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
조지 오웰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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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오웰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내 생각에 이 사람의 날카로운 지성과 고결한 양심은 그가 받은 신사 교육의 산물이다. 또한 오웰이 경탄해 마지 않는 스페인 사람들의 관대함은 그가 다른 글에서 경멸적인 어조로 공격했던 가톨릭이라는 종교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시대의 흐름상 사회주의 진영으로 들어가서 글을 썼지만, 오웰은 그전이나 그후에 있었던, 당파적 이익을 위해 정직성을 포기하는 수많은 좌파 지식인들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사람이다. 믿고 읽어도 되는 작가 한 명을 찾아냈다는 것은 참 기쁜 일이다.



참호전에서는 다섯 가지가 중요하다. 땔감, 식량, 담배, 초, 그리고 적이다. 겨울의 사라고사 전선에서는 이 다섯 가지가 이런 순서별로 중요했다. 적이 가장 나중이었다. 밤에는 늘 기습 공격을 염두에 둘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불안했다. 그러나 그때를 제외하면 아무도 적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중략) 실제로 양군이 가장 관심을 쏟는 문제는 추위를 쫓는 것이었다. - P35

언어 장벽에도 불구하고 영국 병사들과 스페인 병사들이 늘 잘 지낸 것을 보면, 스페인 사람들의 성격을 잘 알 수 있다. 스페인 사람들 누구나 영어 표현 두 가지씩은 알고 있었다. 하나는 "오케이, 베이비."였고 또 하나는 바르셀로나의 창녀들이 영국인 선원들을 상대할 때 사용하는 말이었다. 아마 그 말을 이 글에 올린다 해도 식자공이 인쇄해 주지 않을 것이다. - P55

외국 자본은 스페인에 많은 투자를 했다. 예를 들어 바르셀로나 철도 회사에는 영국 자본 천만 파운드가 유입되었다. 그런데 카탈로니아에서는 노동조합이 모든 교통 수단을 접수했다. 혁명이 진행되면 영국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거나, 받아도 아주 조금밖에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만일 자본주의 공화국이 승리하면 외국의 투자 자본은 안전할 것이다. 따라서 혁명을 진압해야 했기 때문에, 상황을 무척 단순화하여 혁명 같은 것은 일어나지도 않은 듯이 호도했다. (중략) 스페인 밖에서는 이곳에 혁명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파악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반면 스페인 내부에서는 아무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 P72

철학적으로 공산주의와 무정부주의는 양극단이다. 실제적으로, 즉 목표로 하는 사회의 형태라는 점에서 둘 사이의 차이는 주로 강조점의 차이이다. 그러나 그 차이 때문에 절대 화해할 수가 없다. 공산주의자는 늘 중앙 집권과 효율을 강조한다. 무정부주의자는 자유와 평등을 강조한다. - P84

모든 전쟁이 똑같다. 병사들은 전투를 하고, 기자들은 소리를 지르고, 진정한 애국자라는 사람은 잠깐의 선전 여행을 제외하면 전선 참호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그래서 비행기가 전쟁의 조건을 바꾼다고 생각하면 위안이 된다. 다음에 큰 전쟁이 터질 때는 사상 유래가 없는 광경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몸에 총알 구멍이 난 후방의 애국자의 모습말이다. - P90

영국에서는 파견대 병사들에게 계속 위문품을 보냈지만, 한번도 도착한 적이 없었다. 음식, 옷, 담배 등이 든 위문품은 우체국에서 배달을 거부하거나 프랑스에서 압수했다. 이상하게도 영국에서 차나 비스킷 – 딱 한 번 이런 기념할 만한 일이 있었다 –을 아내에게 보낼 수 있었던 곳은 영국 육해군의 구내 매점이었다. 가엾은 육해군! 그들은 고상하게 자신의 의무를 이행했지만, 그 물건들이 프랑코 측의 바리케이드로 건너갔으면 더 좋아했을 것이다.
- P104

개인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러니까 나 자신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전선에서 보낸 처음 서너 달은 내가 당시 생각했던 것보다는 덜 무익했다. 그 시기는 내 인생에서 일종의 휴지 기간이었다. 이전에 살았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으며, 아마 앞으로 살게 될 어떤 삶과도 다를 것이다. 그 시기에 나는 다른 방식으로는 결코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배웠다. - P139

공산주의 매체의 보도들을 읽어가다 보면 그들이 사실에 무지한 대중을 의식적으로 겨냥하고 있으며, 편견을 심어주는 것 외에는 다른 목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P215

총알이 목을 관통했다는 것을 안 순간 나는 이제 끝장이라고 생각했다. (중략) 처음 떠올린 생각은, 다분히 관습적이게도, 아내였다. 두 번째 떠오른 것은 세상-생각해 보면 결국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세상이었다-을 떠나야만 한다는 사실에 대한 격렬한 분노였다. 나는 그 감정을 매우 생생하게 느낄 만한 여유가 있었다. 나는 이 터무니없는 불운에 격분했다.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이냐! 전투도 아니고 이 염병할 참호 한 귀퉁이에서 순간의 부주의 때문에 죽게 되다니! 나는 또 나를 쏜 사람 생각도 했다. 어떻게 생겼을까. 스페인 병사일까, 외국인 병사일까. 나를 맞히었다는 사실을 알까 등등. 그에 대해서는 분노를 느낄 수 없었다. 그가 파시스트였다면 나도 그를 죽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만일 그 순간에 그가 포로가 되어 내 앞에 끌려왔다면 잘 쏜 것을 축하해 주기만 했을 것이다. 물론 내가 정말로 죽어가고 있었다면 완전히 다른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 P240

스페인 사람들이 관대하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실 그들은 20세기에 속하지 않는 고귀한 종족이다. 이 점 때문에 스페인에서는 파시즘이라 해도 상대적으로 느슨하고 견딜 만한 형태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스페인 사람들 중에 현대 전체주의 국가가 요구하는 지독스러운 효율성과 일관성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 P285

내가 한 이야기가 사람들을 오도하지 않기 바란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도 완벽하게 진실하지도 않고 또 진실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확신하기 힘들며, 모두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당파적인 입장에서 글을 쓰게 된다. 혹시 앞에서 말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니 지금 말해 두겠다. 나의 당파적 태도, 사실에 대한 오류, 사건들의 한 귀퉁이만 보았기 때문에 생길 수밖에 없는 왜곡을 조심하라. 또한 스페인 전쟁의 이 시기를 다룬 다른 책을 읽을 때도 똑같이 조심하라. -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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