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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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의 기숙학교에 다니며 상대적으로 가난한 집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던 예민한 소년이 1차 대전 후의 반항적인 분위기 속에서 사회주의에 이끌리고, 20대에 식민지 경찰로 일하며 죄책감에 시달리다 사회주의 활동가로 변신하는 과정이 매우 설득력있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30대의 오웰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사회주의는 빈곤이나 파시즘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이 아니었다. 오웰의 결론과는 달리 모든 피착취인민의 이해가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고, 사회주의가 상식적인 良識을 항상 잘 대변하지도 않았다. 
오웰이 사회주의의 실체를 알기 위해서는 좀더 많은 경험이 필요했고, 한때 부랑자 생활에 뛰어들기도 했을 정도로 몸을 아끼지 않고 세상 속으로 뛰어드는 이 정직한 젊은이는, 이 책을 쓴 후에 이번에는 공산게릴라로서 스페인 내전에 참가하는 극한 체험을 향한다. <동물 농장>과 <1984>로 끝나는 그의 지적 방랑의 다음 단계인 <카탈로니아 찬가>도 이제 읽기 시작했다. 아주 즐겁다.^^


탄광의 여건이 지금보다 열악했던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젊을 때 땅 속에서 허리에 馬具같은 띠를 차고 두 다리를 사슬로 이은 채, 팔다리로 기고 광차를 끌며 일하던 할머니들이 아직도 더러 살아 있다. 글들은 임신한 상태로도 그런 일을 하곤 했다. 나는 심지어 지금도 만일 임신한 여자들이 땅속을 기어다니지 않으면 석탄을 얻을 수 없다고 한다면, 우리가 석탄 없이 살기보다는 그들에게 그런 일을 시키리라 생각한다. 어떤 육체노동이든 다 그렇다. 그것 덕분에 살면서도 우리는 그것의 존재를 망각한다.
- P48

Lissagaray의 “코뮌의 역사”에는 파리 코뮌이 진압된 뒤 있었던 총살을 묘사하는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진압군은 주모자들을 총살하고 있었는데, 누가 주모자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더 나은 계급 출신이 주모자일 것이라는 원칙에 따라 주모자를 색출하기 시작했다. 이때 한 장교가 줄지어 있는 포로들 앞을 지나가며 그럴듯해 보이는 유형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총살을 당한 사람 중에는 시계를 차고 있다는 이유로 불려나간 이도 있었고, “지적 얼굴의 소유자”여서 그런 경우도 있었다. 나는 지적인 얼굴의 소유자라는 이유로 죽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어떤 혁명이건 지도자는 대개 유식한 말을 쓸 줄 아는 사람들이었던 게 사실이다.
- P68

20-30년 전 내 어린 시절을 사로잡으며 활보하던, 가슴은 불룩한 통 같고 콧수염은 독수리 날개 같던 거한들을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내 생각엔 플랑드르 진창에 다 묻혀버린 것 같다. (중략) 사실 요즈음 키 180센티미터가 넘는 영국 청년은 대개 뼈에 가죽만 있고 다른 건 별로 없다. 영국인의 체격이 저하됐다면, 그 이유는 부분적으론 분명 세계대전이 영구에서 가장 건장한 남성 100만 명을 골라다가 그들이 채 번식하기 한참 전에 몰살시켜버렸다는 데 있다.
- P132

노동 계급이 보기에 어른이 다 되도록 학교에 남아 있다는 것은 한심하고 사내답지 못한 일이다. 집에 매주 1파운드는 갖다줘야 할 열여덟 살 다 큰 사나이가 우스꽝스러운 제복을 입고 학교에 나갈뿐더러 숙제를 안 했다고 지팡이로 얻어맞기도 하다니! 열여덟 살 노동 계급 청년이 지팡이로 얻어맞는 걸 자신에게 허락한다는 상상을 해보라! 학교에 있는 또래는 아직 어린애지만 그는 어른이다.
- P156

이론상으로는 정장 있는 법과 정찬 주문하는 법을 알았지만, 실제로는 번듯한 양복점이나 번듯한 음식점에 갈 형편이 도무지 아니었다. 이론상으로는 사냥하고 승마하는 법을 알았지만, 실제로는 말도 없고 사냥할 땅 한 뼘도 없었던 것이다. 이런 사정을 알아야 하급 상류 중산층이 인도에 매력을 느낀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군인이나 공직자로 그곳에 간 사람들은 돈벌이를 하러 간 게 아니었다. 돈은 군인이나 공직자가 버는 게 아니었다. 그들이 거기까지 간 것은 예컨대 인도에 가면 말도 싸고 사냥도 공짜로 하고 얼굴 까만 하인들도 얼마든지 둘 수 있어 특권층 노릇을 하기가 아주 쉽기 때문이었다.
- P166

