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여자의 사랑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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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 착한 여자의 사랑 ] 이라는 단편 소설집을 낸 앨리스 먼로의 단편 중 자식들은 안 보내. 라는 단편 소설이다.  주인공은 폴린이라는 가정 주부인데
매우 가정적인 남편 브라이언과 예쁜 두 딸 케이틀린, 마라와 함께 행복한 삶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엔 행복해 보이는 이 가정에도, 숨어 있는 갈등들이 고개를 한번씩 내밀곤 한다.

개인적인 삶을 추구하고  문학적 재능도 있는 폴린에 비해서,  가족 위주의 삶을 추구하고 다소 평범한 브라이언.  그리고 진지한 폴린에 비해 입만 열면 농담
을 해대는 브라이언.  그들은 태생부터가 서로 다르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따르면서, 적당히 서로에게 맞춰주고 안정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폴린에게 솔깃한 제안이 들어온다.  그녀의 독특한 외모 ( 수북한 눈썹과 강인한 턱 ) 를 마음에 들어한 웬 연극 감독이 그녀에게 [ 외리디스 - 에우리디케 ] 라는 연극의 여주인공 외리디스 를 맡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한 것이다.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모험을 해보고 싶었던 폴린은 그 제안을 수락하고, 제안의 수락은 곧이어 그 젊은 연극 감독과의 불륜으로 이어지는데.....

이 [ 외리디스 ] 라는 희곡은 그리스 신화 [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 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지하세계로 에우리디케를 구하러 갔다가 돌아보는 바람에 영영 에우리디케를 놓쳐버리는 오르페우스 이야기.   폴린은 이 희곡을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젊은 연극 감독인 제프리는 단지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도구로써 이 연극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읽으면서 설마 설마 했는데,,,,아하,,,,불온하고 치명적인 것에 이끌리는 인간의 본성을 표현하려 한건지...잘 모르겠다.

책을 읽고 어처구니가 없는 부분이 많았다.  일단은, 나이도 어리고 건방진 연극 감독에게서 뭘 보고 폴린이 폭 빠져버렸는지....  그녀가 그 한줌거리도 한 되는 소위 연애라는 것과 맞바꾼 어마어마한 것 [ 가족, 일상, 추억 ] ....  이젠 되돌릴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비록 열렬한 애정은 없었을지라도 브라이언과의 사이에서 두 딸이 있었고 집과 일상이 있었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놓아버리다니....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리고, 연극 감독 제프리의 발언.  이 돌아이는 끝내 연극을 무대에 올리지 못하고 폴린에게 자신이 머물고 있는 워싱턴 주로 함께 가서 살자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면서,,  당신을 결코 버리지 않겠어.   근데 이 말은 연극 속에서 오르페가 외리디스에게 하는 말이다.  결국엔 둘 사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보여주는 복선인 셈이다.

그리고 남편 브라이언, 자신을 떠나겠다는 폴린에게 다른 말도 아니고 자식으로 위협한다.  이렇게 말하면서,,,,  자식들은 절대 안 보내.
사랑하니까 제발 돌아오라는 말도 아니고.  자식들은 절대 안 보내.  라니....  여자에게 자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면서.  충분히 의도적인 발언이고 폴린에게
 복수의 칼날의 휘두른 것이란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너 한번 죽어봐라..... 이러면서.

 61쪽

물 같은 선택, 환상을 좇은 선택은 땅 위에 쏟아지자마자 대번에 굳어, 이내 부인할 수 없는 형태가 되어버렸다.

 이건 극심한 고통이다. 만성적인 고통이 될 것이다. 만성적이라는 말은 영원하긴 하지만 한결같다는 뜻은 아니다. 또는 그 떄문에 죽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벗어날 수는 없어도, 그 때문에 죽지는 않는다. 매 순간 느끼지는 않겠지만, 고통없는 상태가 여러 날 지속되지는 않는다........

