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형래 씨의 <디 워>를 비난한 글이 일으킨 문제로 전국민에게 알려지기 훨씬 전부터, 나는 이송희일 감독 개인 홈페이지의 단골이었다. 하루에도 많으면 서너 개씩 글이 올려지던 그의 게시판은 사실 일기장 같은 장소였다. 가족들 사진도 있고, 옆집 부부 싸움 얘기도 있고, 술 먹고 속 쓰리다는 투덜거림도 있고, 정치가 욕도 있는 그런 곳. 나는 그의 글을 좋아했다. <예스24>에 쓰는 고정 칼럼 <견문발검>보다도 정리되지 않은 자유게시판을 더 좋아했다. 그곳의 글들은 짧고 도발적이고 열정적이었으며, 때로 너무 어려운 것까지 포함해서 인간적이었다. 눈팅족 뺀 방문자는 수십 명 내외에 불과하던 그 사이트가 갑자기 "접속 폭주로 추가 접속 노드가 없습니다."란 말만 남기고 붕괴되어 버렸을 때,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포털사이트 인기검색어 1위에 이송희일의 이름이 나타난 것이다. 폭파된 개인 홈페이지에 이어 이번에는 지난해 가을에 개봉한 독립영화 <후회하지 않아>의 공식블로그가 공격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욕설들에 눈 앞이 캄캄해졌다. 그 영화 <후회하지 않아>의 프로듀서였던 김조광수 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이송희일의 글을 읽었다. 표현은 거칠지만 틀린 말은 아닌데 왜 이런 공격을 받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심형래 감독이 한 충무로가 그를 왕따시킨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는 요지의 글을 쓰자 이번에는 김조광수 씨 블로그가 폭탄을 맞았다. 사건 후 조용히 입 다물고 있었던 이송 씨와 달리 그러지 말라고 몇 번 더 글을 쓴 김조 씨는 점점 더 거세어지는 욕메일과 괴전화에 일상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가 되었다. 공격은 두 사람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게도 확대되었다. "왜 불쌍한 독립영화 감독을 마녀사냥하냐?"라는 글을 쓴 블로거 심샛별 씨에게는 1000개가 넘는 덧글이 돌아왔다. 가족들 사진을 찾아냈다, 아들을 납치해서 혼내주겠다는 끔찍한 악플도 있었다. 이송 씨 글이 나오기 전부터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던 영화기자 허지웅 씨의 블로그의 <디 워 광풍>이라는 글에 달린 덧글 수는 현재 2000개를 앞두고 있다.
반대쪽에서는 심형래 감독에 대한 열광이 인터넷 세상을 뒤덮었다. 이송희일과 김조광수의 성 정체성을 저열하게 까발리는 악플러들이 있었고, 가족들과 함께 즐겁게 보고 왔는데 왜 남 잘 되는 걸 못 보냐는 '선량한 시민'들이 있었고, 오오, 이 폭발하는 민중의 힘을 보라~ 하고 그들을 찬양하는 <서프라이즈> 사이트의 인터넷 논객들이 있었다. 노빠-황빠-심빠의 연관성이 의심을 받는 가운데, 이 논객 중 하나인 김동렬 씨가 <디 워, 전쟁이 시작되었다. 충무로를 타격하라>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충무로와는 상관 없는 독립영화 감독을 '충무로의 막내로서 선배들을 위해 전투의 선두에 섰다.'고 본 기본적 오류에서 출발한 이 글은 민중의 힘으로 무능한 권력자들을 축출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저 제목, 어딘지 익숙하다.
1966년 5월 25일, 북경 대학의 젊은 강사 섭원재가 대학 구내에 붙인 대자보의 제목이 <사령부를 포격하라> 였던 것이다. 당시 중국 정부의 실무자들을 격렬하게 비난하고 대중 혁명을 선동한 그녀의 뒤에는 은퇴한 최고권력자 모택동이 있었다. 대자보는 대성공이었다. 중국 전역에 "장이 섰고", 군중은 구태의연한 정치가들, 교육자들, 문화인들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을 시작했다. 피와 죽음, 폭력과 광기로 얼룩진 "10년 동란", 문화대혁명의 시작이었다.
사태 초기부터 이 영화에 대한 광적 열광에 대해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했던 사람인 허지웅 기자가 "평론가 혐오 시대"라고 명명한 이 <디 워> 사태에서도 우리는 폭력적 파시즘의 징후를 읽을 수 있다. "(1)반(反)지성주의, (2)집단적 폭력성, (3)(실체 없는) 민족주의, (4)적 만들기, (5)자본가와 지도층의 기묘한 동거, (6)과대 포장과 선동, (7)지도자의 절대선, (8)신념에 대한 확신"이라고 이를 정리한 erte라는 네티즌의 블로그 글은 역시 포털 게시판에 끌려나와 인민재판의 대상이 되었다. 이송희일, 김조광수가 너무 맥없이 쓰러진 데 대해 허탈해 하던 군중들이 그 둘은 깃털이다 그 뒤에 있는 몸통을 찾아야 한다는 음모론을 퍼뜨리는 가운데, 거대 음모세력 MBC가 정체를 드러내었다. 화제의 <100분 토론> 방송.
