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모더니즘 소설론
강상희 / 문예출판사 / 1999년 5월
품절


객관적 세계와 그 세계에 대한 주관적 표상이라는 '세계의 이중화'는 근대적 사유의 핵심으로서, 어느 영역에 사유의 중점을 두는가에 따라 상이한 세계 이해의 방식을 산출하게 된다. 모더니즘 소설은 이 가운데 주관적 표상을 궁극적인 영역으로 상정하는 비동일성의 사유 방식을 따른다. 그 반면에 리얼리즘 소설은 대체로 객관적 세계, 나아가 주관과 객관의 동일성을 지향하는 사유 방식을 따른다. 그에 따라 모더니즘 소설은 객체, 외적 경험, 집단 의식보다 주체, 내적 경험, 개인 의식을 상위의 리얼리티로 구현한다.
이처럼 경험과 사유의 개인적인 기원에 근거를 두고 있는 주관성의 특성으로 인해 모더니즘 소설은 내면성과 외적 현실의 원형적인 대립 구성을, 내면성에로 경도된 일원화된 소설 구조로 병형시키는 경향이 강하다. 내면성의 우세, 더 나아가 내면의 독립화와 자율성은 모더니즘 소설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의식의 흐름, 내적 독백, 회상과 자유 연상 그리고 미학적 자의식 등은 바로 모더니즘 소설이 구현하고자 하는 내면성에 상응하는 서술 범주들이다.-16-17쪽

자율성 범주는 칸트와 실러의 미학에 기원을 두고 있는 것으로서, 근대의 분화 과정 즉 진 선 미의 범주에 해당하는 과학 도덕과 법률 예술의 정립의 산물이다. 예술 분화의 기본 원리는 심미주의를 통해 확립된 바 있는, 예술의 사회적 무효과성에 대한 인식이다. 그것은 우선 목적 합리성과 유용성을 근간으로 하는 근대의 일상적 가치 체계로부터의 독립을 뜻한다. (중략)
그러나 근대 예술 가운데 소설은 그와 같은 자율성 상태에 오랫동안 저항해 왔다. 근대 소설은 미적 자율성을 필수적인 요건으로 하지 않는 동시에 작가의 윤리성이 작품의 미학적 문제가 되는 유일한 장르이다. 내용 미학과 형식 미학의 충돌이 가장 극심한 장르가 소설인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내용과 형식의 긴장 속에서 총체성을 모색한 1920-30년대의 경향 소설과, 내용화된 형식 형식화된 내용을 지향한 모더니즘 소설은 작가의 윤리성과 소설의 자율성의 갈등을 선명하게 보여준 두 영역이라 할 수 있다.-32-33쪽

모더니스트들은 이상의 소설엣허처럼 외적 현실로 환원되지 않는 내면 의식의 요소를 담고 있으며, 새로운 언어와 기법, 인물의 발견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 공간적 형식과 동시성을 소설 구성의 핵심적 요소로 차용함으로써 전대 시간과의 선조적 연속성을 부정하고, 통합적 주체 대신에 파편화된 주체를 형상화함으로써 전통적인 소설과 명백하게 구분되는 특징을 갖게 된다. 모더니즘 소설의 이러한 특징은 "문명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산출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바 있다. (중략)
모더니즘의 전통 부정이란 본래 '가까운'과거 (immediate past)를 향하는 것이고, 먼 과거(distant past)는 오히려 숭배의 대사이 된다. 모더니즘의 한 특징인 신화 형식의 차용은 전통을 대하는 이러한 태도에 근거를 두고 있다. (중략)
모더니즘 소설의 두번째 타자로 경향 소설을 들 수 있다. 1930년대 모더니즘 문학의 진정한 타자는 경향 문학이다. 특히 마르크시스트 모더니즘을 경험하지 못한 우리 모더니즘 문학이 내용에 있어 정치적 급진성을 결여하고 있음은 경향 문학과의 대립이 배제론에 경도되었기 때문이다. (아래에 계속)-35-38쪽

(위에서 계속) 경향 문학에 대한 비평적 태도는 박태원, 김기림 등에게서 특징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박태원은 형식 미학의 요소들인 문장론과 기교론으로써 경향 문학에 맞서고 있으며, 김기림은 관념주의와 문학 언어 경시를 사례로 들어 경향 문학의 편내용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이들의 경향 문학 비판의 핵심은 이데올로기 편향 비판이거니와, 이 비판을 통해 모더니즘 문학은 형식 미학을 자기동일성의 근간으로 자각하기 시작한다.-35-38쪽

