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 밑 도피자들
리러하 지음 / 팩토리나인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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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랄한 여주인공과 과묵한 차사 간에 과연 무슨 일이? 

기묘하고 기발한 설정이 빛나는 소설 <처마 밑 도피자들>



<처마 밑 도피자들> 읽고 나니 제목이 찰떡같다는 느낌이 몰려온다. 

이 책은 우리 무속 신앙을 바탕으로 한 미스터리 판타지 소설이다. 

가야 할 방향을 놓쳐 이승을 헤매는 망자와 그들을 데려가야 하는 저승사자 

그리고 이 틈바구니에서 망자에게 잠깐 숨을 곳을 주는 주인공 이야기다.



책을 읽고 전체적으로 느낀 점을 말하자면, 우선 기발한 상상력 덕분에 

꿀잼이었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두고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가.... 

정말 놀라웠다. 그리고 톡톡 튀는 개성을 

가진 주인공 캐릭터와 다음을 예측하기 힘든 전개 또한 재미 요소였다.



주인공 현수리는 미대 출신으로, 지금까지 거의 백수에 가까운 프리랜서 

생활을 해왔다. 그러다 대학 선배의 소개로 한 인테리어 회사에 취직하는 수리. 

그런데 이 회사 뭔가 수상하다. 일단 제대로 된 인수인계도 없이 도망치듯 

사라진 선배와 평소에는 아무도 가지 않는 비밀스러운 건물 8층



수리는 한마디로 “우당탕탕 그녀”라고 불려도 될 만큼 행동도 크고 나오는 

말도 거침없다. 다소 충동적이라 싶을 정도로 말보다 행동이 앞선다. 

그러나 그녀는 겉으로는 세 보이지만 속은 무척 여리다.



미처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한 망자들을 그냥 지니시지 못해서

직접 만든 작은 ‘소도’를 가지고 다니면서 망자들이 잠시

차사의 눈을 피하도록 돕는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인사라도 

건넬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그녀.



이 책의 큰 두 줄기는 바로 회사 건물 8층의 비밀과 수리가 겪은

가슴 아픈 과거의 일이다. 도대체 8층에는 뭐가 있는지 아무도 없는 곳에서 

갑자기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수리가 한 번씩 꾸는 악몽 속 

천장에 매달려서 형광등 끈을 핥는 존재도 궁금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수리는 8층에서 내려온 듯한 술 냄새를 풍기는 귀신을 

만나게 되고 8층에서 일어나는 일을 짐작할 만한 일을 회사로부터 

제안받게 되는데....



인생을 통틀어 가장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는 존재들을 사고로

잃어버린 수리. 그 경험이 가슴속 깊은 곳에 남아서 “소도”를

만들게 하지는 않았을까? 그녀에게도 작별 인사가 필요했다.



우리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선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 이렇게 상상의 영역에서 조금 짐작만을 할 수 있을 뿐.. 

이 책의 차사들이 가끔 실수를 하고 망자들 수습에 허둥대는 모습이 좀 웃겼다.



8층에서 일어나는 일을 파악한 수리, 이제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그녀가 할 일은 바로 “옳은 일”이다. 일생일대의 모험에 나선

수리를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다가, 나는 그만 울고 말았다.



끝부분에는 정말 놀랍고 기쁘면서도 동시에 슬픈 엄청난

반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윤회’가 진짜로 

있을 수 있다는 생각과 ‘인과응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었다.



어쩌면 부모와 자식, 사랑하는 연인 그리고 친구들이라는

관계는 서로에게 중요한 수업을 가르치기 위해서 우리의 삶에

잠시 머물렀다가 가는 존재는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기발한 설정과 개성 있는 인물들에 이끌려 읽었지만 마지막엔

아주 큰 감동에 젖고 말았다. “우당탕탕” 그녀 수리는 생각보다

훨씬 속 깊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주는 소설 

<처마 밑 도피자들>을 추천한다.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처마밑도피자들 #리러하 #저승사자 #소설 #악마의 계약서는만기되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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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무연고 처리해주세요 -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말, 제13회 브런치북 종합 부문 대상작
이유진 지음 / 나무옆의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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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무연고 처리해 주세요>를 읽으면서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서로 미워하고 지지고 볶아도 함께 한 시간만큼 사랑과 애정이 쌓이고, 그 아래에는 쉽게 끊어지지 않는 단단한 끈 같은 것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기에 존재조차 희미했던 아버지의 부고 소식이라니.. 나는 어안이 벙벙할 것 같다.

