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지식인의 생각과 글쓰기 전략
박수밀 지음 / 태학사 / 2007년 5월
절판


조선조는 거대 담론으로 통하는 시대였다. 추상적이며 보편적 언어로 세계를 규졍했다. 미미한 존재는 몰가치했으며 일상의 사물들은 관심 너머에 있었다. 존재는 道를 드러낼 때 의미를 지녔으며 거창하고 고상한 것만이 인정받았다. 고정된 가치체계와 전범을 숭상하고 절대 이데올로기를 추구하였다.
그런데 어느 시저기에 이르자 전범이 부정되고 주류 이데올로기가 도전받는다. 이른바 이단 서적이 암암리에 유행하고, 주변의 존재들의 의미를 부여받는다. 개별적 존재의 발견, 하찮은 사물에 대한 관심, 자연에 대한 재해석이 이루어진다. 뿐만이 아니다. 이른바 가냘프고 감성적인 속성의 小品文이 한 흐름을 혀성한다. 무엇보다 소품은 몰가치해 보이는 세계를 은밀히 드러내어 정통 고문에 반기를 들고 있다는 점에서 문체상의 혁명과도 같은 것이다. -16쪽

일찍이 주희는 도연명과의 만남을 두고 "나는 천년 뒤에 태어났지만 천년 전 친구와 벗한다네."라고 읊은 바 있다. 맹자 또한 천하의 좋은 선비와 벗하는 것을 만족스럽게 여기지 못한다면 거슬러 올라가 벗하라 가르쳤다. 이후 상우천고(尙于千古)는 수많은 중세 학자들에게 우정을 가늠하는 시금석과도 같은 용어가 되어 왔다. (중략) "논어", "맹자" 등의 경서, "사기"를 비롯한 각종 역사서에서는 늘 友道를 언급하며 바람직한 우정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였다. -43쪽

마음에 꼭 드는 시절을 만나 마음에 꼭 드는 친구를 만나서 마음에 꼭 맞는 말을 나누며 마음에 꼭 맞는 시문을 읽으면, 이것이야말로 지극한 즐거움인데 그런 일이 어찌도 적은가. 일생을 통해 몇 번쯤이나 될까?
(필자주: 이덕무 "청장관전서", '선귤당농소" 値會心時節 逢會心友生 作會心言語 讀會心時文 此至樂 而何其至稀也 一生凡幾許番)-48쪽

연암은 또다른 글에서 벗에 대해 풀이하기를 새에게 두 날개가 있고 사람에게 양 손이 있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런 까닭에 벗은 '제2의 나(第二我)'이자 자질구레한 일까지 두루 도와주는 사람, 곧 '주선인(周旋人)'이라 하였다. 제이오(第二吾)는 선교사 마테오 리치(1552-1610)가 중국에서 펴낸 "교우론"에서 붕우의 소중함을 역설하기 위해 한 말이다.
(필자주: 박성순, "우정의 운리학과 북학파의 문학사상", "국어국문학" 129, 국어국문학회. 2001. 12. 263쪽. 조선중기 실학자 이수광이 秦請使로 연경에 갔을 때 명나라에 와 있던 마테오리치의 저서 "천주실의"를 비롯한 "교우론"을 가져오게 된다. 이후 "교우론"을 읽은 많은 지식인들이 벗은 '제이의 나'라는 견해를 수용했던 듯하다.)-51쪽

글이란 무엇인가? 글이란 성인의 도를 싣는 그릇이라는 재도지문(載道之文)과 글은 도를 꿰는 그릇이라고 하여 상대적으로 문학의 독자성을 내세우는 문이관도(文以貫道)는 전통적인 언어관을 압축하는 용어다. 조선조 학자들은 글은 성인이나 현자의 정신세계를 담은 그릇으로 생각했다. 곧 글이란 도를 구현해주는 수단으로 인식하여 글에서 성현의 마음을 읽어 성현의 도를 체득하고자 했다. 도는 인간과 사물의 마땅한 것으로서, 도덕과 윤리를 담고 있는 개념이다. 따라서 글은 성정지정과 온유돈후, 민심교화를 담아야 한다는 효용론의 관점에서 그 의미를 가졌다. 글은 언제나 도의 종속적인 존재였다. 그런데 초정(인용자주-박제가)은 글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바꾼다.

신은 글(書)이란 도와 더불어 생긴 것이라 들었습니다. 도는 형체가 없기에 글로써 보였고, 도는 일정하게 머무는 곳이 없기에 글로 인도하였으며, 도는 언어가 없기에 글로써 전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는 물을 떠난 물고기가 없듯이 또한 글을 떠난 도는 없습니다. 글이란 하늘에 있어선 해와 별이 환히 빛나는 것이요, 추위와 더위가 번갈아 도는 것이며, (아래에 계속)-239-240쪽

(위에서 계속) 구름과 노을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땅에 있어선 강물이 흐르고 산악이 치솟는 것이며, 초목이 피고 지고 벌레와 물고기가 변화하는 것입니다. 사람에 있어선 신체의 온갖 동작과 머리카락의 모습이며 의복과 음식, 움직임과 말하는 모습이니 모두 글 아닌 것은 없습니다.

(필자주: "六書策": 臣聞 書者與道俱生者也 道無形體 則書以視之 道無方所 則書以導之 道無言語 則書以達止 故世無離水之漁 亦無離書之道矣 其在天也 則日星之昭明也 寒暑之消長也 雲霞之絢爛也 其在地也 則江河山丘之流崎也 草木蟲魚之榮落變化也 其在人也 則身體毛髮屈伸偃仰之態 衣服飮食動靜語默之象 無非書也
-239-240쪽

글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구양수의 말과 같이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면 가능할까? 다양한 논의가 있을 수 있겠으나 훌륭한 문장가는 무엇보다도 언어의 배치에 주목한다. 글이란 도(내용)를 드러내는 수단이라 인식했던 조선조에 형식은 단순히 내용을 실어 나르는 수단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문의 독자적 가치를 모색하는 조선후기의 많은 문인, 학자들은 좋은 글을 쓰기 위한 형식적 장치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이른바 사법(死法)이 아닌 활법(活法)을 못개했으며 편장자구(篇章字句)의 구성에 관한 이론들을 세워 나갔다.
(필자주: 정민 "고문관의 세 층위와 활물적 문장 인식", "시학과 언어학" 1, 시학과 언어학회 2000)-267쪽

강력한 규범과 맞서기 위해선 글쓰기 배치가 중요하다. 말하려는 주제가 심각할수록 억압이 크게 작동하는 사회일수록 글의 배치, 곧 형식은 내용 이상의 중요성을 갖는다. 글의 배치에 따라 설득의 효과가 달리지기 때문이다. 대체로 이럴 경우 연암은 주변을 가볍게 위장하거나 혹은 우언의 방식을 즐겨 쓴다.-3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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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09-10-01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8세기 연암 그룹에 대해서는 연구가 많이 돼 있는 것 같다. 역시 좀 더 이전으로 올라가 보지 않으면......
그건 그렇고, 원문 타이핑하다가 어라? 하고 생각한 게... 모르는 글자가 한 개뿐이었다. 이거 기뻐해도 되는 거지? 연암 그룹이 쉬운 글자를 쓰는 애들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나도 반 년 동안 좀 는 거 맞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