박태원의 중편 <천변풍경>을 리얼리즘의 확대로, 이상의 단편 <날개>를 리얼리즘의 심화로 규정한 최재서의 평론 <리얼리즘의 확대와 심화>를 기점으로 하여 전개된 논쟁은 모더니즘 소설의 리얼리티관의 실제를 검증하는 기회가 되고 있다. 리얼리티의 소설적 구현은 모더니즘과 리얼리즘 양자의 공동 목표이지만, 앞에서 살펴본 바처럼 양자 사이에는 한 걸음에 건너뛸 수 없는 문학적, 인식론적 단절이 가로놓여 있다. (중략)
리얼리티의 내용 확정이나 현실 상황에 대한 인식에 있어 문제의 핵심에 도달하고 있는 것은 최재서와 백철, 임화이다. 최재서는 <날개>에 구현된 리얼리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 작품은 한 개의 아브 노르말(이상한)한 성격을 그린 것인 만큼 나는 거기에만은 리얼리티가 있다고 봅니다. 가령 그러한 아브 노르말한 성격이 현실과 유리된 것이라면 리얼리티가 희박하다고 할는지 모르지만 그러한 아브 노르말한 성격이란 것도 역시 현대 문명이 낳아 놓은 것인 만큼 그러한 개성의 분화를 묘사한 것이니까 거기에는 리얼리티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현대의 리얼리즘이란 맑시즘과 프로이디즘의 양면이 있겠는데 (계속)-54-58쪽

그렇다면 이상 씨의 작품은 물론 프로이드적이겠지요." <문예좌담회> 조선일보(1937. 1. 1) (중략)
최재서가 리얼리티와 현실에 대한 모더니즘의 입장을 명백히 했다면 백철은 리얼리즘론의 입장을 선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그는 이얼리즘론의 혼미에 대해 "현대에 있어 리얼리즘이 그의 뚜렷한 본격성 그 일얼리티를 잃고 극히 완미해지고 분화되어 있는 적실한 반증"이라고 지적한 뒤,
"현재 우리들이 대하고 있는 일상적 현실은 그것이 현실이면서도 현실이 아니라는 곳에 不眞實한 금일의 사회 현상이 있다. 그 일상적 현실은 현실적 진실을 의미하는 현실이 아니고 일종의 가상적 표현에 불과한 것이다." 백철 "리얼리즘의 재고", <사해공론> (1937.1)
라고 말하고 있다. "현실적 진실"로서의 현실과 "가상적 표현"으로서의 일상적 현실의 대별이야말로 리얼리즘의 인식론적 거점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 (중략)
한편 임화는 <날개>를 "순수한 심리주의"로, <천변풍경>을 "파노라마적 트리비얼리즘"으로 규정하면서, "터무니없는 주관, 엉뚱한 관념주의"가 리얼리즘 형식 가운데 포장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아래에 계속)-54-58쪽

(위에서 계속)이어서 그는 이상의 소설이 노정하고 있는 주관주의적 경향을 리얼리즘의 원칙에 입각하여 비판한다. 비판의 방식으로 제기된 것이기는 하지만 임화의 다음과 같은 견해는 모더니즘 소설의 특징을 비교적 정확하게 파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파행적 리얼리즘이 사물의 현상과 본질을 혼동하고 디테일의 진실성과 전형적 사정 중의 전형적 성격이란 본질의 진실성을 차별하지 않고 현상을 가지고 본질을 대신하였다면, 주관주의는 사물의 본질을 현상으로서 표현되는 객관적 사물 속에 현상을 통하여 찾는 대신 작가의 주관 속에서 만들어 내려는 것이다." 임화, "사실주의의 재인식", <문학의 논리>, (학예사, 1940), 73
최재서와 백철, 임화의 대립적 견해가 절충적으로 수용되는 것은 이원조에 이르러서이다. 그는 "이상의 작품에도 현실 속에서 사는 사람의 생활이 진실하게 그려져 있다면 그것은 리얼리즘이라고 해도 결코 망발은 아닐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보는 눈과 보이는 대상, 주체와 객체가 통일되는 모멘트가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임으로써 양자의 종합을 시도한다. (아래에 계속)-54-58쪽