그렇다면 ‘하층민’은 정말 고약한 냄새가 날까? 물론 대체로 그들이 상류층보다 깨끗하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들의 생활 여건으로 볼 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금처럼 개명한 시절에도 영국 주택 절반 이상에 욕실이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유럽에서 매일같이 온몸을 씻는 풍습은 아주 최근에 생겨난 것이며, 노동 계급은 대체로 부르주아보다 보수적이다. 하지만 영국인들은 눈에 띄게 점점 더 깨끗해지고 있으며, 앞으로 100년 뒷면 일본인만큼 깨끗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 P175

하지만 전쟁 당시와 그 직후 학교의 분위기는 참으로 묘했다. 영국은 그 이후나 그 전 한 세기 그 어느 때보다 혁명적인 분위기였던 것이다. (중략) 그것은 본질적으로 청년층의 노년층에 대한 반발이었으며 전쟁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전쟁 당시 청년층은 희생을 했으나, 노년층은 지금 시점에 봐도 끔찍할 정도로 비겁했다. (중략) 하루는 영문학 교사가 상식 시험 문제 비슷한 것을 냈는데, 그중 하나는 “살아 잇는 위인 중에 가장 위대한 10인을 적으시오”였다. 우리 반에서는 열여섯 명 중에 (한 반은 보통 열일곱 명이었다.) 열다섯 명이 레닌을 그중 하나로 꼽았다. 이게 러시아 혁명의 공포가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 아직도 생생하던 1920년에, 속물적이고 비싼 사립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다.
- P186

밖에서 보면 영국의 인도 지배는 호의적이며 필요하기까지 한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도 그런 부분이 있다. 그것은 프랑스의 모로코 지배와 독일의 보르네오 지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타국민을 통치할 때는 자국민을 통치할 때보다 관대한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지배 체제의 일원이 되면 그것을 정당화할 수 없는 압제로 인식하지 않는 게 불가능하다. 누구보다 낯 두꺼운 인도 거주 영국인이라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 길에서 ‘원주민’의 낯을 대할 때마다 자신이 극악무도한 침략자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 P195

번민 끝에 결국 얻은 결론은 모든 피압제자는 언제나 옳으며 모든 압제자는 언제나 그르다는 단순한 이론이었다. 잘못된 이론일지 모르나 압제자가 되어본 사람으로 얻을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결론이었다. 나는 내 자신이 단순히 제국주의에서 벗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인간의 모든 형태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느꼈다. 나는 스스로 완전히 밑바닥까지 내려가 억압받는 사람들 사이에 있고 싶어졌다. 그들 중 하나가 되어 그들 편에서 압제에 맞서고 싶어졌다. 모든 걸 혼자서만 생각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압제에 대한 증오심을 유난히 길게 끌고 갈 수 있었다.
- P200

사회주의의 ‘근본’ 취지에 공감하는 평범하고 수수한 사람은 어느 심각한 사회주의 정당에도 자기 같은 부류를 위한 자리는 없다는 인상을 받는다. 더 나쁜 것은 그가 사회주의란 실현될지도 모르지만 가능한 한 저지해야 하는 운명 같은 것이라는 냉소적인 결론을 내리도록 내몰린다는 점이다. (중략) 보통 사람들은 프롤레타리아의 독재에는 움찔하지 않을지 몰라도, 잘난 체하는 인간들의 독재에는 기꺼이 맞서 싸울 것이다.
- P245

이 세상을 기계화할 수 있는 한껏 기계화해보라. 그러면 사방 어디에도 당신이 일할 기회, 곧 살 기회를 박탈할 모종의 기계가 있을 것이다.
- P267

정리를 하자면 이렇다. 우리가 효과적인 사회주의 정당을 출범시키지 못한다면, 내가 이 책의 1부에서 기술한 여건(인용자주-탄광 노동자들의 고된 노동과 비참한 생활 수준)을 바로잡거나 영국을 파시즘에서 구할 가망은 없어진다는 것이다. (중략) 그런 정당은 우리가 일반인도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일 만한 목표를 제시할 때 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다른 무엇보다 지능적인 선전이 필요하다. (중략) 정의와 자유, 그리고 실업자들의 곤경에 대해 더 이야기하는 게 좋다. (중략) 필요한 것은 두 가지 사실을 대중의 의식 속에 각인하는 것뿐이다. 하나는 모든 피착취 인민의 이해 관계는 같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사회주의는 상식적인 良識과 조화를 이룬다는 점이다.
-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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