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 한 말씀만 하소서 박완서 소설전집 15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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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지혜>라는 말을 흔히 하지만,  할머니가 되는 것은 멋있어지기보다는 누추해지는 과정이기 쉽다. 50대 중반을 넘은 우리 어머니의 경우 그 누추함은 TV연속극에 탐닉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퇴근 후 첫 마디가 "얘들아, TV 꺼라."였던 엄마는,  뉴스에 큰 일이 나올 때 외엔 TV 앞에 앉지도 않던 엄마는 얼마나 멋있어 보였던가. 그런데 그 엄마가 이제 할머니가 되어, 귀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볼룸을 높이고 앉아 금순이니 삼순이니 국화니 하는 별 같잖은 여자들의 일거일동에 눈물을 찔끔거리는 모습이라니! 어머니가 열광하는 그 '별 같잖은 여자들' 중 하나가 배종옥 표 차문경이어서,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가 TV연속극으로 방영되던 지난 겨울, 나는 거실에 울리는 신파조의 "문혁아! 문혁아!"에 몇 번이나 짜증이 솟구쳤었다.

 

우리집 책장에 있는 이 책은 필시 그 때 드라마에 반한 어머니가 사다 놓은 것이겠지만, 예상대로 원작에는 신파조의 끈적끈적함이 없었다. 남자에게 속고,  학교에서 쫓겨나고, 미혼모로 손가락질 당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감정을 배제한 건조한 묘사를 통해 위화감 없이 전달된다. '그래, 사는 게 이런 거지. 인간이란 게 이렇게 무서운 데가 있지. 세상이 참 치사하지.' 라는 느낌. 박완서의 소설은 보통 그런 느낌이었다. 불행도 고통도 혼자만 겪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다 겪고 있는 거라고 일깨우는  나직한 목소리에는  호들갑 따위 발 붙이지 못하게 하는 단호함이 있다. 그 단호함이 작가의 목소리에 사회의 불합리를 준열하게 꾸짖는 힘을 실어 준다.

 

이 작가는 극한의 고통을 통해서 몸과 마음이 최악으로 망가지는 <한 말씀만 하소서>의 시간도 결국은 이겨낸다. 섭식과 배설에 대한 끈질긴 묘사를 통해 누추하게 더 누추하게 바닥을 향하던 할머니가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자기 자신을 훌륭하게 추스르는 것이다. "왜 하필 내가 이런 불행을 당하는 것인가" 에서 "나라고 이런 불행을 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나?"로의 엄청난 전환이 가능한 것은 결국 작가 자신이 강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무서운 점은 자신의 이러한 강인함을 쉽게 드러내 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평범한 아줌마로서,  중산층 서울 아줌마의 상식과 감성을 솔직하게 보여준다는 형태로 그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 왔다. 그리고 이제  노년기에 접어든 그의 글에는 인생의 무게가 더해지고 좀처럼 접하기 힘든 지혜까지 묻어난다. 햇볕에 탄 얼굴과 수더분한 한복으로 날카로운 비판 의식을 슬쩍 가리고 세상을 향해 매서운 펜 끝을 휘두르는 이 <지혜로운 노인>에 대면,  TV드라마가 저속하다고 혼자 튀는 나 따위는 아직도 한참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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