(위에서 계속) 그러나 이 절충적 입장은 최재서의 침묵으로 인해 논의의 심화에로 ㅇ연결되지는 못하였다.
이 논쟁을 정리해 본다면 임화, 백철 등은 현상/본질의 변증법에 깇토하여 일의적 리얼리티, 목적론적 개념에 종속된 범주로서의 리얼리티, 목적론적 개념에 종속된 범주로서의 리얼리티 및 이데올로기 형상화 수단으로서의 언어관을 제시한 반면에 최재서는 이상의 <날개>가 다루고 있는 세계를 존재론적인 문제로 제기함으로써 반영의 틀에서 벗어난 또 하나의 리얼리티 세계로서 근대적 인간의 내면을 제시하고 있다. 최재서에 의해 내적 리얼리티는 그 존재론적 위상을 보다 명료하게 비평적 관점 속에 부각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54-58쪽

'새로움'에의 열망으로 가득 차 있는 개항기 이후의 근대사가 보여주는 바처럼 근대의 추동력은 새로움과 독창성의 추구이다. 개항기는 중세로부터 근대에로의 이행이라는 서구의 역사 모델과 유비 관계를 이루면서 '새로운 시대'라는 공통의 시간 의식을 생성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라는 규정을 자기 인식의 원천으로 하는 서구의 근대는 역사를 상대함으로써 이 새로움의 역사철학적 토대를 마련했다. 창조와 파괴의 연속으로 점철되는 근대의 유동성은 그 추동력의 필연적인 결과인 것이다. -58-59쪽

한편 1930년대 모더니즘 문학은 박태원, 이태준, 정지용 등의 문장론 등에서 볼 수 있듯이 현저하게 문장론(문체론) 지향서을 띠고 있다. 문장과 문체의 강조는 소설을 언어학적 구조물로 인식하는 가장 뚜렷한 징표라 할 수 있다. 그들은 문장과 문체가 새로움을 보증하는 방법론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 문체는 근대 개인주의와 함께 출현한 것으로서 문학적 개성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독창성의 근원에 해당하는 것이며, 개인 의식을 타자의 의식으로부터 구별짓는 양식이다. 이러한 문장, 문체의 정립을 통해서 새로운 리얼리티로서의 내면은 그 독자성을 확증받을 수 있다. 1930년대 모더니스트들의 소설이 대체로 서사 충동(질량화 충동;molar impulse)보다는 문체 충동(분자화 충동;molecular impulse)이 우세하고, 그에 따라 플롯을 무시한 비유기체적 소설에로 경도된 한 원인을 문장론 지향성에서 찾을 수 있다.-67쪽

근대적 삶의 불확실성, 모호함, 가변성으로 인해 모더니즘 작가들의 소설은 그 구성에 있어 유기체성의 파괴라는 특징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잏상, 박태원 등의 소설에서 볼 수 있는 단편(斷片)의 병치와 몽타주 수법 등은 모더니스트들의 근대 인식에 상응하는 기법들이다. 이러한 기법들을 통한 세계와 자아의 탐구는 당연히 통일된 감정이 아닌 아이러니로 귀결된다. 최명익의 <봄과 신작로>의 주인공 금녀첳럼, 자아는 이제 외적 현실에 대해 내면적 가치로서 자기 존재를 체감하기 시작한다. 자아는 근대적 삶의 유동성을 경험하면서 비로소 내면으로 눈을 돌리고 자기 자신을 보존하거나 혹은 해체하려는 욕망을 갖게 된다. 모더니즘 소설에 나타나는 개별자로서의 주인공은 이처럼 보편자로서의 근대성이 유동성을 본질로 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인물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러니는 내면과 외적 현실 사이의 균열을 이어주고 내면성의 열망을 상대화한다. 예컨대 시적 주술이 사라져 버린 "산문적 현실"에서 최명익 소설의 주인공들이 내면의 추상성으로 고립되지 않는 것은 아이러니의 기능 때문이다. 또 삶을 "수평적 타락"으로 만들어 버리는 (아래에 계속)-82-83쪽

