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 걸 -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사이언스 걸스
호프 자렌 지음, 김희정 옮김 / 알마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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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재능이 넘치는 젊은이가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고 자신에게 걸맞는 부와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기까지의 고생담. 저자에게 그런 이야기를 무척 흥미진진하면서도 안타까우면서도 재미있게 표현할 만한 문학적 재능도 있는 덕분에, 몰입해서 즐겁게 읽었다. 

전면에 나서서 독자의 통속적인 흥미를 자극하는 것은 저자의 인생 이야기이지만, 그 뒤에서 깊이와 재미를 더해 주면서, 이 책을 품위 있는 읽을 거리로 만들어 주는 것은 나무의 인생? 수생(樹生)? 이야기였다.역시 학자는 전공 이야기를 할 때가 제일 빛이 난다. 

과학은 나에게 모든 것이 처음 추측하는 것보다 복잡하다는 것, 그리고 무엇을 발견하는 데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인생을 위한 레시피라는 것을 가르쳐줬다. 과학은 또 한때 벌어졌거나 존재했지만 이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주의 깊게 적어두는 것이야말로 망각에 대한 유일한 방어라는 것도 가르쳐줬다. - P49

병원에서 일하면서 배운 것은 이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만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픈 사람과 아프지 않은 사람. 아프지 않은 사람은 입을 다물고 도와야 한다. - P69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종족 보존을 위해 다섯 가지를 성취해야 한다. 성장하고, 번식하고, 재생하고, 자원을 비축하고, 자기방어를 하는 것. - P112

이상적인 현장 교육 실습은 약 일주일 정도의 기간 동안 날마다 새로운 토양을 연구 관찰한 다음 100마일 정도를 차로 이동해 다른 장소로 옮기는 프로그램이다. 5일 동안 500마일 정도를 이동해 다니고 나면 학생들이 지역에 따라 얼마나 다양한 토양이 존재하는지를 알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경험할 수 있다. 또한 토양 작업에 꼭 필요한 깊은 생각을 하면서도 동시에 약간 정신줄을 놓을 줄 아는 사고방식에도 노출이 된다. 현장실습이 끝날 즈음이면 학생들은 그 일과 사랑에 빠지거나 완전히 식상해져서, 전공과목을 선택하는 데 참고로 삼을 수 있다. - P159

국립과학재단은 순고생물학자들과 매년 30-40개 건을 계약한다. 각 계약의 평균 연구 기금은 16만5천달러다. (중략) 사실 16만5천달라도 막대한 돈이기는 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하지만 그 돈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다행히도 대학에서 내 월급을 1년 대부분의 기간 동안 지급한다. (수업이 없는 기간 동안, 즉 여름 내내 월급을 받는 교수는 흔치 않다.) 하지만 빌의 월급을 확보하는 일은 내게 달렸다.(중략) 과학 분야의 교수에게 무엇이 가장 걱정인지 물어보라. 길게 걸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녀는 당신을 빤히 바로보면서 한마디로 답할 것이다. "돈이오." - P178

30억 년 동안 진행된 진화 과정에서 출현한 생물 중 단 한 종의 생물만이 이 모든 과정을 뒤집어 지구를 훨씬 덜 푸른 곳으로 만들 능력을 지녔다. 도시화는 식물들이 억 년 전에 고생 끝에 푸르게 만들었던 곳에서 식물의 흔적을 없애고 땅을 다시 딱딱하고 황폐한 곳으로 되돌리고 있다. - P255

우리 모두 일하며 평생을 보내지만 끝까지 하는 일에 정말로 통달하지도, 끝내지도 못한다는 사실은 좀 비극적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 대신 우리의 목표는 세차게 흐르는 강물로 그가 던진 돌을 내가 딛고 서서 몸을 굽혀 바닥에서 또 하나의 돌을 집어서 좀더 멀리 던지고, 그 돌이 징검다리가 되어 신의 섭리에 의해 나와 인연이 있는 누군가가 내딛을 다음 발자국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 P272

눈 속에 사는 식물들에게 겨울은 여행이다. 식물은 우리처럼 공간을 이동하면서 여행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식물은 장소를 이동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사건을 하나하나 경험하고 견뎌내면서 시간을 통한 여행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겨울은 특히 긴 여행이다. 나무들은 오지를 긴 시간 여행하는 여행자에게 주어지는 조언과 똑같은 조언을 따른다. 짐을 단단히 싸라는 조언말이다. 지구상에 사는 대부분의 살아 있는 것에게 꼼짝 않고 한 자리에 서서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영하의 날씨 속에서 3개월을 견디라고 하는 것은 사형 선고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많은 종의 나무가 이런 일을 몇 억 년 이상 해내면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 P274

빌에게 그가 혼자가 아니라고, 그리고 절대 앞으로도 혼자가 아닐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 세상에는 그의 친구가 있다고, 그 친구들은 절대 빛이 바래거나 녹아 없어지지 않을, 피보다 더 진한 무엇인가로 그와 튼튼하게 묶여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빌이 알게 해주고 싶었다. 내가 숨을 쉬는 한 그가 배고프거나 춥거나 엄마 없는 아이처럼 살지는 않게 될 것이라는 점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 두 손이 다 있지 않아도, 주거지가 불명확해도, 폐가 깨끗하지 않아도, 사회적 예절이 부족해도, 사람들이 좋아하고 없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명랑한 성격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고.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된다 하더라도 내 첫 임무는 세상에 구덩이 하나를 파고 빌이 들어가서 괴팍한 자기 모습 그대로 안전하게 살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 될 것이다. - 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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