어느 날, 예상치 못했던 교통사고처럼 위험하고도 치명적인 사랑을 만나버린 평범했던 주부 폴린.  그녀는 사랑을 가지지만 전부를 잃어버린다.  이 책은 사실 30년전 일을 회상하면서 적은 글이다.  그 동안 일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리 똑똑해도, 아무리 방어를 치고 살아도, 우리는 결국 인간이기에 실수를 저지르며 살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여주인공 폴린도 마치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차를 피하지 못한 것처럼 달려오는 운명을 피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기에 우리는 불완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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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 평전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32
도가와 신스케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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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리며 국민 작가로써 칭송받고 있는 나쓰메 소세키 작가의 평전을 읽어보았다.  그의 유명한 작품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 나 [ 도련님 ] 과 같은 작품을 통해서만 그를 만나봤지, 이렇게 그의 전 일생을  훑어보게 된 것은 처음이다.   오래전이라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 를 매우 재미있게 봤었다.  그 작품을 통해서 그의 작가로서의 훌륭함을 깨달았던 것 같다.

이 책은 평전이기 때문에, 그의 세계관, 성격, 가족, 친구, 유학생활, 작품활동, 직업, 그리고 항상 달고 살았던 만성적 질병까지....  그에 대한 모든 것을 세세하게 알 수 있었다.  이 책의 저자인 도가와 신스케라는 분이 정말 많은 정보 수집을 하셨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사실 소세키의 유년기는 불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유독 아들 많은 집안에 다섯 째로 태어난 그는, 그 당시 관습대로 다른 아들 없는 집안에 양자로 보내진다.  거기서 양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응석받이로 잠시 자라긴 하지만, 다시 양부모의 불화와 이혼이 겹치면서 본가로 되돌아온다.  본가에서는 완전히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게 된다.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 어느 곳에서도 제대로 된 환영을 받지 못한 어릴 적 경험 때문인지 그는 유독 학문과 문학에 집착하고, 가족 대신 교우 관계를 넓힌다.  어린 나이부터 한시를 짓고 그러한 활동을 통해서 하이쿠로 유명한 마사오카 시키를 만나게 된다.   그들은 함께 하이쿠를 짓고 문학적 교류를 하면서 친해지지만, 마사오카 시키가 중병에 시달리게 되면서 이도 일찍 막을 내리는 것으로 보인다.  이후 소세키는 고독과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결혼을 결심하게 된다.

소세키도  어릴 때부터 병치레가 심했고 약했던 걸로 보인다.   만성적인 위장병이 있어서 이것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사회생활을 함에 장애가 되기도 한다.    까칠한 성격이 위장병을 불러온 것인지, 아니면 위장병이 있어서 성격이 까칠해진 것인지... 닭이 먼저인지 계란이 먼저인지.....   까칠한 그의 성격과 유학생활 중에 느꼈던 극심한 외로움이 불러온 정신적 고통이 질병을 더욱 더 악화시킨 것인가?  라는 생각도 든다.

그는 일찌기 영문학을 전공하고 여러 문학을 번역도 하면서 영문학으로 자신의 지평을 넓혀간다.  그리고는 런던에 유학도 다녀온다.  비록 유학을 하는 동안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지만 그래도 그는  그동안 ' 문학이란 무엇인가 ' 라는 어려운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그것을 철저히 파고들어보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 결심이 컸던 만큼 신경쇠약도 나날이 심해진다.  그러면서 부인에게서 오는 편지에 집착을 하는 여린 모습도 보인다.   열심히 부인에게 편지를 쓰지만, 부인 교코는 띄엄띄엄 편지를 보내고 이것 때문에 힘들어하기도 한다.