책의 저자 이유진 씨는 어린 시절 헤어진 아버지를 수십 년 만에 시신으로 마주한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작은방에는 차마 버리지 못한 오래된 통장과 낙첨된 로또 용지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발견된 짧은 메모 한 장.

“아침엔 당뇨약, 저녁엔 혈압약

그리고 그 아래, 마지막 줄.

꼭 무연고 처리해 주세요.”

혹시나 가족에게 짐이 될까 봐 두려웠던 것일까? 이리저리 쫓기며 자신의 흔적조차 지워가며 살았던 아버지는 이제 관보다 가볍다. 아들은 유골이 되어서 한 줌으로 남은 아버지의 유골함을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저자는 감정을 함부로 드러내기보다는 꾹꾹 눌러 담는다. 사물과 풍경의 묘사를 통해 살짝 드러나는 그의 미묘한 감정선.

“그제야 아버지의 죽음은 내가 혼자서도 짊어질 수 있는 무게가 되었다.”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하고 화장을 한 후 제주로 돌아온 후에도 일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 아버지의 빚을 알리는 우편물이 속속들이 도착하고 아버지가 남긴 유산을 처리하는 것도 그의 몫이 되었다. 눌러놓았던 감정과 감당해야 할 책임의 무게가 한꺼번에 밀려오면서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이는 아내와의 다툼과 정신적 불안으로 이어지는데...

책을 읽는 동안 저자가 너무 안쓰러웠다. 홀로 자신을 키워야 했던 엄마와의 삶, 그 어떤 약속도 없이 갑자기 시신으로 돌아온 아버지 그리고 떠난 후에 남겨진 빚 문제 등등등 이 와중에 저자가 느꼈을만한 회한, 분노, 우울, 죄책감 등을 그렇게 눌러 담고 감추느라 공황증상이 찾아온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저자는 어릴 적 헤어진 아버지와의 관계를 어떤 감각으로만 기억한다. 짙은 담배 냄새, 함께 먹었던 자장면, 닮은 입술의 모습 등등 어쩌면 이 책을 쓴 이유는 ‘무연고’를 ‘연고’로 다시 돌리고자 하는 마음 때문은 아니었나 싶었다. 서류뿐만 아니라 몸에도 남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돌아보는 동시에 현재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번 떠올리는 저자.

출산의 고통을 이겨내고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아내.. 자신을 보호하느라 아버지에게 맞아서 청력을 잃은 어머니.. 마당을 뛰어다니는 아이들... 이러한 기억과 이미지를 눈에 담고 머릿속에 새기는 가운데 연고의 의미는 단지 혈연이라는 형식적 관계를 뛰어넘어서 곁을 지키며 삶을 함께하는 것에 가까워진다.

저자의 문장은 감각적인 반면 감정은 상당히 절제하고 있다. 아버지를 향한 원망이나 연민 혹은 분노 등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사실 나는 저자의 정리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감정도 좀 느껴보고 싶었다. 전체적으로 글은 깔끔하고 담백하게 느껴지면서도 다소 거리감이 느껴졌던 것도 그래서인가?

<꼭 무연고 처리해 주세요>는 ‘무연고’라는 단어에서 시작된 글이었으나 결국은 저자 자신의 ‘연고’를 짚어가면서 끝내는 이야기다. 가족이라는 단어 아래 묻힌 단단한 끈을 다시 되찾는 이야기라고 해야 하나? 우리는 가족 안에서 때로는 상처받고 고통받지만 결국 그 안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사람들이다. 끊어진 자리를 다시 한번 복구하는 한 소방관의 이야기 <꼭 무연고 처리해 주세요>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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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설명되지 않는다
이윤서 지음 / 더블:엔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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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그림은 설명되지 않는다>는 그림 없는 그림 에세이다. 