<100분 토론>의 스타는 누가 뭐래도 진중권이다. "결말을 위해 주인공이 하는 일이 없다. 마지막에 하느님이 나타나서 해결해 준다. 그럴 거면 왜 도망다니는지 알 수 없다.", "주인공이 하는 일이 없으면 연애라도 해야 하는데 연애도 안 한다. 둘이서 키스하는데, 왜 하는지 모르니까 쟤들이 촬영하다 감독 몰래 사귀었나 싶다.", "마지막에 둘이 헤어지는 장면에서 관객이 슬퍼서 울어야 되는데, 관객은 안 슬프니까 용이 대신 울고 지나간다.", "아무리 일류 배우 갖다 둬도 이런 대본으로는 연기를 할 수가 없다. 연기 할 게 없으니까 연기가 이상 한 거다.", "뭐라고 말을 못하게 한다. 비판하려면 직접 만들라고들 한다. 유치하게. 계란이 곯았는지 안 곯았는지 알기 위해서 직접 치킨이 돼서 알을 낳아봐야 하는 건 아니다.", "(내가 충무로를 옹호한다는데) 충무로하고 내 관계는 1주일에 한 번 거기서 지하철 갈아 타는 관계다.", "미국에서도 <무릎팍도사> 할 거냐?", "영화와 축구를 착각하지 마라. '디워 만세 심형래 만세'나 '자랑스러웠다'가 상대편 패널들이 쓴 글의 제목인데, '만세'나 '자랑스러웠다'는 미학적 술어가 아니다." 등의 자극적인 발언 외에도 그는 팬들이 그토록 원하던 '영화에 대한 깊이 있고 냉철한 분석'을 딱 부러지게 들려줬다.
"(1) 애국주의 (2) 민족주의 (3) 시장주의 (4) 인생극장" 코드가 감독이 인터뷰에서 하는 이야기다. 영화를 본 관객들의 평가도 이 네 가지다. 이렇게 지적하면 아니라고들 하지만, 관객들의 글에 나타나 있는 얘기 역시 헐리우드 진출이 자랑스럽고 아리랑에 감동했고 미국에 뒤지지 않는 CG기술을 봤고, 심형래 감독의 열정이 감동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열광하는 이 네 가지는 영화의 기본을 망쳐 놓고 있다. 즉, "(1)할리우드 진출이라는 애국주의를 위해 조선 남녀가 아무 이유 없이 LA에 환생했다. (2)민족주의를 위해 아무 상관 없는 LA에서 아리랑이 울려퍼진다. (3)화려한 CG를 과시하기 위해 여자 하나 잡는데 대군이 출동하고, 조선의 구식 군대와 환상적인 신무기가 맞붙고, 용은 이유 없이 자기 정체를 숨기고 변신한다. (4)마지막에 뜨는 "저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웃기는 사람입니다."하는 자막은 세계 영화 사상 코미디다. 빼야 한다."는 이야기. 거기에 미학자 답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인용하며 극예술의 기초 중 기초인 '플롯' 개념을 설명한 후 "이 영화에는 플롯이 없다." "비평하기에 민망한 영화다"라고 단언한다.
방송 종료 후 포털의 검색어 1위는 당연히 "진중권"이 되었다. 방송 중 계속해서 발칙한 조롱을 쏟아 내던 그 스스로가 이것을 의도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모습은 적어도 나에게는 힘없는 독립영화 감독이나 테러하지말고 붙으려면 나하고 붙자며 앞으로 나선 정의의 용사로 보인다.
"네티즌들이 이송희일 감독 조리돌림 한다는 소식을 듣고 꼭지가 돌았다. 몰려다니면서 행패 부리다가 허탈해진 거, 황우석 사건 때에 이미 한번 겪어보지 않았던가? 포유류라면 신체 속에 최소한 실수를 통한 학습능력 정도는 갖추고 있어야지. 타인에게 피해를 줘가며 왜 그런 못된 짓을 자꾸 반복하는지."
라고 말하는 그.
토론 후 폭주하는 비난이 기분나쁘지 않냐는 말에
"내가 기분 나쁠 게 뭐 있나. 자기들이 제풀에 화가 나서 씩씩거리는데. 제대로 된 논리를 가진 단 한 사람이 무섭지, 논리 없는 수십만의 감정 덩어리는 나한테 아무 인상도 못 준다. 감정 덩어리가 아무리 뜨겁게 달아올라도, 그런 거 갖고 눈 하나 깜짝할 사람이 아니다."
라고 대답하는 그.
그가 너무 멋있고 고마워서, 나는 도서관에서 두 번이나 빌려다 읽으면서도 살까 말까 망설이고 있던 <미학 오디세이>를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