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제국주의란 무엇인가
미우라 노부타카.가스야 게이스케 엮음, 이연숙.고영진.조태린 옮김 / 돌베개 / 2005년 6월
절판


이연숙 <'국어'와 언어적 공공성> 중에서
'국어=일본 국민의 모어' 라는 등식은 오늘날에도 일말의 의심도 없이 일본 사회에서 통용된다. 마치 '일본인'은 모두 '국어=일본어'가 모어임이 너무도 당연한 것처럼 여긴다. 이런 사고의 틀은 일본어를 모어로 하는('하지 않는'의 오역? -인용자) 정주 외국인이나 학교 교육에서 일본어를 '국어'로 강요당하는 외국인의 존재를 은폐한다.'국어'라는 개념 자체가 일본 사회에서 多言語主義를 불가능하게 하는 커다란 장애물이다.
(이후의 인용은 모두 이연숙의 같은 논문. 한국어 번역판에서는 國語를 모두'고쿠고'라고 표기했으나, 한국에서 사용되는 '국어' 개념과 나란히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인용자가 '국어'로 고쳤음.)-464쪽

나리타 류이치(成田龍一)는 <'고향'이라는 이야기>에서 근대 일본의 국민 형성 과정에서 '고향'의 이미지가 해온 역할을 분석한다. '고향'이란 있는 그대로의 실제가 아니고, 어느 특정 시점과 특정 이야기의 형식을 취함으로써 비로소 나타나는 표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향'은 베네딕트 앤더슨이 말하는 '상상의 공동체'지만, 중요한 것은 "'고향'의 역할에 선행하여 nation의 역할이 이미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의식 안에는 몇 개의 '고향'이 겹쳐져 '국민'이 만들어지지만, '고향'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먼저 '국민'의 존재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치 '국민'이 정 ㅣ 제도 이전의 '자연'의 영역에 존재하는 것 같은 허구가 성립된다.
나리타에 따르면, '고향'을 말함으로써 '국민'의 이미지를 만드는 담론은 세 가지 특징을 가진다. 첫째, '애향심'과 '애국심'이 '審級性으로 논의된다'. 이렇게 해서 '가정-고향-국가'라는 계열이 각각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같은 논리로 묶인다. (아래에 계속)-467쪽

(위에서 계속) 둘째, '고향'과 국가라는 차원이 다른 대상을 연결하기 위해 비유법이 사용된다. 특히 부분으로 전체를 표현하는 비유인 '시네구도키'(제유)가 큰 역할을 한다. 셋째, "국가와 '고향'을 공공성과 연결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의 자발적인 행위조차도 "공공성을 개입시켜 '고향', 국가로 거둬들이는" 회로가 만들어진다.
근대 일본은 다양한 방법으로 '국어'가 '인위'가 아닌 '자연'의 영역에 있음을 증명하려 했다. 그것은 '국어'가 결코 법적 규정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과 관련이 깊다. 마치 대일본제국에서는 '일본어=국어'가 유일한 합법적인 언어인 것처럼, 일본은 국내뿐만 아니라 식민지 지배에서도 언어법 다운 언어법을 한 번도 제정한 적이 없다.-467쪽

중요한 것은 일본 사회에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기 위해 일본어를 가르치는 일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일본어가 아닌 언어를 모어로 하는 어린이들의 '언어권'을 지키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 자녀들의 모어 교육은 일본어 교육을 보완하는 역할로 보아서도 안되고, 장래의 귀국을 위한 준비라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이 문제는 일본 사회 안에서 비일본어가 가능한 한 넓은 범위에서 사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장기 체제자가 늘어남에 따라 일본어를 모어로 하는(하지 않는? -인용자) 외국인 논동자는 해마다 늘어갈 것이다. 그때 일본은 일본어가 모어인(모어가 아닌? - 인용자) 외국인을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며 더불어 일본 사회 안에서 비일본어를 사용하고도 살아갈 수 있는 언어 환경을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한다. 물론 이는 이른바 '외국인 노동자'에게만 한정되어서는 안 되고, 모든 정주 외국인과 선주민의 권리로서 인정해야 한다.-475-4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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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09-08-18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의 '일본어'를 '한국어'로 바꾸어 놓고 이같은 주장이 한국의 대학에 재직하는 외국인 교수에 의해 주장되었을 때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를 상상해 본다. 한국에서도 국어의 신성성에 도전하는 노력들이 나와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