귀국후 그는 본격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나쓰메 집안에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오게 되고, 자꾸 쫓아내도 들어오는 고양이를  누가 " 복을 부르는 고양이 " 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어쩔 수 없이 키우게 된다.   이 고양이를 모델로  하여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썼다고 한다.  그는 인간들을 관찰하여 그들의 기이한 행동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 그들을 관찰하면 할수록 제멋대로라고 단언하지 않을 수 없다 "
" 사회란 모든 미치광이들의 집합소 "

 " 약간의 이치를 알고 있으며 분별력도 있는 자는 정신병원에 가둔다 "
" 타인이 곤경에 처했는데도 그 일관 무관한 인간들에게는 그것이 그저 재미있는 일일 뿐 "

[ 고양이로소이다 ] 를 통해서 조금이나마 그의 인간관을 알게 되었다.  그는 [ 고양이 ] 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 인간이 라는 종이 내포하고 있는 천박성 " 을 비난한다.  190쪽 에피소드에서, 곤경에 빠진 다른 사람이 쩔쩔 매고 있는 장면을 보고 킬킬 웃고 있는 두 여성을 가리키며,타인이 곤경에 처했는데도 그것을 그저 재미있는 일로만 여기는, 인간의 차가운 본성을 꼬집는다. 

그 외에도 일찍부터 그의 내면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었던 걸로 보인다.   그의 여러 작품에서 어떤 사람들은 자살하기도 하고  [ 행인 ] 이라는 작품의 이치로는 ' 신경 쇠약 ' 으로 자살 직전의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 죽음이 삶보다 고귀하다 " 라는 표현은 그의 작품에 여러번 등장하기도 한다.  어쩌면 환영받지 못했던 어릴 적 경험이, 그를 삶보다는 죽음으로 이끈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동시에 일본인들의 정서에 이런 죽음을 환영하는 마음이 들어있나? 싶기도 했다.

소세키의 마지막은 결국, 그가 가지고 있는 지병인 위궤양이 재발하면서 그것이 그대로 죽음으로 이어진다. 그는 스스로를 고독하다고 여겼었지만,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는 아내와 자식들, 친구들 문하의 자제들 등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먼 길을 떠났다. '  생사를 해탈하는 것은 그의 오랜 바람이었다.  죽음은 삶의 한 가운데서 일어난 모든 행복한 사건보다도 경사스럽다 ' 라고 그는 제자들에게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한 권의 책으로 그의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일생의 많은 부분을 알게 되었고, 특히 소소한 일상을 알게 되어서 재미있었다.   특히 아내에게 잔소리를 퍼붓거나 가계부를 자신이 직접 쓰는 등.  뭔가 쪼잔한 듯한 모습에 인간적인 모습을 느꼈고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던 진한 고독과 외로움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작품 활동 외적인 부분을 알게 된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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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호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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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 0 호.  영원히 발간되지 않을 신문,  발간될 계획이 없는 신문이다.  그 이유는 밖으로 드러나서는 안될 정보를 담을 것이기 때문에.  제 0호 라는 제목의 이 책은 언론, 즉 저널리즘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해서 진지하게 묻고 있는 책이다.   우리는 보통 언론이 진실을 보도해야 하고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제 역할 - 진실 보도 - 을 다하고 있는 언론은 얼마나 될까?   예를 들자면, 국민이 정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사안이  보도되어야 할 시기에 갑자기 연예인 사생활 관련 스캔들이 터진다.  이건 우연일까?   아니면 드러나지 말아야 할 무엇을 막기위해  필사적인 거물을 위해서 언론이 벌이는 속임수인가?

정치인의 고스트 라이터 ( 자서전 등을 대신 써주는 사람 ) 역할이나 하며 가끔가다 번역일을 간간이 하던 주인공 콜론나에게 신문 - 그런데 발간되지 않을 신문 - 을 함께 만들자는 제안이 들어온다.  시메이라는 주필이 만들고자 하는 책은, 한 저널리스트의 회상록으로써,  발간되지 않을 신문을 내기 위해서 1년동안 준비하면서 겪은 일을 이야기 하는 책이다.   신문의 제호는 [ 도마니 ], 다소 모순적인 이 이름의 뜻은 [ 내일 ] 이다. 

나오지도 않을 신문을 발간하는 이유는?   자금줄인 거물 콤멘다토르 비메르카테라는 사람이 원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금융계와 은행계의 거물들이 모이는 성역에 들어가고 싶어한다.   그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신문이다.  그는 신문에 거물들의 비밀스런 정보를 싣기를 원한다.

