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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은 샤워를 하지 않는다
이동훈 지음 / 다락원 / 1998년 12월
평점 :
절판
언제부터인가 책을 읽기 전에 저자의 약력을 꼼꼼히 살피게 되었다. 의외로 내용을 이해하는데 꽤 도움이 된다. '일본인은 샤워를 하지 않는다'라는 제목부터 소박한 이 일본론의 저자는 50년대에 한국 남부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에 합격해 오랫동안 경제 관련 관청에서 근무해 온 공무원이다. 자수성가했고 보수적인 가치관을 가진 중산층 중년 남자.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저자를 '평범한 한국 아저씨'라고 불러 보자.
평범한 한국인 답게 일본을 싫어하고 좀 경멸하기도 했던 아저씨가 직장 일로 도쿄에 파견되어 2년간 생활하게 되었다. 그런 그에게 일본이 보여 준 여러 모습들은 그가 가진 평범한 상식과 평범한 윤리에 의외로 상당히 부합하는 것이었다. 남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는 것, 작은 일에도 배려하는 것, 규칙을 잘 지키는 것, 근검절약하는 것, 공사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 이런 모습들은 저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마침내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읽으면 실망하기 딱 좋은 책이다. 평범한 아저씨에게 일본의 역사와 사회에 대한 독특하고 깊이 있는 통찰을 요구하는 것은 실례다. 그러나, 단순한 '관찰기록'이라 하더라도 이 책은 꽤 재미있다. 샤워를 하지 않는다든지 세뱃돈을 봉투에 넣어 준다든지 자전거에는 꼭 전조등을 단다든지 하는 신변잡기적인 얘기가 뭐 대단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대단치 않은 것이라 하더라도 다른 데서 알지 못했던 일본 정보를 꽤 얻었으니 만족한다.
한편으로는 공사 구분 확실히 하고 열심히 일해야 하며 집단의 규칙을 잘 지켜야 한다는 저자의 논조가 고리타분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아저씨가 솔직하게 쓴 평범한 놀라움과 평범한 감동은 독자를 슬며시 웃음짓게 한다. 우리 아버지가 하실 법한 얘기라는 느낌. 내용과 크게 상관 없는 아들 딸 사진을 한 장씩 슬쩍 끼워 넣은 것도 애교다. 좋은 아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 관계된 이야기는 극단적인 것일수록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21세기를 함께 걸어가야 할 가까운 이웃인 두 나라에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상식일지도 모른다. 서두에서 말했듯 소박한, 어딘지 어설픈 책이지만 읽고 난 느낌은 별로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