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는 돈이 들어 - 사랑을 해킹당한 시대의 잔혹동화 미스터리 나비클럽 소설선
박하익 외 지음 / 나비클럽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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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믿었던 사랑은 완벽한 시나리오였다"



과거에는 귀신과 전염병이 사람들에게 공포를 일으키는 존재였다면 

현대에는 나의 눈과 판단력을 가리고 마음을 홀린 후

돈을 빼앗아가는 사기꾼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존재가 아닐까?



뉴스에서 로맨스 스캠 사건을 접할 때마다 우리는 생각한다.

‘아니, 저렇게 허술한 거짓말에 속아 넘어갔다고?’

하지만 인간은 생각보다 외로움과 욕망에 너무나 취약한 존재이다.



누군가가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을 건네고, 가장 외로운 

순간에 다정하게 손을 내민다면 어떨까? 사람의 심리를 학습하고 

꿰뚫은 상태로 작정하고 덤비는 사기꾼에게 과연 이길 자 누구인가?



그런 면에서 <사랑에는 돈이 들어>는 지금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범죄인, 

로맨스 스캠, 즉 애정을 이용한 금융 사기를 전면에 내세운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뉴스 등을 통해 이미 익숙해진 소재이나 단편소설로 만나보는 

재미가 남다르다.



돈 앞에는 장사가 없다고 했던가? 그러나 요즘은 SNS 너머로 들려오는 

달콤한 속삭임과 끈적한 언어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으니...



단편 <사랑에는 돈이 들어>에서는 캄보디아 보이스 피싱 범죄 조직에 

납치된 것으로 보이는 전 여자친구를 구하기 위해서 프놈펜까지 직접 날아간 

남자가 등장한다. 처참한 현실에서 연인을 구했다는 영웅심도 잠시 

그를 기다리는 것은 너무나도 잔인한 진실이었는데....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에서는 과거 동창생이었다는

남자의 연락을 받은 후 연애를 시작한 엄마가 등장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외로웠던 엄마의 볼이 연분홍빛으로 

물든 것과는 반대로 집에는 옥장판을 비롯한 온갖 물건들이 

쌓이기 시작하는데...



<할머니 수사단>의 박영자 여사는 평생 남편 대신 가정을

책임진 억척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러다 SNS에서 만난 백인 남자

제임스에게 마음과 돈을 바치지만 한국으로 오겠다는 그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데....



총 네 편의 단편들과 마지막에 있는 르포르타주 <사랑의 매뉴얼> 까지. 

단편집 <사랑에는 돈이 들어>는 소위 ‘돼지 도살 사기’라는 이름이 

붙은 사기꾼들의 시나리오를 너무나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현실적으로 

잘 보여준다.



적당한 돼지를 찾아내고 키워서 도살하듯, 낯선 이에게 살살

접근하여 애정 공세를 퍼붓고 사랑에 빠지게 만든 다음

그들의 주머니를 탈탈 털어내는 방식.... 이제는 ‘사랑’마저

시나리오에 근거한 연기가 되어버린 상황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취향에 맞았던 작품은 바로 <봐라니 연가>

라는 제목의 단편이었다. “봐라, 니!"라는 경상도 사투리가 

마치 귀에 쨍쨍하니 들리는 듯한 환청이 느껴진다.



이 작품은 무엇보다 반전의 묘미가 확실하다. 마치 서술 트릭처럼 

어느 순간 이야기 전개가 확 뒤집어지면서 등골이 서늘해지고 

머리끝이 쭈뼛 서는 공포심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사기꾼도 다른 사기꾼에게 당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아주 긍정적인 답변을 해준 듯한 작품인데, 장르적 쾌감이

좀 뛰어난 단편이었다고 생각한다.



로맨스 스캠에서 진짜로 무서운 것은 어쩌면 통장 잔액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했다고 말했던 사람과의 시간이 통째로 삭제되는 

듯한 그 순간이 아닐까? 피해자들은 어쩌면 배신감에 무너지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사랑에는 돈이 들어>를 읽은 독자들은 주먹을 꼭 쥐고

단단히 결심을 해야 한다. 내가 가장 외로운 순간,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해주는 자를 조심하자!!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사기꾼의 

거짓말이 아니라 그 말이 진실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인간의 굶주린 마음일지도.



