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장] 아들: 연설가의 힘에 대해서 이제 다 설명하셨으므로, 연설 구성에 대해서는 무엇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아버지: 연설은 네 부분으로 구성된다. 이 중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은 마음을 움직이는 역할을 담당한다. 왜냐하면 감정이 서론과 결론에서 자극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부분은 사실 기술이고, 세 번째 부분은 논증인데, 이는 연설에 신뢰감을 만들어준다. 그러나 강조는 원래 고유한 자리를 가지고 있지만 종종 연설의 시작에도, 하지만 연설의 마무리에서는 언제나 사용해야 하는 표현 방법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뭔가 입증되었거나 반박되었을 때, 이 경우 [강조]가 요구되는 원래 자리는 아니지만 강조해야 한다. 강조는 감정이 실린 격렬한 논증이기 때문이다. 논증이 증명을 목적으로 삼는 반면, 강조는 감동을 목적으로 삼는다.-134쪽
[57장] 어떤 일들에서 그것이 상실되었거나 잃어버릴 위험이 있을 때, 강조는 힘을 발휘하는 법이다. 행복했다가 불행해진 사람보다 더 연민의 정을 자아내는 경우는 없다. 만약 어떤 사람이 어떤 행복한 처지에서 불행으로 추락했다면, 어떤 사건이든 이는 그 자체가 청중의 마음을 움직인다. 어떤 사람의 총애를 잃고서 쫓겨난 경우, 어떤 [귀중한] 것을 상실 중에 있거나 이미 상실한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불행 속에 처할 것인지가 간략하게 표현된다면 사람의 심중을 뒤흔들게 된다. 여기에서 [간략하게 표현해야 함은] 특히 남의 불행 때문에 생겨난 눈물은 금방 메마르는 법이기 때문이다. (역자주-이 토포스는 지나친 감정 표현을 경계하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고, 수사학자 Apollonius의 말이라고 전해진다.) 강조할 때에는 어떤 것도 상세하게 설명하려 들어선 안 된다. 너무 상세하면 자잘하게 보이고, 강조에서 요구되는 것은 웅장한 무엇이기 때문이다.-204쪽
[79장] 사실, 수사학이란 다음 아닌 [표현과 내용에 있어서] 풍부하고 [청중의 범위에 있어서] 넓게 말하는 지혜이다. 이 지혜는 실은 원천에 있어서 변증론과 같은 곳에서 흘러나왔지만, [사용하는 표현과 주제의 범위가] 더 풍부하고 [대상 청중의 범위가] 더 넓으며 마음을 움직이고 일반 대중의 감각과 취향에 더 가까이 가 있는 덕목일 뿐이다.-258쪽
[140장] 아버지: 선과 악에 대해서, 공평함과 부당함에 대해서, 이익과 손해에 대해서, 명예와 수치에 대해서, 이렇게 가장 중요한 주제에 대한 학문을 공부하지 않는다면, 어디에서 연설가는 논의 주제와 주제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얻는단 말인가? 이런 이유에서 너는, 내 아들 키케로야, 내가 지금까지 설명한 규칙들과 지침들은 마치 저 아카데미아 원천으로 가는 길의 안내 표지라고 여겨야 할 것이다. 이 원천에 나의 안내를 통해서 혹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도착한다면, 그때 너는 이 규칙들 자체를 더 잘 알아보게 될 것이고 이것들보다 더 중요한 다른 것들이 있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아들: 저도 실은 그렇게 되기를 진실로 열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그러나 아버지께서 약속대로 설명해주신, 눈이 부시도록 빛나는 가르침은 저에게 뭔가를 더 바라지 않아도 될 정도로 명백하고 충분한 것입니다. <수사학 끝>-396쪽
140장의 역자 주석
철학의 강조는 키케로 수사학의 핵심 요체인 이상적 연설가(orator perfectus)론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예컨대 이상적 연설가는 하나의 형상(forma)인데, 이 형상을 다루는 학문은 철학이지 수사학이 아니다. (중략) 이 형상은 플라톤의 이데아이며, 키케로는 이를 forma라고 번역한 것이다. 철학의 강조는 이상적 연설가를 구성하는 방법에서도 더욱 분명히 나타난다. 본문에서 볼 수 있듯이, 키케로는 철학의 논리학, 자연학, 윤리학을 강조한다. 키케로가 이렇게 철학을 강조하는 까닭은 두 가지이다. 그중 하나는 키케로의 연설과 관련된 확신이다. 즉 사람들이 철학 없이는 진실하고 제대로 된 연설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철학은 의심의 여지 없이 사람들이 어떤 주제에 대해서 보편적이고 풍부하고 상세하게 말하고자 할 때, 반드시 필요한 학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철학과 수사학의 분리가 가져오는 결과 때문이다. 키케로는 <연설가> 제12장에서 이 결과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이렇게 전문 지식인에게는 대중적인 설득력이, 달변의 연설가들에게는 세련된 교양이 부족하다."(아래에 계속)-397쪽
(위에서 계속)키케로는 이 사태의 원인을 사람들이 철학과 수사학의 분리를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고, 그것들을 상호 연계 없이 각각 독립적으로 취급한 데 있다고 본다. 이 분리는 결과적으로, 진실하고 완벽한 연설로 가는 길을 막는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키케로의 입장을 대변하는 크라수스는 <연설가에 대하여>에서 철학과 수사학의 분리를 강렬하게 비판한다: "마치 혀와 심장의 분리와 같은 저 이상하고 백해무익한, 그래서 비난받아 마땅한 분열이 생겨났다. 한 무리는 우리에게 지혜만을, 다른 무리는 말하기만을 가르치도록"(제3권 제56장). 아버지 키케로가 긴 대화의 숲을 거쳐 아들 키케로를 철학의 샘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3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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