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놓고 살았다 사랑을 놓고 살았다
고두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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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에 도움이 안된다는 이유로, 사랑은 물론이고 시도 멀리했던 지난 수십년의 세월.... 내 마음은 마치 사하라 사막 처럼 바싹 말라버린 상태였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사실 책을 읽고 있는 지금도 마음 한쪽은 냉소를 품은 채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시를 읽는다고 돈이 나오나 밥이 나오나,,, "  참, 스스로 생각해도 난 참 구제불능이다.  항상 재미만 추구하면서 살아온 인생.

오늘부터는 삶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며 살아봐야겠다.   아름답게 인생을 살아온 그리고 순수하게 사랑에 모든 걸 바친 시인들의 이야기를 읽고 느낀 점을 좀 써보려 한다.   사실 좀 어려울 것 같다.   영문학도였지만 제일 싫어했던 과목이 영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는 어렸으니까.....   이 책에는 사랑과 관련된 시 뿐만 아니라 인생을 생각하게 하는 시, 그리고 여백의 미를 살린 하이쿠도 함께 실려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하이쿠를 좋아한다.  다른 이유는 없고 단지 깔끔하다는 것 때문이다.   하이쿠는 느낌이 바로 온다.  그러나 그 다른 시를 읽으면 몰입이 잘 안된다.  특히 격정적인 감정이 담겨있는 시를 읽으면 도대체 저런 감정이 어디서 흘러나왔을까? 궁금해진다.  사랑에 대한 시는 특히 더 힘들다.  그런데,,,,,,


내 눈의 빛을 꺼주소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

내 눈의 빛을 꺼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아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내 팔을 부러뜨려주소서, 나는 손으로 하듯
내 가슴으로 당신을 끌어안을 것입니다.
내 심장을 막아주소서, 그러면 나의 뇌가 고동칠 것입니다.
내 뇌에 불을 지르면, 나는 당신을 피에 실어 나르겠습니다.

앗!  이 시를 읽는 순간, 뭔가 전율이 느껴졌다.   눈을 가려도 볼 수 있고 귀를 막아도 들을 수 있다니....   영혼의 결합이란게 이런 건가?  이 시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 ( 1875~1926 ) 가 스물 두살 때 열네 살 연상의 여인 루 살로메 ( 1861~1937 ) 에게 바친 연시다.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한눈에 서로에게 반했고 금세 연인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루 살로메는 이미 유부녀였으나 그것이 그들의 사랑에 있어 장애물이 되지는 못 했다.   이렇게 열정적인 사랑의 시를 쓸 수 있다니,,,,,, 한 천재 시인이 그의 영혼을 일깨운 뮤즈를, 일생의 단 한명의 뮤즈를 만났다고 생각할 수 밖에........  짧은 연인의 관계를 끝내고 그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지만 이후에도 서로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어, 그것을 자신들의 작품에 표현한다.

 

 


그대와 나 사이에 두 개의 가을

마사오카 시키 ( 1867 ~ 1902 )

몇 번씩이나
내린 눈의 깊이를
물어보았네

떠나는 내게
머무는 그대에게
두 개의 가을

위에서 얘기했듯이 나는 하이쿠 ( 5-7-5 의 17자로 된 일본 고유의 단시, 글자 수만 맞추는 게 아니라 기본 작법을 철저히 지킴, 계절 감각을 나타내는 말을 넣음. 짧지만 촌철살인의 지혜와 통찰을 담아냄 ) 를 좋아한다.   하이쿠를 읽으면, 내 눈 앞에서 연기자가 부채를 탁 펼치면서 시를 읽어주는 느낌이다.  계절이 들어가니까 눈 앞에 아름다운 계절미를 상상하는 즐거움도 있다.  이 책 속에도 하이쿠가 나오는데 나는 서른 다섯에 짧은 생을 마감한 마사오카 시키의 시가 마음에 든다.   읽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저려온다.   폭설이 내리는 와중에, 폐병으로 죽어가는 저자가 어머니와 누이에게 눈이 얼마나 내리는지 묻고 그들은 눈물젖은 시선을 거두면서 더듬거린다...     겨울이라는 원초적 고독과 겹치는 저자의 고독.....  눈 내리는 광경을 볼 수 있도록 유리문으로 바뀌지만 그는 끝내 숨을 거둔다.

 

이 책의 저자인 고두현님은, 위에 예를 든 시인들 외에도 많은 유명한 시인들의 시를 싣고 그들의 인생을 노래하신다.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비극적으로 인생을 마감한 시인의 이야기 ( 이사도라 덩컨을 사랑했던 예세닌 시인 ) 도 있지만 프랑시스 잠 처럼, 생의 무게를 말없이 견디는 존재인 당나귀를 주제로, 겸손하고 온유하게 시를 써내려간 시인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한국인들에게 매우 유명한 조숙한 천재인 ' 랭보 ' 의 방랑과 기행도 이 책 속에 펼쳐진다.  매우 다양하고도 폭넓은 시인들의 세계가 있다.

 


시는 짧지만 강력한 한방이 있다.  마치 그림처럼.  감상하는 독자들의 영혼을 끌어올린다.  가끔은 슬프고 가끔은 아름답다.  잊고 살았던 예민한 감성이 되살아난다.  심장이 지릿지릿해지면서 눈물이 뺨 위로 톡 떨어진다......   나는 빵만으로도 잘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 잘 살고 있었을까?  마음 한 구석에는 사랑과 인생, 그리고 인간을 노래하는, 감수성 짙은 시들이 필요했나보다..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난 시가 더 읽고 싶어졌다.   시를 알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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