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나게 시끄러운 폴레케 이야기 1 - 오늘 나는 그냥 슬프다 일공일삼 69
휘스 카위어 지음, 김영진 옮김 / 비룡소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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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에 진짜 네덜란드 사람은 카로와 나, 둘밖에 없다. 나머지는 모두 외국인이다. 카로의 아빠는 ‘아이아(아주 이상한 아빠)’이고, 우리 아빠는 ‘이아(이상한 아빠)’이다. 내 생각에 네덜란드 아빠들은 모두 이상한 아빠들인 것 같다. 엄마 말로는, 네덜란드에도 옛날에는 정상적인 아빠들이 더러 있었단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맥주를 마시며 텔레비전을 보는 아빠들 말이다. 하지만 그런 아빠들은 이제 더 이상 없는 것 같다.
요즘 아빠들은
아빠가 아닌 사람이 아빠이거나,
아빠는 아빠인데 다른 집에 살거나,
아빠가 있기는 하지만 어디 사는지 모르거나,
시험관 아빠라 누가 우리 아빠인지 모르거나,
시험관 아빠가 누구인지 알지만, 엄마의 남편을 아빠라고 불러야 해서 시험관 아빠를 아빠라고 부를 수 없다거나,
시험관 아빠가 엄마의 남편은 아니지만 시험관 아빠를 아빠라고 부를 수 있다거나,
아빠가 누구고 어디 사는지 알지만 찾아가면 안 된다거나,
아빠가 남자를 좋아해서 졸지에 아빠만 둘이라거나,
엄마가 레즈비언이라서 여자 아빠만 둘인 경우이다.
다들 자기 아빠는 어디에 속하는지 한번 찾아보기 바란다.
-27-28쪽

아빠가 엄마와 결혼했을 때 아빠한테는 벌써 자식이 둘이나 있었다. 이름은 디륵과 엘케, 그러니까 내 오빠와 언니다. 그러나 아빠와 엄마는 내가 세 살 때 이혼했고, 아빠는 지금 지나 아줌마네 집에서 산다. 디륵 오빠와 엘케 언니 그리고 지나 아줌마의 아이들인 피케와 하이스와 함께. 그리고 아빠와 지나 아줌마 사이에는 태어난 지 삼 년 육 개월 된 딸, 힐레트가 있다.
정리하자면 힐레트는 내 이복동생이지만 피케와 하이스는 아니다. 그 애들은 지나 아줌마의 전 남편 사이에서 태어났으니까. 디륵 오빠와 엘케 언니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내 이복형제들이다. 이만하면 다들 알아들었겠지?
(아래에 계속)-28-29쪽

(위에서 계속)
처음에 나는 우리 아빠를 빼앗아 간 지나 아줌마가 무지 싫었다.
엄마는 일주일에도 몇 번씩 내게 이런 질무을 던지곤 했다.
"너, 아빠가 왜 그 여자랑 같이 사는지 아니?"
그러면 나는 순진하게도 번번히 되물었다.
"왜 같이 사는데? 말해 줘."
"그건 그 여자가 엉덩이를 잘 흔들기 때문이야. 남자들은 다 그래. 내 말 믿어."
나는 엄마 말을 믿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지나 아줌마는 엉덩이가 별로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크기로 치면 도리어 엄마 엉덩이가 더 컸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그 이유를 모른다.
언젠가 내가 할머니에게 물었을 때, 할머니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
"남자랑 여자가 싸우면 그냥 남자가 잘못했다고 해야 해. 그래야 일이 복잡해지지 않거든."
할머니의 말에 할아버지가 웃음보를 터뜨렸다. 할아버지가 숨을 못 쉴 정도로 웃어 대는 바람에 할머니는 할아버지 등을 세게 두드려 줘야 했다.-28-29쪽

우리 아빠는 비록 ‘이아’지만 아주 멋진 사람이다. 정말이다. 아빠도 나처럼 시인이다. 나와 아빠의 차이라면, 나는 시를 쓰지만, 아빠는 쓰지 않는다는 정도다. 아빠는 시를 쓰지 않는 시인이다. 하지만 아빠는 시인 그 자체다. 생김새나 걷는 모습, 말투만 봐도 누구나 대번에 ‘아, 이 사람 시인이군.’하고 알아챌 수 있다.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하지만 그런 아빠가 딱 한 번 시를 쓴 적이 있다. 내 시집에, 나를 위해 쓴 시였다.

열쇠를 꽂으라고
열쇠 구멍이 늘 비어 있듯
내 마음 한구석에도
우리 폴레케를 위한 자리가
늘 비어 있다네.