(위에서 계속) 환멸의 현실에서 유항림 소설의 인물이 생존하는 힘은 내면의 충돌 감정 혹은 욕망이다. 이 양가적 감정 혹은 욕망의 균형이 상실되었을 때 아이러니가 사라지고 <마권>의 주인공은 완전한 유폐로서 동경행을 결정하게 된다. 李箱 소설의 자아는 "형해와 흔적'으로밖에 존재할 수 없지만, 자아를 그러한 상태로 만드는 세계의 위계 질서를 유희 대상으로 만듦으로써 소설 전체를 아이러니의 공간으로 만든다. 이렇듯 1930년대 모더니즘 소설에서 내면성의 유아론적 고립을 어느 정도 상쇄하는 것은 아이러니를 매개로 한, 외적 현실과의 최소한의 접촉 때문이다.
외적 현실의 표상(사실)은 모더니즘 소설에서 그것과 대칭 관계에 있는, 의미와 가치의 내면적 탐색으로 형상화된다. 사회적 근대성의 세계는 의미와 가치를 포함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것의 탐색은 자아의 내면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더니즘 소설에서 자아의 내면에서 탐색된 의미, 가치와 외적 현실을 이어주는 수사학적 가교가 바로 아이러니인 셈이다.-82-83쪽

1930년대 모더니즘 소설에서 볼 수 있는 특징적인 경험의 양상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일상성의 경험이다. 동시대의 경향 소설이 대체로 일상성을 넘어서는 목적론적 시공간 구조를 소설의 기반으로 삼은 데 반해, 그러한 목적론이 결여된 모더니즘 소설은 일상성 그 자체를 소설적 시공간으로 채용하고 있다. 그러나 모더니즘 소설은 대체로 일상성을 소설의 토대로 삼으면서도 그것에 대해 반정립의 형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상적 현실은 모더니즘 소설 주인공의 주관적 경험이 펼쳐지는 시공간이지만, 그 주관성으로 인해 일상성이 변형, 전도된 방식으로 경험되는 것이다. 특히 교환 가치와 실제적 합목적성이 지배하는 근대적 일상성은 모더니스트들이 넘어서야 하는 하나의 인식론적 장애물로 형상화되고 있다. 근대적 일상성을 내면화하여 자기 동일성의 근간으로 삼을 때 얻을 수 있는 삶의 만족감은 오히려 이들에게는 혐오와 기피의 대상이 되고 있다. (중략)
근대인들에게는 일상의 순환적 시간이 근대적 삶의 유동성을 견디는 동력을 제공한다. 일상의 세 영역인 노동, 욕구, 쾌락의 결합 속에서 그들은 일상을 자기 실존의 절대적인 조건으로 받아들인다. (계속)-91-93쪽

(위에서 계속)
그러나 모더니스트들은 그와 같은 완결된 표현(피상성)을 가진 일상적 현실의 질서와 가치 체계에 권태를 느낀다. 권태는 특히 근대 소설 이후에 부각된 실존의 상태로서, 모더니즘 소설이 사회적 근대성과 맺는 부정성의 관계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증이 된다.-91-93쪽

최명익은 독서 체험의 가치를 절대화하기 위해 일상적 현실의 종말을 그린다. <비오는 길>에서 사지관 주인의 느닷없는 죽음이나 <무성격자>에서 아버지의 죽음은 독서 체험의 가치 곧 내면성의 가치를 보존하기 위한 소설적 책략이라 할 수 있다. 사진관 주인의 죽음이 다소 과장된 아이러니로 느껴지는 것은 그 책략의 필연성이 부각되지 못하고, 내면의 절대성을 강조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노출되었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99-100쪽

"내가 내 작품 ㅎ속에 무기력한 룸펜, 인텔리를 취급하는 것은 이분들이 그들의 작품 속에 <투사>라는 <주의자>를 취급하는 것과 동등한 권한에서 나온 것으로 다만 이곳에서 우리가 명심하여 둘 것은 이 <오월의 훈풍>이 나의 이제까지 제작한 작품 속에서 결코 우수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철수>라는 인물이 그분들의 어느 <주의자>나 <투사>보다도 훨씬 실재감을 가지고 있다는 한 가지 사실이다."
-박태원 <내 예술에 대한 항변> 조선일보 (1937.10.22)

박태원이 말하고 있는 "실재감"은 그러한 인간형의 편재성에 대한 지적인 동시에 심미적 리얼리티를 핵으로 하는 인간형에 대한 옹호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실재감"이 바로 모더니즘 소설에 설정되는 인물의 가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와 같은 인물은 근대인의 타자로 서 있는 심미적 근대인의 표상이다. 이들은 근대 부르주아 사회의 가치 체계를 거부함으로써 '고독한 예술가'라는 심미적 근대인의 원형이 된 보들레르의 특서을 공유한다.
1930년대 모더니즘 소설에 설정된 인물은 우선 근대인의 자기 보존의 논리인 노동과 생산의 패러다임 그 맞은편에 서 있다. (아래에 계속)-106-107쪽