처음엔 그림이나 사진 한 장 없이 활자로만 빽빽한 지면에 

다소 놀랐으나 읽으면 읽을수록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드는 저자의 

유려한 설명 덕분에 독서가 너무 즐거웠다.



이 책에는 이미 유명한 화가나 예술가들 외에도 이름이 낯선 여러 현대 미술가들을 

만나볼 수 있다. 작품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작가들의 삶의 경험과 궤적을 

들여다보고 나니, 그들이 만들어낸 작품 세계가 더욱더 궁금해졌다.



우선 책의 구성에 대해 말하자면, 이 책은 '희, 노, 애, 락'이라는 네 가지 감정으로 

나뉜다. 각 감정의 영역에 어울리는 예술가들을 배치하여 '감정'이라는 큰 주제를 

두고 독자들이 서로 다른 작품 세계를 탐구할 수 있게 해준다.



읽는 동안 나는 마치 전문 도슨트의 안내를 받는 듯한 느낌을 느꼈다. 저자의 

설명에는 전문가 특유의 깊이가 있었고 그 덕분에 작품을 직접 보기에 앞서서 

어느 정도 머릿속에서 그려볼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78쪽 <불안정한 형태로 버텨낸 분노>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설치미술가 에바 헤세의 작품과 삶을 다룬 글인데, 설치 미술이라는 예술 장르의 

독특함을 맛볼 수 있었다.



설명을 듣고 나름 상상을 해본 후 QR코드를 통해 그녀의 작품을 감상했는데,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면 조금 어리둥절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 '이런 종류도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나?''



그러나 책이 들려주는 에바 헤세의 삶과 그녀의 작품 세계를 따라가며 <컨틴전트>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과 어머니의 죽음 성인이 된 후 겪은 결혼 생활의 불행과 큰 질병까지..



삶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불안한 것이라는 감각은 설치미술 <컨틴전트> 를 

통해서 뚜렷이 드러나는 것 같았다. 인간이란 완성되고 고정된 모습이 아니라 늘 

흔들리고 변화하는 존재라고 속삭이는 듯한 작품이었다.



이번 독서를 통해 내 취향도 또 새롭게 알게 됐다. 나는 강렬한 형태와 감정을 

드러내는 예술가에게 끌리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특히 '노'에 속한 화가들의 삶과 

작품에 더 마음이 갔다.



분노의 표현 이면에는 누군가와 연대하고픈 마음이 컸던 

장 미셸 바스키아,  인간 영혼의 비극적 상태를 직시했던 

오스카 코코슈카, 삶과 죽음을 굳이 분리하지 않았던 프란시스 베이컨 등



이들의 작품은 때로는 매우 강렬하게, 또 때로는 다소 불편함 으로도 다가왔으나 

전반적으로 내 눈에는 기묘한 아름다움으로 비췄다. 그리고 인간 존재에 대한 

진실을 말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인간의 삶은 늘 흔들리고 좌절하고 불안한 가운데에서도 계속 이어지는 

그 무엇이지 않을까?



<그림은 설명되지 않는다>는 상상을 통해 그림과 가까워지는 즐거움을 

알려준 책이다. 저자의 설명을 따라 머릿속으로  작품을 그려보고, QR코드를 

통해 실제 모습을 감상하는 과정이 신선했다. 내가 그려본 작품과 실제 모습이 

비슷하게 보일 때 뭔가 카타르시스도 느꼈다.



처음엔 그림 한 점 없는 지면이 다소 낯설었으나

저자가 전하는 풍부한 해설에 감동하고 내가 상상한 그림과 작가들의 진짜 그림이 

비슷할 때 한 번 더 감동하게 되는 책 <그림은 설명되지 않는다>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그림은설명되지않는다 #이윤서 #더블엔 #르온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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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의 가장자리 - 부서진 유년의 파편에서 출현한 신경과학자 이야기
데이비드 수실로 지음, 이충호 옮김 / 북하우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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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조각 난 인생에서

'나'로 창발하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딛고 뛰어난 과학자가 된 사람의 이야기 <카오스의 가장자리> 그런데 이 책은 이 문장만으로는 약간 소개가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저자 데이비드 수실로는 다소 불행했으나 지식 탐구로 빛났던 어린 시절을 들려준다. 매우 혼란스러운 나날 속에서도 잘 자라난 것이 놀랍기만 하다. 누군가는 어려운 환경을 벗어나서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반면, 다른 누군가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수실로의 어린 시절은 매우 불안정했다. 부모의 약물 중독과 어머니의 정신적 어려움으로 제대로 된 돌봄을 받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누나와 함께 들어간 보육원에서도 폭력과 부당한 처벌을 겪어야만 했다. 이후 옮겨간 기숙학교 역시 편안한 곳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종의 종교 시설에서 출발한 밀턴허시스쿨은 난해한 규칙들과 이해할 수 없는 처벌들로 가득했다.

