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TV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에 나온 '초난강'을 보고 아이돌 그룹 SMAP(스마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전에도 "기무라 타쿠야" 정도는 들어 봤었지만, 인터넷 동영상 검색으로 버라이어티쇼 <SMAP×SMAP(스마스마)>를 보고는 좀 충격을 받았다. 이건 단순히 웃기다 재미있다 하는 수준이 아니다. 내년이면 그룹 결성 20년. 중학생 때(막내인 싱고는 소학교 5학년 때) 만나 대중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에 10대, 20대를 다 바쳤다. 노래, 댄스, 드라마, 토크, 개그 뭐든지 다 한다. 당구도 하고 요리도 하고 25km 크로스컨트리에 해발 3800m 후지산 등산에 풀마라톤까지 한다. 피로로 축 늘어져 있다가도 카메라가 향하는 순간 전등에 불이 켜지듯 '팟'하고 최상의 미소가 만들어진다. '프로'라는 표현을 넘어 '달인'의 아우라가 보이는 것 같다.


왼쪽부터 기무라,싱고,츠요시,나카이,고로

거기에 멤버들 각자의 개성이 다 다른 것이 또 즐겁다. 우선 완벽한 남자 기무라 타쿠야(木村拓哉)가 있다. 역대 일본 드라마 시청률 1위부터 5위까지의 주연으로 NG를 내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한 배우. <스마스마>에는 무슨 게임이든 종류를 가리지 않고 의욕적으로 덤벼들어 이겨놓고 보는 그의 모습이 자주 나온다. 머리도 운동 신경도 손재주도 좋은 데다 성실하고 겸손한 이미지. 유치원 다니는 애가 있는 아저씨임에도 불구하고 14년째 일본 남자 연예인 인기 순위 1위를 지키고 있다. 다음으로 데뷔 때부터 한결같이 팀을 위해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열정적인 노력가로, 위기에서 더욱 빛나는 리더십의 소유자 나카이 마사히로(中居正廣)가 있다. 두 사람보다 5살 연하로 팀의 막내인 카토리 싱고(香取愼吾)는 커다란 덩치에 귀여운 얼굴, 발랄한 장난끼를 가진 분위기 메이커지만 때때로 보이는 진지한 표정이 또 상당히 임팩트가 있다. 도회풍의 말끔한 외모와 엉뚱한 몽상벽의 갭이 포인트인 네번째 멤버는 상냥한 남자 이나가키 고로(稻垣吾郞).  마지막으로 한국 마니아 쿠사나기 츠요시(草彅剛)는 튀는 데 없이 조용하지만 다른 멤버들의 화려함에 기죽지 않고 탄탄한 기본기에 자신만의 성실함을 더해 팀의 균형을 잡아주는 사람이다.


뒷 줄 왼쪽부터 츠요시,기무라,싱고,나카이. 앞 줄 모리(96년 탈퇴해 바이크 레이서가 됨),고로

재능 있는 어린 소년들을 찾아 이렇게 완벽한 스타로 만들어낸 것은 <쟈니즈 예능사무소>라는 이름을 가진 시스템이다. 이 회사는 일본 전국에서 10대 초반의 미소년들을 오디션으로 선발하여 노래, 춤, 연기의 레슨을 시킨다. 이렇게 훈련받고 있는 수십 명의  <쟈니즈 주니어>들은 사무소 소속 선배의 백댄스와 선배 주연 드라마의 단역으로 연예계 생활을 시작한다. 이 시기에는 설령 유명해진다 해도 주니어로 대우받을 뿐. 매니저는 없고 촬영장에는 전철로 혼자 가야 한다. 이 <쟈니즈 주니어> 중에 톱에 속해 그룹이 결성되면 비로소 데뷔의 희망이 보인다. 그룹 결성 후 드라마도 하고 버라이어티 쇼도 하고 콘서트도 하면서 2~3년간 지명도를 높여 드디어 대망의 CD 데뷔에 이르면 비로소 한 사람의 연예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출연료와 광고 수입은 주니어 시절부터 먹여주고 길러주고 레슨시켜 준 사무소로 들어간다는 것. 이런 식으로 쟈니즈 사무소에 엄청난 돈을 벌어 주고 있는 "아이돌"로는 91년 데뷔한 SMAP 외에도 TOKIO (94), V6 (95), KinKi Kids (97), ARASHI (99), 타키 앤 츠바사(02), NewS (04), 칸쟈니8 (04), KAT-TUN (06) 등이 있다. 얘들 단합대회는 매년 도쿄돔을 빌려서 한다. 야구도 하고 축구도 하고, 그걸 또 5만명이 넘는 팬들이 들어가서 보고....