.

#사랑에는돈이들어 #나비클럽 #잔혹동화미스터리 #한국장르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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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의 후더닛
아사네 주지 지음, 김은모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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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지금으로부터 천 년 후에 벌어진 살인 사건을

매우 흥미진진하게 추리하는 소설 <천 년의 후더닛>.

밖에서는 열 수 없는 문으로 봉쇄된 셸터 안에서 벌어진

사건이기에 자연스럽게 완벽한 밀실 구도가 조성되었다.


방금 냉동 수면 상태에서 깨어난 사람들 앞에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캡슐 테그미네 안에서 미라처럼 바싹 말라죽어 있는

동료 ‘시몬’의 시신. 범인은 누구이고, 도대체 이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천 년의 후더닛>은 익숙한 세계를 낯설게 보여주는 SF 소설

특유의 매력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추리소설의 긴장감과 스릴을

독자들에게 동시에 전달한다. 한마디로 다음 장면이 너무 궁금해서

한번 펼치면 도무지 손에서 떼어놓기 힘든, ‘페이지 터너’라고 할까?


아내와의 사별로 삶에 대한 희망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쿠란.

그는 2038년 다른 여섯 명의 지원자들과 함께 인류 최초의 냉동 수면

실험에 참가한다. 사실 쿠란에게는 천 년 후에 다시 깨어날 거라는

기대보다 이대로 손쉽게 죽을 수 있겠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정말로 천 년 후에 깨어난 쿠란은 오히려

삶에 대한 의지를 되찾기 시작한다. 죽은 아내의 미소를 닮은 여인

시나의 존재가 가장 큰 이유지만, 기묘한 모습으로 죽은 채 발견된

시몬의 죽음에 대한 궁금증과 천 년이 흐른 지구에 대한 호기심도

그에게 삶의 의지를 되찾아 준 듯하다.


사실 이들은 이제 마치 세상에 갓 태어난 아이처럼 막막한 상황이었다.

영화 <마션>에 나오는 맷 데이먼처럼 극단적인 고립감은 아니더라도

이미 자신들이 익숙했던 세상은 사라진 상태이고, 그나마 안전한

셸터 밖의 지구가 어떻게 변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뿐 아니라 함께 잠들었던 시몬은 아주 기묘한 모습의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몇 명이 힘을 합쳐야 동면 기계의 튜브를 연결하고 해제할 수 있는 상황에서

그는 미라처럼 되어버렸고, 더군다나 등에는 칼까지 꽂힌 상태??!!!


이것은 명백한 살인이다. 그렇다면 범인은 깨어난 여섯 명 중 하나?

범인의 정체를 밝히기 위한 쿠란과 동료들의 추적이 시작된다!!


<천 년의 후더닛>의 큰 줄기는 이 불가능해 보이는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마치 낯선 행성처럼 변해버린

천 년 후의 지구 탐험 과정도 흥미진진했다. 허물어진

건물들과 점점이 흩어져 있는 백골들, 그리고 야수처럼 공격적인

거대한 까마귀들!!


특히 까마귀 떼의 공격은 마치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간

행성에 선 등장인물들을 보여주는 듯하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여주는 SF 소설이 가진 특유의 매력이 있었다.


아내를 잃은 후 쿠란에게 있어서 삶은 더 이상 기대할 것

없는 속 빈 강정이었다. 그래서 죽음이나 다름없는 긴 잠을

선택했다. 그런데 천 년 후 깨어보니 미래는 또다시 알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 상황. 사람을 다시 살아가게 만든 것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와 같은 호기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작품의 진짜 백미는 후반부에 있다. 시몬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의 베일이 벗겨지는데, 그 진실이 실로 경악할 만하다!!

단순히 ‘범인이 누구인가?’를 맞히는 것을 넘어서서 앞에서 읽은

장면들을 다시금 곱씹게 만드는 충격적인 반전이었다.


말하자면 제목 <천 년의 후더닛>에서 우리가 유추할 수 있듯,

이 사건의 진실은 ‘천 년’이라는 아주 길고 두꺼운 시간의 흐름 속에

숨어 있었다. 돌이켜보면 이야기 곳곳에 사건의 진실을 암시하는

힌트와 복선이 숨어 있었다.