제0-1호, 제0-2호 이런 식으로 12호에 걸쳐서 예비 판을 창간하면 콤멘다토레가 직접 검토하여 몇 몇 인사들에게 기사들을 보여주고 자신이 그 거물들을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거물들은 신문 창간 계획을 중단하라고 요청하게 되고, 그들의 요청에 따라 콤멘다토레는 [ 도마니 ] 라는 신문을 포기한다는 계획이다.   그렇게 포기한다는 조건으로 콤멘다토레는 자연스레 그들의 성역에 들어가게 된다는게 그의 계획이다.

일을 함께 하기로 하고, 주인공 콜론나는 함께 작업하는 다른 기자들과 첫 만남을 가지게 된다.  모두 6명인데  다들 독특한 경험을 쌓은 사람들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로마노 브라가도초라는 사람은  다소 괴짜로 느껴지는 사람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의 말을 허투루 들을 수 없다.   언론에 대해서 거침없는 독설과 음모론에 가까운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그런데 그게 진실로 들린다.  

그가 주인공에게 털어놓는 이야기를 잠깐 인용해본다.

[ 61쪽 인용문 ]

" 하지만 아버지의 푸념을 들으면서 나는 뉴스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버릇을 들이게 되었어. 신문도 거짓말을 하고 역사학자도 거짓말을 해. 오늘날에는 텔레비젼도 거짓말을 해. 1년전 걸프 전쟁 때 뉴스에서 가마우지의 영상을 보여주었는데 기억나나? 이라크군이 쿠웨이트에서 퇴각할 때 ....(중략).... 원유에 죽어 가는 가마우지의 영상을 내보냈지. 그런데 나중에 확인된 바에 따르면 그 계절에는 페르시아만에서 가마우지를 찾아볼 수 없었고....... "

브라가도초는 이와 같은 언론에 대한 독설 외에도 황당한 음모론을 늘어놓기도 한다.  그것은 바로 무솔리니 대신 그의 대역이 잡혀서 처형당했다는 것.  진짜 무솔리니는 바티칸 대성당의 도움을 받아서 아르헨티나로 건너가 사제로 변장한채 살다가 편안한 죽음을 맞았다는 이야기다.   그의 장광설을 듣고 있자면 이 괴짜인 브라가도초는 알아선 안될 비밀을 너무나 많이 알고 있는 사람같다.  실제로 그는 거리를 걸으면서 자꾸 뒤를 돌아본다.  마치 누가 뒤를 쫓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와 동시에 콜론나의 인생에 들어오는 또 한 명의 사람.  이번에는 여자이다.  마이아라는 이름의 기자중 한 사람인데,  항상 자신의 의견이 묵살당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다.  그런데 멍청해서 그런게 아니라, 너무 똑똑해서이다.  그녀는 기자로써의 제 역할 - 진실보도 - 을 하기를 원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도 알고 있지만, 자금줄인 콤멘다토레의 눈치를 봐야하는 시메이 주필에게 항상 무시당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제일 영향력이 적은 별자리 운세를 다루는 일을 맡게 된다.

콜론나는 마이아에 대해서 알아가면서, 그녀가 매우 똑똑하면서 재미있는 여성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이런 시궁창 같은 신문사에 있을 여성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보호해주고싶은 마음마저 든다.  자신이 아버지 뻘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녀에게 빠져드는 주인공 콜론나.  뭔가 독특한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그녀의 곁에서 안정감..  애착심이라는 것을 가지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괴짜 브라가도초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이 들리고 신문사는 제복 차림의 남자들로 가득하고 그들은 기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심문하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에코님의 냉소적인 유머가 곳곳에 묻어나오는 것 같다.  브라가도초가 데스크 콜론나를 불러내어서 언론에 대한 공격을 하거나 무솔리니와 가톨릭과의 관계에 대한 음모론을 펼칠때면, 입안가득 음식을 물고 장광설을 늘어놓는 그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그럴 때면 브라가도초는 마치 에코님의 분신처럼 보인다.   매우 빠르게 많은 정보를 끊임없이 토해낸다.  마치 컴퓨터처럼.   음모론의 진실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 라는 속담이 있듯이 누군가를 향해 - 부패한 정권, 정권에 영합하는 언론 - 펜이라는 검을 휘두르는 듯 보인다.  