그저 읽기만 해도 고통스러운 이야기긴 하지만 저자는 아주 솔직하고 담백하게 어린 시절을 들려준다.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감당하기 어려웠을 순간들도 담담하게 들려준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누리는 평범함이 그에게는 일찌감치 허락되지 않았다는 점이 너무 안타까웠다.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낸 독자라면 어린 수실로를 보면서 공감하고

그런데 그의 삶을 바꾼 계기 중 하나가 비디오게임이었다는 게 아주 재미있는 포인트였다. 나도 어린 시절에 한때는 특정 오락 게임에 빠져들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비디오게임에서 시작된 관심이 컴퓨터와 프로그래밍으로, 더 나아가서는 인간의 뇌와 마음에 대한 탐구로 이어지는 과정이 흥미롭게 그려진다. 그냥 좋아서 빠진 일이 미래의 나를 결정짓게 된 것이다! 아마도 어린 자녀가 있는 부모님들이 이 지점을 유심히 살펴볼 것 같다.

책 <카오스의 가장자리>에는 위태로웠던 어린 시절에 대한 개인사와 함께 신경과학,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펼쳐놓는다. 참으로 재미있는 부분을 말하자면, 주로 과학의 대상이 되는 뇌가 이 책에서는 삶과 엮이면서 문학적 요소가 된다는 점이다. 그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 지금의 자신의 행동과 생각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살피고 심리치료를 통해서 깊이 있게 스스로를 파악해간다.

사실 성인이 된 뒤의 삶이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다. 그는 대학 졸업 후에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해야 했고 박사과정에서는 오랫동안 쌓아온 연구의 기반이 흔들리는 좌절도 겪어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과 함께 보육원 생활까지 한 누나와 다른 아이들이 그와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우리 인생에는 어쩌면 너무나 많은 변수들이 작용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물이 아니라 비늘로 이루어져 반짝이는 강을 상상해 보라. 햇빛을 반사하는 수천 마리 물고기가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 협을 하면서 하나가 되어 움직인다. 이러한 무리 행동은 창발이라 부르는 보이지 않는 손이 조율하는 춤이다"

책은 '창발'이라는 개념을 강조하는 것 같다. 수많은 경험과 만남이 어떤 식으로든 조화를 이루며 시너지 효과를 내고 지금의 '나'를 만드는 현상. 여러 요소의 상호작용에서 새로운 특성이 나타나는 '창발'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현재의 성공한 모습을 그려내는 듯하다. 그에게는 관심을 주고 가능성을 믿어주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도록 도운 손길이 있었다. 그리고 수실로 자신도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온 힘을 기울였다.

불우한 성장과정을 딛고 성공한 과학자로 나아가는 그의 모습을 담은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이 책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과학적 이론과 개념 설명도 나는 재미있었다. 고등부 영어 수업을 할 때 가끔 등장하는 단어 "비선형성(nonlinearity)"이 딱 나와서 놀랐다. 술이나 날씨 등으로 설명해 주니까 조금 이해하기 쉬웠던 것 같다. 수학과 과학이 어쩌면 그의 삶에 등불이 되어주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카오스의 가장자리>를 읽는 동안 저자가 이룬 성취도 놀랍지만 그를 도와주었던 사람들이 고마웠다. 물론 그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에게 친절하게 대해주고 그의 가능성을 알아봐 준 사람들 덕분에 그가 지금의 성공한 과학자의 위치까지 올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은 매우 매력적이다. 카오스, 질서와 무질서, 창발 등 복잡한 과학 이론과 한 개인의 과거에 대한 세밀한 회상이 만나면서 아주 멋진 책이 탄생했다. 개인적 서사와 과학이 만나 독특한 감성과 지성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책 <카오스의 가장자리>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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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길고 투쟁은 진행 중 - 운동 좀 하던 할머니들의 현재진행형 인생 이야기
변정정희 지음 / 현암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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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단순히 돈만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아주 조그맣더라도 사회에 쓸모가 되고자 한다.