(위에서 계속) 노동자가 자본주의의 발명품인 것처럼 룸펜 인텔리도 자본주의의 부정적 발명품이다. 후자는 노동과 생산의 윤리를 저버림으로써 근대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의 은유가 된다.-106-107쪽

이상, 유항림 등의 소설이 도달한 그러한 고립과 자기 충족성의 존재 상태에서 이들을 사로잡는 것은 유희 충동(spieltrieb)이다. 오성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완전성의 이념과 실천적 이성의 지향점인 선(善)이 절대적인 진지함을 요구한다면 유희 충동은 심미성을 통한 자율호운 유동을 경험한다. 모더니스트들의 유희는 감각 충동(Stofftrieb)과 형식 충동(Formtrieb) 간의 긴장과 갈등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를테면 이상의 유희는 형식 내지 절대를 향한 형식 충동이 우세한 반면에 유항림이나 박태원의 경우는 소재 내지 제재를 향한 감각 충동이 우세하다.-109쪽

이상의 소설이 1930년대 모더니즘 소설에 나타나는 유희 충동 가운데 가장 강렬한 것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여전히 '근원에 대한 동경의 윤리, 순수함의 윤리, 자기 현존의 순수성에 대한 윤리'가 존재한다. "루소적 유희"라고 불릴 수 있는 이상의 이러한 유희 양상은 줄곧 "풍경의 근원, 중심, 초점"을 붇는 근대적 지성의 자기 이해로부터 유래하는 것일 터이다.
이상의 '루소적 유희'가 자책감, 슬픔, 향수 등의 정조를 담고 있는 것이라면 박태원 소설에 나타나는 유희는 유며를 수반한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중략) 문어체에 적합한 단어 특히 한자어를 서술이나 대화에 빈번하게 사용하여 과장과 의뭉스러움을 만들어내고 있는 이런 경우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전후한 모더니즘 소설에 두드러진 경향이다. 이상의 소설에서 한자어가 관념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데 기여하는 반면, 박태원의 소설에서는 그것이 유머를 낳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중략)
생활인의 정조인 명랑성에 대한 욕망은 박태원의 소설 세계 전반에 관철되고 있는 욕망이다. (아래에 계속)-113-115쪽

(위에서 계속) 모더니즘 소설의 다소 부박한 유희로부터 일상적 현실의 전면 수용으로 이행하게 되는 동력은 처음부터 그의 소설과 문장에 내재해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 이행은 내면성의 추구로부터 일상적 현실의 승인으로 나아간 과정과도 동일하다. 그렇다면 박태원 소설에 나타나는 유희 충동은 유항림 소설의 환멸의 유희와 대칭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그 중간 지점에 전도된 진정성의 원천으로서 이상의 루소적 유희가 있는 것이다. -113-115쪽

관조의 한 요소인 침묵이 내면 의식 형성의 중요한 전제가 됨은 최명익의 소설 거의 전편에서 드러나고 있다. 침묵은 일상적 현실로부터 심미적인 거리를 두고 자아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이다.-124쪽

1930년대 리얼리즘 소설이 이와 같이 환유 지향성을 수사학적 원리로 삼고 있는 데 반해 모더니즘 소설은 은유 지향성을 그 원리로 삼고 있다.
첫째, 모더니즘 소설은 대체로 보편으로 환원되지 않는 '개별적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는다.이 인물은 주관적 경험과 개별적인 내면성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중략)
둘째, 모더니즘 소설은 유기적 소설 구성보다는 몽타주나 병치 등의 단편화(斷片化) 기법으로써 스토리의 통일성을 해체한다. 모더니즘 소설에서 전반적으로 서사성이 약화되는 것은, 인접성에 근거한 환유가 아니라 유사성에 근거한 몽타주, 병치 등에의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서사는 발단이 결말을 포함하고, 결말이 발단을 포함하는 완결된 구조를 요구하는데, 모더니즘 소설은 그러한 완결된 서사에 대한 욕구를 폐기하는 경우가 많다. (중략)
셋째, 모더니즘 소설은 언어의 재현적 성격보다는 은유를 통한 의미의 확장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복합적이고 다의적인 내면 의식의 표출에 있어서 모더니스트는 재현 불가능성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은유의 수사학은 그러한 난경을 극복하려는 수사학적 전략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계속)-128-129쪽