사실 이 책에는 이탈리아 지역이나 역사와 관계된 내용이 많아서 가독성은 조금 떨어졌다.   그러나 에코님이 시메이 주필의 입을 빌어서 언론을 조롱하는 부분은 너무 재미있었다.  그는 마치 기술자처럼 다양한 작전을 써서 진실과는 거리가 멀고 매우 부당한 기사들을 마치 면을 뽑듯이 입에서 줄줄 뽑아내는 일부 언론들의 모습을, 시메이 주필을 통해서 표현하고 있다.    물론 그것은 신문사의 자금줄과 그와 이해 관계가 얽힌 사람들을 위해서다.  상대편에 대한 흠잡기, 논점을 흐리는 물타기, 등등등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부분이 너무 재미있었고 다시 한번 꼼꼼하게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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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놓고 살았다 사랑을 놓고 살았다
고두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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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에 도움이 안된다는 이유로, 사랑은 물론이고 시도 멀리했던 지난 수십년의 세월.... 내 마음은 마치 사하라 사막 처럼 바싹 말라버린 상태였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사실 책을 읽고 있는 지금도 마음 한쪽은 냉소를 품은 채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시를 읽는다고 돈이 나오나 밥이 나오나,,, "  참, 스스로 생각해도 난 참 구제불능이다.  항상 재미만 추구하면서 살아온 인생.

오늘부터는 삶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며 살아봐야겠다.   아름답게 인생을 살아온 그리고 순수하게 사랑에 모든 걸 바친 시인들의 이야기를 읽고 느낀 점을 좀 써보려 한다.   사실 좀 어려울 것 같다.   영문학도였지만 제일 싫어했던 과목이 영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는 어렸으니까.....   이 책에는 사랑과 관련된 시 뿐만 아니라 인생을 생각하게 하는 시, 그리고 여백의 미를 살린 하이쿠도 함께 실려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하이쿠를 좋아한다.  다른 이유는 없고 단지 깔끔하다는 것 때문이다.   하이쿠는 느낌이 바로 온다.  그러나 그 다른 시를 읽으면 몰입이 잘 안된다.  특히 격정적인 감정이 담겨있는 시를 읽으면 도대체 저런 감정이 어디서 흘러나왔을까? 궁금해진다.  사랑에 대한 시는 특히 더 힘들다.  그런데,,,,,,


내 눈의 빛을 꺼주소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

내 눈의 빛을 꺼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아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내 팔을 부러뜨려주소서, 나는 손으로 하듯
내 가슴으로 당신을 끌어안을 것입니다.
내 심장을 막아주소서, 그러면 나의 뇌가 고동칠 것입니다.
내 뇌에 불을 지르면, 나는 당신을 피에 실어 나르겠습니다.

앗!  이 시를 읽는 순간, 뭔가 전율이 느껴졌다.   눈을 가려도 볼 수 있고 귀를 막아도 들을 수 있다니....   영혼의 결합이란게 이런 건가?  이 시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 ( 1875~1926 ) 가 스물 두살 때 열네 살 연상의 여인 루 살로메 ( 1861~1937 ) 에게 바친 연시다.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한눈에 서로에게 반했고 금세 연인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루 살로메는 이미 유부녀였으나 그것이 그들의 사랑에 있어 장애물이 되지는 못 했다.   이렇게 열정적인 사랑의 시를 쓸 수 있다니,,,,,, 한 천재 시인이 그의 영혼을 일깨운 뮤즈를, 일생의 단 한명의 뮤즈를 만났다고 생각할 수 밖에........  짧은 연인의 관계를 끝내고 그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지만 이후에도 서로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어, 그것을 자신들의 작품에 표현한다.