그렇게 일을 통해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인생은 길고 투쟁은 진행 중>을 읽다가 눈에 띈 문장을 적어본다. 일을 통해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말은 내게 아주 의미 있게 다가왔다. 한때는 맹렬한 여성 노동자였던 분들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니 이 문장이 좀 더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이 책은 1970~80년대 노동 현장에서 활동했던 일곱 여성의 삶을 따라가는 일종의 르포이다. 우리 엄마이자 이모 혹은 나이가 좀 있는 언니들인 이들은 회사와 공장에서 열심히 일했고 부당함과 차별에 맞서 치열하게 싸웠다.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한 것은 바로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일터’를 소중하게 여겼다는 점이다.



아무리 열악하더라도 그들에게 일터는 친구들이 있고, 가족을 먹여 살릴 월급을 주고 또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삶의 현장이었다. 따라서 그곳에서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투쟁한 이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컴퓨터 부품 회사인 콘트롤데이터에서 일한 정화 씨. 그녀는 여성 노동자가 대부분인 공장에서 여성들이 편안히 근무할 수 있는 노동 조건을 만들기 위해 애썼다. 부양가족을 조사해 임금 인상의 근거를 마련하고, 생리 휴가와 같은 건강권을 확보했으며 교양 강좌 등도 개최했다.



70년대, 노동조건이 아주 열악했던 시기에 그렇게 일터를 삶의 공간으로 만들어갔다는 점이 놀라웠다. 함께 일하는 사람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살피고 해결하기는 과정이 멋져 보였다.



청계 피복 노동조합 출신 재봉사 박연준 씨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사진 속에서 보는 모습은 넉넉한 중년 부인으로 느껴졌지만 그녀의 삶에는 미싱사의 시다로 일하면서 호된 대우와 질책을 견뎌야 했던 세월이 있었다. 노동은 둘째치고 폭력이 난무했던 과거의 노동 현장... 가슴이 매우 아팠다.



그러나 당시에 이들에게 장애가 된 것은 열악한 노동환경도, 쥐꼬리만한 월급도 아니었다. 군부독재와 같은 혼란스러웠던 사회 환경과 특히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가 여성들이 마음껏 일할 수 없게 만들었던 것으로 보였다.



지금은 시인으로 활동하는 정명자 씨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동일방직 똥물 사건은 특히 충격적이었다. 노조위원장을 여성들로 뽑아서 자기 목소리를 내려는 여성들에게 회사 측도 아니고 같은 노동자인 남성들이 똥물을 뿌린 사건!! 너무나 치욕적이고 폭력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은, 70~80년대 당시에는 여성 노동자들 사이에 연대 의식이 살아있었고 해고나 체포 등을 두려워하지 않고 겁 없이 싸웠다는 점이다. 이 책 표지에 나와 있는 것처럼 진짜 “치열하게 일하고 신나게 싸웠던 그 시대 언니들 이야기”가 맞다. 탄압과 폭력 속에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인생은 길고 투쟁은 진행 중>이라는 제목을 다시 보게 된다. 젊은 시절의 치열한 투쟁은 지금 이들의 삶에도 녹아 있는 듯하다. 복지관에서 이웃을 살피고, 가진 것을 나누고, 자신의 경험을 말과 글로 전하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부당함 앞에서 당당히 권리를 주장하고 서로의 곁을 지켰던 마음이, 오랜 세월 이들의 삶을 지탱해온 힘이 아니었을까.



책을 읽으며 처음 눈길을 끌었던 ‘일을 통해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문장을 다시 떠올린다. 이들은 자신뿐 아니라 동료들도 그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일터를 바꾸려 애썼다. 치열하게 일하고 싸우며 삶을 가꾸어온 우리 엄마, 이모, 언니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 시대 여성 노동자들의 생생한 삶과 목소리를 만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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