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만 모르는 일본과 중국 - 32년간 한국과 중국을 지켜본 일본 외교관의 쓴소리
미치가미 히사시 지음, 윤현희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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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3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는 전후 50주년을 맞아 담화를 발표했다. 총리는 담화문에서 "우리나라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의해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들에게 큰 손해가 고통을 주었습니다. 나는 미래에 잘못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이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서 다시 한 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또 이 역사로 인한 내외의 모든 희생자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바칩니다"라고 밝혔다.
이후 일본의 역대 정권도 그 취지를 계승하고 있다. 2015년 아베 신조 총리 담화도 마찬가지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 또한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일본국 총리로서... 진심으로 사과와 반성을 표합니다’라는 사과의 편지를 보냈다. 위안부 문제는 ‘많은 여성들의 명예와 존엄성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라고도 썼다. 매우 기초적인 사실이다. 또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정부와 민간이 협조해 마련한 ‘아시아 여성기금’으로 할머니들에 대해 여러 사업을 벌였다.
이상 모두가 공개된 사실이고, 일본 정부가 누차 강조해온 바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이 한국인에게는 ‘불편한 진실’이란 말인가. 그렇더라도 사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과하지 않았다’, ‘민간인의 돈뿐이다’라는 말은 사실과 맞지 않는다. 일본 측이 전부터 알려왔고, 많은 일본인들이 알고 있는 이 사실에 대해 한국 전문가들은 알고 있을 텐데, 사람들에게 말하거나 글로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80-82
2014년 1월 24일 한국 외교부에서 발표한 성명이다.
"일본 정부가 이처럼 공허한 주장과 헛된 시도를 계속하는 것은 일본이 아직도 제국주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스스로 만천하에 증명하는 것이다."
‘제국주의의 망령’, ‘공허한 주장과 헛된 시도’. 이것이 주간지나 신문 혹은 북한의 선동 기사도 아닌 한국 정부의 공식 코멘트인 것에 경악한다. 별로 놀랍지 않다면 이것이 과연 괜찮은 것인지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 (중략) 일본에 있어서의 한국의 이미지는 ‘한류’ 붐으로 조성된 친근한 이미지에서 최근 4-5년 사이 급속히 악화되었다. 일본인을 화나게 하는 한국의 말과 행동이 연이어 나왔다. 한국에서 지칭하는 일본의 ‘양심파’, ‘시민파’를 포함해 많은, 아니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이 "한국은 대체 어떻게 된 거냐? 왜 그렇게 모르는 거냐?" 라고 분개하며, "한국은 합리적인 이야기를 할 수 없는 나라가 돼버렸다. 한국을 내버려 두자." 라고 말하고 있지만. 하지만, 그런 여론조차 ‘우경화’로 볼 뿐, 한국에는 제대로 소개, 분석되지 않는다. (중략) 이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측이 이 같은 발언, 일본이 ‘대체 이것은 어느 나라의 말인가?’ 라고 놀랄 만한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한 데 있다. 전후의 일본이 어떤 나라였는지에 대한 한국의 인식이 실제와 큰 차이가 있음을 보통 일본인들이 알게 되었다.

