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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이야기들
발터 벤야민 지음, 파울 클레 그림, 김정아 옮김 / 엘리 / 2025년 4월
평점 :
기상천외하게 밀어붙이다가 아이처럼 허물어뜨리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휘젓는, 발터 벤야민의 유일한 문학작품집
철학자이자 문학평론가였던 발터 벤야민은 그 누구보다도 섬세한 감각으로 세상을 관찰했던 사상가였다. 유물론적 사유, 유대 신학의 사유 등 여러 사유 사이의 미묘한 긴장을 유지하며 아방가르드적 실험 정신을 구현했던 그는 좌파 아웃사이더라 불리기도 했다. 이 책 <고독의 이야기들>은 이 사람이 남긴 글들 중에서도 유독 조용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담은 글들을 모았다. 도시의 고독과 꿈속 신비 그리고 여행자의 외로움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이 흔히 할 수 있는 언어 놀이를 담은 책 <고독의 이야기들>로 들어가 본다.
1부 <꿈과 몽상>은 저자가 꾼 실제 꿈일 수도 있고 상상의 나래를 따라간 것일 수도 있는 것 같은데, 일정한 플롯을 따르기보다는 일상과 비일상 그리고 이성과 환상의 경계를 가볍게 넘나들며 자유롭게 풀어놓은 글이다.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주로 자신의 내면을 배회하며 이미지에 가까운 문장으로 독자들을 이끄는데, 하나의 풍경이 또 다른 풍경으로 스며드는 듯한 여운을 준다. 함께 수록된 파울 클레의 삽화가 있어서 꿈처럼 흩어지는 이미지를 단단하게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2부 <여행>에서 벤야민은 크고 작은 도시를 통과하기도 하고 지상과 바다를 오가며 사유해낸 글을 써낸다. 그가 쓰는 여행기는 특정 장소를 언급하며 나열한다기보다는 오고 가는 와중에 그가 느낀 상념을 써낸 글이라고 볼 수 있다. 도시의 거리에서, 배의 난간에서, 혹은 역의 대합실에서 언뜻 스쳐가는 순간들을 붙잡아서 사유의 언어로 바꾼다. 거기서 그는 외로워하는 여행자를 만나기도 하고 낯선 만남에서 한 경험들을 모아서 나중에
누군가에게 다시 들려주고자 하는 여행자도 만난다. 여기서도 현대 도시인의 삶의 성애적 긴장 상태는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3부 < 놀이와 교육론 >은 주로 어린이들의 세계, 즉 놀이와 교육에 관한 글로 이루어진다. 그는 놀이 속에서 교육을 보고, 따라서 교육 체계 안에서 놀이를 보고 있다. 따라서 그는 이 둘을 서로 분리하지 않고 있다 할 수 있다. 말장난이란 단순한 유희가 아니며 언어 그 자체의 물성과 리듬을 실험하는 하나의 장치로 작용한다. 단어들이 마치 자석처럼 서로를 끌어당기면서, 단어들이 서로를 부르고 그 사이에서 새로운 감각이 태어난다고 보고 있는 듯하다. 벤야민에게 유희는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놀이인데, 놀이 공간이 펼쳐지는 순간 상상력은 확장된다고 보는 듯.
<고독의 이야기들>은 사유를 가지고 노는 듯한 한 철학자의 고독의 이야기이다. 자신의 내면과 언어를 가장 자유롭게 탐색한 결과물이라고 봐도 될 듯하다. 설명되지 않는 감정들, 말로 붙잡을 수 없는 생각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 책 속 이야기들과 나란히 놓인 파울 클레의 그림들은 벤야민의 언어가 미처 닿지 못한 부분을 채워주는 느낌이다. 글과 그림은 서로 보완하고 채워주면서 완벽한 세계를 이루고 있는데, 이것은 눈으로 보는 글이라는 섬세한 경험으로 이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뭔가 낯설게 다가올 때 이 책 <고독의 이야기들>은 조용히 대화를 건네오는 것 같다. 그냥 아무 말 없이 옆에 있어주는 친구, 고독을 아는 친구라는 느낌을 준다고 해야 할까? 뭔가 낯설고도 새로운 경험이었던 <고독의 이야기들>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