 

 


그대와 나 사이에 두 개의 가을

마사오카 시키 ( 1867 ~ 1902 )

몇 번씩이나
내린 눈의 깊이를
물어보았네

떠나는 내게
머무는 그대에게
두 개의 가을

위에서 얘기했듯이 나는 하이쿠 ( 5-7-5 의 17자로 된 일본 고유의 단시, 글자 수만 맞추는 게 아니라 기본 작법을 철저히 지킴, 계절 감각을 나타내는 말을 넣음. 짧지만 촌철살인의 지혜와 통찰을 담아냄 ) 를 좋아한다.   하이쿠를 읽으면, 내 눈 앞에서 연기자가 부채를 탁 펼치면서 시를 읽어주는 느낌이다.  계절이 들어가니까 눈 앞에 아름다운 계절미를 상상하는 즐거움도 있다.  이 책 속에도 하이쿠가 나오는데 나는 서른 다섯에 짧은 생을 마감한 마사오카 시키의 시가 마음에 든다.   읽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저려온다.   폭설이 내리는 와중에, 폐병으로 죽어가는 저자가 어머니와 누이에게 눈이 얼마나 내리는지 묻고 그들은 눈물젖은 시선을 거두면서 더듬거린다...     겨울이라는 원초적 고독과 겹치는 저자의 고독.....  눈 내리는 광경을 볼 수 있도록 유리문으로 바뀌지만 그는 끝내 숨을 거둔다.

 

이 책의 저자인 고두현님은, 위에 예를 든 시인들 외에도 많은 유명한 시인들의 시를 싣고 그들의 인생을 노래하신다.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비극적으로 인생을 마감한 시인의 이야기 ( 이사도라 덩컨을 사랑했던 예세닌 시인 ) 도 있지만 프랑시스 잠 처럼, 생의 무게를 말없이 견디는 존재인 당나귀를 주제로, 겸손하고 온유하게 시를 써내려간 시인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한국인들에게 매우 유명한 조숙한 천재인 ' 랭보 ' 의 방랑과 기행도 이 책 속에 펼쳐진다.  매우 다양하고도 폭넓은 시인들의 세계가 있다.

 


시는 짧지만 강력한 한방이 있다.  마치 그림처럼.  감상하는 독자들의 영혼을 끌어올린다.  가끔은 슬프고 가끔은 아름답다.  잊고 살았던 예민한 감성이 되살아난다.  심장이 지릿지릿해지면서 눈물이 뺨 위로 톡 떨어진다......   나는 빵만으로도 잘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 잘 살고 있었을까?  마음 한 구석에는 사랑과 인생, 그리고 인간을 노래하는, 감수성 짙은 시들이 필요했나보다..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난 시가 더 읽고 싶어졌다.   시를 알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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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와 블루를 넘어서 - 젠더 고정관념 없이 아이 키우기
크리스티아 스피어스 브라운 지음, 안진희 옮김 / 창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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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와 블루를 넘어서 - 이 글의 소제목은 젠더 고정관념 없이 아이 키우기 이다.  나는 아이가 없기 때문에 양육 문제에 관해서
깊은 고민을 해 본 적이 없다.  따라서 아이를 키우는 동안, 젠더 고정관념이 크게 영향을 끼치려나?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고정관념을 가진 부모와 아닌 부모 사이에서 양육된 아이들의 미래는 180도로 달라질 것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우선, 이 글의 저자는 자녀가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을 방해하는 일반인들의 고정관념과 편견을 꼬집는다.  그녀는 보통 사람들은 인지적으로 게을러서 인간을 두 가지 범주로 분류해서 묶어버린다고 한다.   남자와 여자.   그리고 그들만의 고유한 젠더 특성이 있고  그 젠더 특성 안에서 직업을 가지거나 여러 활동을 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의사는 남자가, 간호사는 여자가 해야 한다는 것.  요즘은 남자가 요리를 한다던가, 여자가 소방관이 되는 것에 큰 반감이 없는 세상이 왔긴 하나, 여전히 세상은 남자의 자리, 여자의 자리를 구분짓는다.