108-109
스시를 좋아한다고 해서 전후 일본의 정치, 외교의 핵심을 오해한 채 비난을 해도 좋다거나, 비난을 절반 정도 허용해 달라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중략) ‘식민지 지배를 반성하지 않는다’, ‘역사를 직시하지 않는다’ 등 중요한 핵심 사안에서는 일본인이 헉! 하고 놀랄 만한 엉뚱한 일본관을 유지하면서, ‘일본의 먹거리나 문화를 좋아한다’고 하면 솔직히 곤혹스럽다. 어려운 주문을 하는 것이 아니다. (중략) 한일의 현안을 ‘선과 악’으로 구분해 두고는, ‘한국의 주장이 정의’라는 식의 자세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의 생활 문화에 대한 호의가 실은 ‘자신은 무조건적인 반일이 아니다’라고 보는 구실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마치 일본에 대해서는 ‘균형 잡힌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심리적으로 자기 정당화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125-127
미국 역사학회상을 수상한 컬럼비아 대학의 캐롤 글럭 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 종료 50주년인 1995년에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략)
"기억은 개인의 기억이든 국가적인 기억이든 단순한 이야기를 원합니다. 어느 것이 ‘좋다, 나쁘다’라는 흑백 논리를 좋아합니다. (중략) 하지만 역사는 단순한 줄거리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역사는 복잡한 이야기, 맥락이 닿지 않는 듯한 사정이나 사실을 가능한 한 다양한 각도, 여러 가지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중략)
모두들 ‘단순하고 알기 쉬운 스토리’를 바라며, ‘자국은 백, 상대국은 흑’으로 보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가 아니다. 역사에 반하는 일이다. ‘역사’가 ‘민족의 기억’에 밀려나서는 안 된다. (중략) 중국의 역사 연구자 왕정(汪錚) 박사도 또한 ‘역사’와 ‘(역사적)기억’의 구별을 강조한다. (중략)
"기억(역사적 기억)은 역사상 실제로 무엇이 일어났는가에 관한 것이 아니고, 중국인이 역사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 왔는가, 그리고 정치적 지배층이 역사를 어떻게 만들어 왔는가 하는 것이다. 정치 지도자들에게 역사적 기억은 국민을 동원하고 대중적 지지를 결집하기 위한 특별한 수단이었다. 또한 일당독재를 용인하고 시민 권리의 제약을 정당화하는 최대의 근거이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국민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속에 역사상의 일들을 전략적으로 배합해 넣고 있다. 1992년부터 시행된 애국주의 교육 캠페인을 기점으로, 이전 마오쩌뚱 류의 ‘승자 이야기’는 ‘피해자로서의 중국’으로 핵심이 바뀌었다. 그것은 천안문 사건 이후 중국 공산당이 국민들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 압박을 느낀 결과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왕 박사는 내셔널리즘이 역사적 기억을 일깨우고 역사적 기억이 내셔널리즘을 부추기는 피드백 사이클을 중국이 단절시켜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의 역사인식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동양경제>, 2014)

200-201
2-3년 전, 정부의 중견 간부가 일본 특파원과의 간담회에서 빈번히 ‘여론의 부담’, ‘국민 정서’를 입에 올리며 특파원의 이해를 구한 적이 있었다. ‘위안부 문제로 화제가 된 특정 유력단체의 주장을 정부도 따를 수밖에 없다. 달리 판단하고 움직일 여지가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특파원들은 "공산주의 체제라면 모를까,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기 마련이고, 정부는 가장 바람직한 방향으로 조정을 추진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강한 비판을 받으며 악당으로 몰리기도 한다. 그것이 정부다. 조정을 하거나 땀을 흘리지 않는다면 정부의 역할을 포기하는 셈이다", "여론의 비판이나 압력으로 정부가 힘든 것은 일본이 한국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다. 그것도 모르는가? 일본과 중국을 구별 못 하나?"라며 어이없어 했다고 한다.

202
‘진정성이 없다’라는 표현은 어떤 의미에서는 정직한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진실)이 아니다’라는 데까지는 가지 않았으니까, ‘사실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정하고 평가하려니 심기가 불편해서 부정적인 감정만을 표시하겠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지만 그래서는 대화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화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일본 사회는 벌써 이 점을 알아차리고 있다.

230-231
중국 근대혁명의 아버지인 쑨원이 1924년 고베에서 가진 ‘대아시아주의’ 강연. 강연록을 보면 쑨원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러일전쟁(1904-1905년)이 끝날 무렵. 쑨원은 파리에서 귀국하던 중에 수에즈 운하를 통과했다. 그때 아라비아인들이 그에게 "당신은 일본인인가?"라고 물었다. 쑨원은 중국인이라고 대답했다. 아라비아인들은 "우리들은 지금 아주 기쁜 사실을 알았다. 부상당한 러시아 군대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해 유럽으로 가고 있다. 아시아 동방의 국가가 유럽 국가를 이겼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는 마치 우리나라가 전쟁에 이긴 것처럼 기뻐하고 있다"라고 쑨원에게 말했다.
강연에서 쑨원은 말했다. 그때부터 이집트의 독립운동이 시작되었고 페르시아, 터키, 아프가니스탄, 인도까지 독립운동에 불이 붙어, 그 후 20년간 활발히 전개되었다고. 일본이 러시아와 싸워 이긴 사실이 전 아시아 민족의 독립운동의 시발점이라고. 러일전쟁에 대해 한국에서 비판적인 시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서강 열강의 지배에 괴로워하는 세계의 많은 나라가 일본의 승리에 용기를 얻었다는 사실, 그 세계사적 의의는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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