천 년 후의 지구라는 SF 적 상상력과 도무지 불가능해 보이는 밀실 속의 살인,

낯선 세상을 탐험하는 스릴과 마지막에 빵 하고 터지는 반전까지….

SF와 추리소설의 매력을 절묘하게 섞어놓은 작품

<천 년의 후더닛>을 추천한다.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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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블루스 B사이드 아카이브 1
슬리만 카데르 지음, 이수원 옮김 / 니케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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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유람선 ‘오션킹’

승선을 환영합니다‘



우리말로 하면 바다의 왕! 왠지 오르기만 하면 화려한 나날들이 펼쳐질 듯한 거대한 유람선인 ’오션킹‘ 누구나 푸른 바다를 감상하며 일광욕을 즐기고 넘쳐가는 음식의 화려한 파티를 즐길 것 같지만... 



그러나 손님들이 편안한 여행을 즐기는 동안 배의 아래쪽에서는 뭔가 험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데....



책 <오션 블루스>은 관광객의 시선이 아니라 이 유람선에서 일하는 노동자, 그것도 제일 하찮은 일을 도맡아 하는 ’조커‘라는 직책을 맡게 된 주인공 왐의 시선으로 이 화려한 세계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그 어디라도 취직을 하길 원했던 주인공 왐은 ’오션 킹‘이라는 처음에는 거대한 유람선의 웨이터 보조로 취직한다.



그러나 중간에 누군가의 ( 아마도 의도적인) 실수로 인해서 그는 웨이터 보조가 아니라 배의 모든 허드렛일을 담당하는 ’조커‘가 되어 가장 밑바닥 일을 시작하게 된다. 



마치 고래의 창자처럼, 구불구불 이어진 배의 계단을 내려가 창도 하나 없는 햇빛 한 줄기 들지 않는 곳에서 왐은 엄청난 수의 바퀴벌레와 싸워가면서 일을 하게 되는데....



끝없는 노동을 이야기하지만 의외로 가볍고 밝은 에너지가 풍기는 책 <오션 블루스>  주인공 왐은 뭔가 아주 수다스럽다. 비속어나 엉터리 영어 같은 다채로운 색깔의 말을 속사포로 내뿜는 듯한 주인공. 자신이 처한 상황에 상관없이 그는 뭔가 스탠드 업 코미디언 같은 느낌의 유머러스한 남자이다.



그러니까 주인공 왐은 약간 표준을 비껴가 있는 사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은은하게 돌아있는 눈동자를 가진 듯한 그런 사람이다. 다소 무례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머릿속으로만) 조롱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흑인 동료를 보고 아프리카에서 허술한 옷차림으로 사냥감을 좇는 모습을 떠올리고 자신을 괴롭히는 상사를 장발장을 추적하는 자베르 경감으로도 비유한다.



강도 높은 노동 사이사이로 주인공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일은 정말 즐거웠다. 그의 편견 어린 시선이 다소 불편해졌다가도 어린애 같은 순진무구한 상상력 때문에 웃기도 했다. 



독성 물질과 감전의 위험을 뚫고 바퀴벌레를 잡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의 어릿광대 같은 내면의 목소리 때문에 독자들은 웃게 되는데......



사실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화려한 유람선 이면에는 강도 높은 노동과 열악한 현실이 노동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좁은 선실을 4명이 사용하고 하루 10시간 이상 이어지는 교대 근무 그리고 승객에게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햇빛조차 제대로 못 보면서 하루 종일 일해야 하는 직원들.



처음에는 무시당하고 감시까지 받으면서 일해야 했던 왐. 처절하고 괴로운 현실에 무너질 수도 있었겠지만 오히려 그는 조커 일을 통해서 뭔가 삶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 



조커란 어느 한 틀에 끼워 넣을 수 없는 유일한 사람이자 이 일은 일종의 군 복무, 즉,  스스로를 단련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왕.



아무리 똥 같은 일이라도 이것이 오히려 생각을 내려놓게 만들고 스스로를 가볍게 해주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주인공....  내내 우스꽝스러웠던 왐의 모습은 조금씩 바뀌어가기 시작하는데...



