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어떤 말을 ‘합리적 인식’이 아니라 ‘자신의 정서’로 판단했다. 자신이 이해하면 선이고 불편하면 악이 되는 구조였다. 더러 소통대란을 겪을 때마다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우주의 섭리를 해명하는 일처럼 막막했다. 과연 나의 판단은 옳은 것인가 헷갈렸다.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 그렇다면 서로의 차이는 어떻게 인정하고 공존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나를 포함해서 사람은 바뀔 수 있을까 회의했다. 삶이 굳고 말이 엉킬 때마다 글을 썼다. (중략) 한 줄 한 줄 풀어내면서 내 생각이 꼬이는 부분이 어디인지, 불행하다면 왜 불행한지, 적어도 그 이유는 파악할 수 있었다. (중략) 어렴풋이 알아갔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고통이 견딜 만한 고통이 될 때까지 붙들고 늘어지는 일임을. 혼란스러운 현실에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이지, 덮어두거나 제거하는 일이 아님을 말이다. - P8
이제껏 내가 살아온 것과는 다르게 사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점에서 글쓰기 수업은 여행하고 참 비슷해요. 서로 호기심을 갖고 깊은 대화를 나누고 좋은 자극 주고받으세요. 내 안에 수다가 많으면 글쓰기에 유리하거든요. - P48
삶에 관대해질 것, 상황에 솔직해질 것, 묘사에 구체적일 것.
- P63
쓰기는 ‘읽으면서 쓰기’에 다름 아니다. 좋은 글에 대한 감각을 길러놓아야 내 글의 어디가 문제인지 짚어내고 고쳐 쓰며서 더 나은 글을 지향할 수 있다.
- P82
논술 담당 교사에게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중략) 한참 자라는 아이들에게 자소서가 아닌 자소설을 쓰게 하고, 자기 상품화의 격전장에 내보내기 위해 동원된 논리라는 것이 못마땅하긴 했지만, 자기만의 글을 쓰라는 원칙은 새겨들을 만했다.
- P124
"잃어버린 시간을 차자서"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문장은 길고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유럽권 작가는 거의가 만연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밀고 나가는 데 주저함이 없다. 오랜 시간 형성된 지적 풍토와 문화에서 형성된 문체가 아닐까.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꼬리가 긴 글에 어려움을 덜 느끼는 것이다.
- P152
글쓰기는 파편처럼 흩어진 정보와 감정에 일종의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주제’를 부각하는 행위다. (중략) 나의 경험의 의미는 미리 주어지지 않는다. 글 쓰는 과정에서 만들어가는 것이다.
- P159
작은 부분에 진실로 들어가는 단서가 있다.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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