그런 사고방식이 얼마나 위험한지, 저자는 여러 연구를 통하여 보여준다.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들은 한 그룹은 ' 젠더를 이용해
이름표를 붙이고 아이들을 분류하고 학급을 구성한다.  그리고 학생들은 반드시 남학생-여학생-남학생-여학생 순으로 줄을 서게 한다. 칭찬할 때도 " 오늘은 여학생들이 참 잘했어요 " 라거나 혹은 " 남학생들이 집중을 잘하고 있어요 " 라는 식으로 실험을 진행한다.

이와는 반대로 다른 절반의 교사들에게는 학생들의 젠더를 아예 무시하게 한다.  그들은 학생들을 각자의 이름으로 부르고 학급 자체를 젠더 구분 없이 전체로 대한다.  아이들에게 칭찬을 할 때도, 여학생, 남학생이라는 표현을 빼고, " 로런, 솔선수범해서 잘 도와주는구나. " 라거나 " 정말 빨리 배우는구나?" 라고 말한다.   이렇게 4주를 보낸 후 젠더에 이름표를 붙이는 학급에 속한 학생들은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 학급에 속한 학생들보다 더 강한 고정관념을 형성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남자와 여자 사이에 젠더 차이가 아예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젠더 차이에 집착하여,  아이들의 잠재력을 놓치는 실수를 저지르지는 말라고 한다.  사실 수학 능력에 어려움을 겪는 딸이 있는 엄마가 둘 있는데, 한 명은, " 여자는 원래 그래, 엄마도 수학 못 헀어 " 라고 해버리면, 그 엄마의 딸은 쉽게 포기해버릴 수 있다.  반면,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엄마의 딸은, 엄마와 함께 학습을 하면서 자신감도 얻고 나중에는 미적분과 같은 고급 수학을 좋아하는 아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젠더 차이를 극복하면서, 자녀가 건강하고도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도울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저자는 타고난 뇌 신경 회로들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키우자고 말한다.  신경 회로들은 아이들이 기계장치의 원리를 이해하고,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고, 수학계산을 하고, 글을 술술 읽고, 충동적인 위험 행동을 조절하는 등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능력들은 또한 시냅스들의 활성화를 유지시킨다.

시냅스를 강화하여 뇌를 유연하게 하는 방법


- 대화하기
- 아이의 감정표현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 아이의 소리에 즉각 반응
- 아이의 정서적 괴로움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 신체활동 권장하기
-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기
- 반려동물키우기
- 퍼즐맞추기

등등이 있다.     이런 활동들은 남자, 여자 관계없이 모든 아이들에게 적용가능하다는 면에서 매우 적절하다고 본다.  저자는 남자 아이들이라고 해서 폭력적인 놀이 - 즉, 총놀이 - 만을 권유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여자아이라고 해서 비활동적인 놀이 - 인형 놀이 - 등만 권유하는 것은 적절치 못한 행동이라고 본다.


저자의 의견으로는, 젠더 선입견에서 조금 벗어나면, 다양한 개개인이 보인다고 말한다.  시를 좋아하는 감성적인 아들, 농구나 배구를 좋아하는 활동적인 딸, 그리고 같은 젠더이지만, 좀 더 활발한 둘째딸이 있고 좀 더 순한 첫째딸이 있다고 본다. 


결론은, 앞으로의 사회는 좀 더 젠더 중립적인 사회가 되도록,  생물학적 여자와 남자라는 선입견에 갇혀 살지 않고 좀 더 풍요로운 삶 - 즉, 젠더를 극복하고 본인의 잠재력을 펼칠 수 있는 삶 - 을 살 수 있도록 자식들을 키우자는 것이  저자의 의견인 것 같다.  저자의 의견에 완전 동감하게 되었고 나중에 자식을 가지게 되면 이런 부분을 명심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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