한 켤레 같아 보였다. 비록 낡아서 떨어지고 닳았지만, 불편하지 않게 한 상자 안에서 잘 적응하고 있는 짝 같았다.-176쪽

도서관에서 그런 책을 찾았을 때, 마치 우리는 그 곳에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동성애자들의 신문과 잡지도 샀다. 동성애자들에 관한 기사를 읽었을 때, 나의 일부가 그 사람들과 만나는 것처럼 느껴져 무서울 정도였다.-192쪽

"리자, 우리 그러지 말자. 책 살 때 겁내지 말자. 창피해하지도 말고, 비밀 책장에 숨겨 놓지도 말자. 이건 정직하지 않아. 옳지도 않고. 그건 우리가 서로에게 느끼는 모든 것을 부정하는 거야. 이 분들은 나이가 많아서 어쩔 수 없었을 거야. 하지만 리자, 나는 감추고 싶지 않아. 내 생애의 가장 소중한 것과 내 자신을."-206쪽

"우리 더 이상 다른 사람인 척할 필요 없을 것 같아. 더 이상. 안 그래, 리자?"-214쪽

"너희는 우리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스티븐슨 선생님이 부드럽게 말했다.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린다 해도, 제발 이것만은 기억해 주길 바란다. 사람들의 무지한 반응 때문에 절대로, 절대로 너희를 자책하지 마라."
위드머 선생님이 말했다.
"무지가 이기게 놔 두지 마. 사랑이 이겨야 해."
스티븐슨 선생님이 말했다.-31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