뒷줄 왼쪽부터 츠요시,고로,기무라,나카이,모리,싱고. 앞줄은 SMAP의 백댄서였던 KinKi Kids의 도모토 츠요시(堂本剛)와 도모토 코이치(堂本光一)

이 시스템을 보고 있으면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 바로 교토에 남아 있는 전통 연예인 "게이샤(藝者)"이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지만 게이샤는 몸을 파는 여성인 유나 (湯女)와는 다르다. 물론 일본 전통 사회에서는 매춘업도 무척 번성해서 도쿄의 요시와라(吉原)나 교토의 시마바라(島原)에는 불야성의 홍등가가 있었고, 오이란(花魁)으로 불리던 최고 등급의 유나가 시대의 스타가 되기도 했지만, 게이샤의 거리는 유곽 거리 시마바라가 아닌 기온(祗園)이었다. 게이샤가 되려는 소녀는 어린 시절부터 오키야(置屋)에 소속되어 의식주를 제공받으며 노래, 악기 연주, 춤 등의 수업을 받는다. 그 후 16세 전후에 시험을 거쳐 마이코(舞子)로 데뷔, 선배 게이코(藝子)를 따라 연회석에 다니며 실무를 배운다. 연회인 오자시키( お座敷 )는 기온 지역에 퍼져 있는 특수한 작은 가게인 오차야(お茶屋)에서 열린다. 단골 손님의 요청을 받아 장소를 제공하고, 요리를 주문하고, 가무를 담당할 게이샤를 섭외하는 것이 오차야의 역할 . 밤마다 오차야에 다니며 3년 정도 견습 생활을 한 마이코는 붉은 옷깃을 흰 색으로 바꾸어 다는 '에리카에'라는 의식을 마치면 비로소 정식 게이샤가 된다. 이제 그녀에게도 상당한 수입이 생기지만, 그것은 생활비와 의상비, 그 동안 쌓인 레슨비 명목으로 소속 오키야로 들어간다.


저 의상과 장식은 18kg정도의 무게가 나간다.

1960년대 기온 최고의 게이샤로 불린 이와사키 미네코가 구술한 <게이샤 A Life>를 읽으며, '예능 사무소=오키야', '그룹 결성=마이코 데뷔', 'CD데뷔=에리카에'라는 공식을 떠올리고 웃었다. 게이샤의 손님들이 하룻밤 수백만원의 술자리에 흔쾌히 돈을 쓰며 그녀들에게 값비싼 선물을 안겼던 것처럼, 그들만큼 부자는 아니지만 사랑의 크기에서만은 결코 뒤지지 않는 아이돌 팬 여자들은 CD를 사고 콘서트 티켓을 사고 잡지와 사진과 팬시 상품을 사기 위해 흔쾌히 지갑을 연다. 21세기 연예계의 명멸하는 조명 뒤에 숨은 이 어마어마한 고루함이라니, 일본이라는 나라는 역시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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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i 2007-10-18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보고 어떤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꽤 재미있네요. 그리고 꽤 적확한 비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mizuaki 2007-10-18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냐오 님, 동의해 주셔서 정말 기뻐요. ^^
저 냐오 님이 쓰시는 BL리뷰의 오래된 독자랍니다. 아이돌계가 그쪽으로도 마굴이더군요. 관심 생긴 김에 킨키의 드라마 <인간실격>을 찾아 봤는데, '지금이라 다행이지 10년 전에 봤더라면 나 상당히 위험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