(위에서 계속)
넷째, 문장의 운용에 있어 모더니스트는 결합보다는 선택의 원리를 취함으로써 은유를 통한 새로운 리얼리티의 창조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레이코프와 존슨의 지적처럼 "새로운 은유는 새로운 이해를, 따라서 새로운 실재를 창조할 수 있다." 특히 1930년대 모더니스트들이 운용하는 은유의 수사학은 내적 리얼리티의 창조에서 그 기능을 발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128-129쪽

모더니즘 소설의 시간 구조는 일반적으로 자연적 시간(time in nature), 객관적 시간, 사회적 시간의 속성이자 전통적인 소설의 시간 형식인 선조성의 거부로 특징지을 수 있다. 전통적인 소설에서 시간은 서사 전개의 동력으로서 스토리에 종속되어 있다. 그 반면에 모더니즘 소설의 작가와 주인공은 선조적 시간의 무의미함에 권태를 느끼고 그 시간을 미적 유희를 위한 단편(斷片)으로 해체하려는 경햐이 강하다. (중략)
모더니즘 소설에서 서사섯ㅇ이 약화되는 한 가지 이유는 거기에 있다. 모더니즘 소설은 자기 경험의 바탕을 이루는 경험적 시간(time in experience), 주관적 시간, 개인적 시간에 큰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모더니즘 소설에서 내면성과 외적 현실의 급격한 분열이 서사성을 파괴하듯이, 내면 의식에 상응하는 주관적 시간과 외적 현실에 상응하는 객관적 시간의 분열은, 스토리의 직선적 운동성에 근거한 서사적 시간의 성립을 방해한다.-136-137쪽

모더니즘 ㅎ소설의 시간 체험인 동시성의 본질적 요소는 시간의 공간화이다. 주관화된 현재적 시간의 발현 형식인 동시성이란 바로 시간적 인자의 공간화를 본질로 하는 것이다. 공간화된 시간을 설정하고 있는 이상이나 박태원의 몇몇 소설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거의 느껴지지 않으며, 나아가 그것이 의미 있는 질적 변화를 초래하지도 않는다. 그 대신 공간의 유동과 흐름이 -특히 최명익의 소설에서처럼- 인물의 내면 의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인공물로 가득 찬 도시의 유동적이고 혼란스러운 풍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소설에서 이 공간화의 효과가 극대화된다.-141쪽

모더니즘 소설의 작중 인물은 많은 경우 사회적 존재로 환원되지 않는 심리적 아포리아를 지니고 있다. 이 인물은 존재피구속성에서 벗어난 형상으로 나타나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 상태, 곧 내면성만으로 서술되기도 한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명제는 모더니즘 소설에서 이처럼 전도된 방식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모더니즘 소설의 작중 인물에게 부여되어 있는 내면의 형상을 중층적이라 할 수 있음은 그 때문이다. 이들은 단층적, 단선적 심리 구조보다는 중층적, 복합적인 심리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 인물의 내면에는 그 기원이 불명확한 심상과 지각, 관념들이 혼재되어 있다. 모더니스트들이 전통적인 리얼리즘 기법을 거부하는 한 가지 이유는 그것을 통해서는 삶의 다양성과 복잡성 그리고 심오함을 포착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178쪽

박태원의 소설은 개인과 가족의 문제를 다루면서, 고립된 개인으로부터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으로 이행한다. 초기 소설의 탈중심화된 인물조차 그 근저에는 어머니로 푯항되는 가족에로의 욕망이 개입되어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소설과 구보씨의 일일>은 그 의미 이동의 분수령으로서, 내면성과 외적 현실의 불화가 후자에로 경사되는 계기를 이룬다. 이제 <천변풍경>을 중심으로 하여 안정된 세테 소설의 세계가 정칙된다. 예를 들자면 <골목안>은 그러한 세태 소설의 안정성을 얻고 있는 소설이다.-212쪽

1930년대 모더니즘 소설의 내면성은 유폐적 실존으로서의 근대적 개인의 위상을 드러내고, 소설의 형식 미학을 개척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한 경향 문학의 타자로서 모더니티 지향성의 한 갈래를 형성한 모더니즘 소설은 부정성으로써 사회적 근대성을 비판하였거니와, 그 비판의 토대 역시 합목적성의 대항 형식인 자율적 내면성이었던 것이다. 근대주의의 가능성과 한계에 관한 최근의 비판적 논의에도 1930년대 모더니즘 소설이 구축한 내면성의 세계는 의미 있는 통찰을 제공하리라 생각한다.-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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