정말 멋진 시 아닌가! 나는 이 시를 읽고 하마터면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 왜냐고? 폴레케 앞에 적힌 ‘우리’라는 단어 때문이다. 듣기만 해도 정신이 아찔해지는 말이다.
(아래에 계속)-38-40쪽

(위에서 계속)
아빠가 멋진 이유는 또 있다. 누가 아빠에게 ‘뭐하세요?’ 하고 물으면 아빠는 "장군이에요.", "시인입니다.", "소방수예요." 따위의 케케묵은 대답 대신에 이렇게 말했다.
"전 지금 숨 쉬는 중인데요!"
사실 아빠는 숨 쉬는 일 말고는 특별히 하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그러는 게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왜냐하면 아빠는 왼손만 두 개 달린 사람 같았기 때문이다. 정말이다. 아빠가 만지는 물건은 뭐든 죄다 망가졌다. 아빠가 물기를 훔치려고 접시를 집어 들면 그 접시는 어느새 "쨍그랑"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 있었고, 창문을 닦으려고 걸레를 갖다 대면 창틀이 벌써 삐걱거렸다.
-38-40쪽

방과 후, 엄마한테 아빠가 아주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는 말을 들었다. 아빠가 체포되었다고 한다. 경찰 말로는 아빠가 마약 거래를 했단다. 맞는 말이다. 아빠는 대마초를 팔았고, 지금은 경찰 조사를 받기 위해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다.
나는 당장 자전거를 타고 구치소로 향했다. 내가 설명해야 한다. 경찰은 아빠가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나는 일분일초라도 빨리 아빠를 구치소에서 나오게 하려고 미친 듯이 페달을 밟았다. 십오 분 만에 구치소에 다다랐다. 초인종을 누르자 다행히 금방 문이 열렸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유리방 안에 아저씨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수위 아저씨였다.
"우리 아빠 때문에 왔어요. 이름은 스픽이에요. 여기 갇혀 계신데, 경찰이 완전히 실수하는 거예요."
수위 아저씨가 대답했다.
"그래? 거참 안됐구나. 이름이 뭐라고?"
"스픽이요. 진짜 이름은 헤리트예요."
"경찰이 실수로 네 아빠를 여기 가뒀다고? 너한텐 참 안된 일이구나."
"그래서 제가 아빠를 데리러 온 거예요. 아빠가 마약 거래를 하는 건 사실이지만 다 좋은 일을 위해서거든요."
(아래에 계속)-64-66쪽

(위에서 계속)
내가 설명했다.
"마약 거래를 안 하면 아빠는 대마초를 살 돈이 없고, 대마초를 못 사면 아빠는 시를 못 지어요. 아빠는 시인이에요. 그러니까 좋은 일을 위해서 그런 거예요. 아빠는 갇혀 있는 걸 못 견딜 거예요. 그래서 제가 데리고 나가려고요. 여기 갇혀 있으면 속병이 날 거예요. 그럼 다시는 시를 짓지 못할 거라고요."
나는 수위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수위 아저씨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제야 나도 내가 내뱉은 말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고 말았다.
여덟 살 때는 좋은 일을 위해 마약 거래를 한다는 아빠의 말을 정말로 믿었다. 아홉 살 때도, 열 살 때도. 하지만 나는 이제 열한 살이고 더 이상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수위 아저씨의 시선을 견딜 수가 없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아빠를 그곳에서 꺼내야 했다.
나는 복도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빠! 스픽! 어디 있어요? 어서 집으로 가!"
나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렇게 허약한 모습을 보이는 나 자신이 너무나 싫었다! 바보 멍청이 울보 같으니라고.
(아래에 계속)-64-66쪽

(위에서 계속)
수위 아저씨가 유리방에서 나오더니 내 어깨에 팔을 올렸다.
나는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아, 내 자신이 얼마나 싫던지. 조금만 대차게 행동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제 내가 엉엉 우는 소리는 거의 그레트예 수준이었다.
수위 아저씨가 물었다.
"너, 이름이 뭐니?"
내가 코를 훌쩍거리며 대답했다.
"폴레케요."
"그래, 폴레케. 넌 참 착한 아이구나. 잠시 아빠를 만날 수 있는지 내가 가서 한번 물어봐 줄까?"
나는 여전히 흑흑거리면서 "네에, 네에." 하고 소처럼 울부짖었다.
수위 아저씨는 허락을 받지 못했다. 아빠를 만나려면 면회 시간에 다시 와야 했다. -64-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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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12-11-13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한 살 폴레케의 '이아(이상한 아빠)' 이야기가 너무 인상적이어서 적어 둔다. 숨쉬는 일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노숙자들과 어울리고 마약 거래를 하다가 구치소에 수감되기도 하는 이 '이아'는 세 명의 여자에게서 네 명의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들은 네덜란드의 훌륭한 복지정책 덕으로 제법 잘들 자라고 있다. 아이는 엄마와 국가가 키우니 아빠는 자유롭게 숨만 쉬고 살아도 되는 나라라... 이걸 부럽다고 해야할지 한심하다고 해야할지...;; 깔깔 웃으며 즐겁게 읽었지만 덮고 나서 조금 복잡한 기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