초호화 유람선의 밑바닥에서 벌어지는 상상 초월의 이야기를 때로는 흥미롭게, 때로는 배꼽 빠지게 그리곤 감동까지 선사하는 책 <오션 블루스>

.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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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이야기 비룡소 걸작선 29
미하엘 엔데 지음, 로즈비타 콰드플리크 그림, 허수경 옮김 / 비룡소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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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는 게걸스럽게 책을 읽어대던 소녀였다.

언니들이 친구들과 골목을 뛰어다닐 때, 나는 책 속의 세계에서

상상의 존재들과 함께 뛰어놀았다. 책 속 세계와 현실 세계가 전혀 구분되지 

않았고, 어느 순간에는 나 역시 등장인물 중 한 명이 되어 주인공과 함께 웃고 

울었던 것 같다.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가 바로 이런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무너지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읽는 자가 곧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야기란 읽는 사람과 창조하는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완성되며,

서로는 결코 완전히 분리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



주인공 바스티안은 일찍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의 무관심 속에서 살아온 

소년이다. 어느 날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을 피해 들어간 고서점에서 주인이 

읽고 있던 책을 훔쳐 나온 바스티안. 아버지에게 혼날 것이라는 두려움에 학교 

창고로 숨어든 그는 그곳에서 책을 읽기 시작한다.



<끝없는 이야기>는 거의 700쪽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고 아이들을 위한 

동화임에도 정말 술술 읽힌다. 등장인물들이 겪는 모험과 기상천외한 존재들, 

끝없이 펼쳐지는 환상적인 세계 때문에 밤잠까지 설쳐가며 읽었다. 정말 너무너무 

재미있는 책이다.



바스티안이 읽는 <끝없는 이야기> 속 환상 세계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에 의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이 세계의 중심인 어린 여왕 역시 병든 상태다.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미션 수행자로

 ‘아트레유’라는 용감한 소년이 선택된다.



아트레유는 슬픔의 늪을 지나고, 죽음의 산맥에서 괴물 위그라물을 만나며, 

하얀 행운의 용 푸후르와 함께 수많은 모험을 겪는다. 그런데 아트레유가 모험을 

계속할수록 바스티안과 환상 세계 사이에도 이상한 연결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 책은 바스티안이 존재하는 현실 세계와 환상 세계의 이야기를 서로 다른 

색의 글자로 보여준다. 이런 장치 덕분에 나 역시 바스티안이 된 것 같은 

묘한 독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신비로운 존재들이 살아가는 환상 세계에 

푹 빠져 있다가 현실의 바스티안으로 돌아오면 춥고 배고픈 창고에 홀로 앉아

책을 읽는 상처 받은 아이가 보인다.



사실 독서에 깊이 빠져본 사람이라면 엄마가 불러도 모를 정도로 책 저 너머의 

세상에 한 발을 담가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끝없는 이야기>에서는 읽는 자와 

읽히는 텍스트가 더 이상 동떨어져 있지 않다.



애초에 바스티안은 아트레유의 모험을 바라보는 제3의 존재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환상 세계가 책 바깥의 바스티안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독자와 이야기가 서로의 

존재를 알아보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바스티안은 경계를 넘어 자신이 읽던 

이야기의 일부가 된다.



이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무’라는 존재였다. 환상 세계의 존재들은 

죽는다기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책을 읽으며 어쩌면 환상 세계를 죽이는

‘무’란 현실에만 몰두하면서 점점 상상하는 능력을 잃어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름을 붙이고 기억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행위가 존재를 만들어낸다면, 

아무도 상상하지 않고 기억하지 않는 세계는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리고 어린 여왕의 표지인 아우린에 적혀 있으며, ‘다채로운 죽음’이라 불리는 

사자 그라오그라만이 바스티안에게 전해준 “네가 원하는 것을 하라”라는 말도 

의미 있게 들렸다.



처음에는 단순히 원하는 대로 행동하라는 뜻인가 싶었다. 그러나 환상 세계에 

들어간 바스티안은 아름다운 외모와 용기, 힘, 명성, 권력 등 자신이 원했던 

것들을 하나씩 얻게 된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욕망에 사로잡히고 친구와 멀어지는 

시행착오도 겪는다. 그리고 수많은 욕망을 지나 마침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사랑하고 사랑받는 마음을 향해 나아간다.



그래서 <끝없는 이야기>는 소심하고 약했던 소년이 환상 세계를 여행하는 

거대한 모험담이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성장 이야기이기도 하다. 기이하면서도 신비로운 환상 세계에 대한 묘사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지만, 책을 덮고 난 뒤에 생각해 보니 그 세계가 결국 우리의 현실과

그리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야기를 읽던 소년은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창조하는 존재가 된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 삶의 모습과도 닮아 있지 않을까. 

어린 시절 책 속으로 들어가 주인공과 함께 울고 웃었던 나 역시 현실로 돌아와 

내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살아왔다. 상상하고, 욕망하고, 실패하고, 다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가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끝없는 이야기>는 바스티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의 삶이라는 이야기를 하루하루 만들어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끝없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독서 내내 감탄하며 읽었던 아름답고도 감동적인 책 <끝없는 이야기>를 팍팍한

삶에 지쳐서 상상할 공간까지 소진해버린 우리 모두에게 추천한다.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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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 - 기획 노동, 누구나 하지만 아무도 부르지 않은 일
김희경 지음 / 웨일북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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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자라고, 부모가 늙고, 도움이 필요한 순간마다

삶은 누군가의 돌봄 위에서만 유지된다

우리가 보통 '노동'이라고 할 때 눈에 보이는 어떤 '실행'을 떠올린다.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를 돌보고 편찮으신 부모님을 병원에 모시고 가는 그런 확실하게 눈에 보이는 일. 그러나 김희경 작가의 책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는 실행이 이루어지기 전에, 생각하고 계획하는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기획 노동', 즉 눈에 확실히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있고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노동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책을 몇 장 읽지도 않았는데 주제의식이 상당히 뚜렷하고 의미 있게 다가온다. 나처럼 이미 가족을 꾸려가고 있는 분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확 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가까운 지역에 여행을 가는 일에도 상당한 '기획 노동' 이 든다. 미리 숙소를 알아보고 방문할 장소를 검색하고 맛집을 알아보는 등등등.. 그렇다면 일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계획하고 책임지는 보통 사람들의 기획 노동에는 얼마나 많은 인지적 노력이 들어가야 할까?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는 '기획 노동'의 현주소를 파악하기 위해서 다양한 사람들과 인터뷰하며 그들의 삶을 조사하였다. 맞벌이 부부, 싱글맘, 전업주부, 질환을 가진 부모를 돌보게 된 자녀, 발달장애 아동을 키우는 부모까지... 그들의 실질적인 삶이 펼쳐진다. 결론을 말하자면, 부부가 함께 노동에 참여하더라도 여성이 기획 노동을 훨씬 더 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부모와 자녀를 특별하게 돌봐야 하는 사람들의 기획 노동은 말할 것도 없다.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면서도 가족을 돌봐왔던 사람들은 어쩌면 그동안 이름이 붙여지지 않았던 '기획 노동'에 지쳐있는지도 모른다.

싱글맘인 정은경 씨와 워킹맘 이수혜 씨의 사례를 통해 저자는 기획 노동으로 인한 기회비용과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문제들인 저출생, 돌봄 공백, 여성의 경력 단절을 연관 지어 설명한다. 살림, 돌봄, 기획, 실행을 모두 혼자서 해야 하는 정은경 씨는 출근하기도 전에 이미 에너지의 80%를 쓰느라 회사 일 외에 다른 일을 하기 어렵다. 워킹맘 이수혜 씨 역시 수많은 가정의 일을 머릿속에 품은 채 회사 업무에 임하기 때문에 일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렵다. 이들의 사례는 보이지 않는 노동이 한 개인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동안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일을 재평가함으로써 이 책은 결국 사회 구성원 모두가 ‘기획 노동’과 ‘돌봄’의 문제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함께 참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가정에서는 엄마 한 사람에게 책임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 모두가 집안일의 기획과 실행에 참여해야 하고, 사회 역시 돌봄을 더욱 중요하게 바라보는 방향으로 제도와 정책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저출생, 돌봄 공백, 여성의 경력 단절 등 우리가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사회 문제의 기저에는 그동안 우리가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던 노동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획 노동'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름이 없으면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으면 그 일을 누가 얼마나 짊어지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책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는 그동안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서 알아보지 못했던 것에 이름을 붙이고 있다. 이제 우리는 친밀함 뒤에 가려진, 기획 노동을 제대로 명명하고 함께 나누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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