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행성>을 읽고, 바로 <조이 이야기>로 들어왔다.

똑같은 시간의 똑같은 이야기를 조이의 눈으로 보는 외전격의 이야기인지라, 존 페리와 제인에 닥빙하고 있던 나는 꼬맹이 조이 이야기가 재미있을까 싶었다.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다. 아, 사랑스러운 조이.

조이 옆의 히코리 디코리 이야기는 샤바케를 떠올리게도 한다. 아 사랑스러운 샤바케

 

조이가 바바를 만나는 장면.

 

"아프탑 첸겔페트의 강아지들이 막 젖을 뗐다길래 그중 한 놈을 우리 집에 데려오면 어떨까 싶었단다. 네가 원한다면 키워도 돼. 네가 강아지를 좋아하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싫으면 언제든 돌려줄 수 있어."
"돌려주는 건 꿈도 꾸지 마."
내가 말하는 동안에도 강아지는 나를 핥느라 바빴다.
"그럼 됐구나.이놈은 네 책임이라는 걸 명심해. 네가 먹이고 운동시키고 돌봐줘야 하는 거야."
"그럴게."
아빠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중성화 수술도 네가 시키고 그 녀석 대학 등록금도 네가 마련해야 해."
"뭐라고?"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던 엄마가 한마디 했다.
"여보, 제발."
아빠가 내게 말했다.

"방금 한 말은 잊어버리렴. 하지만 그 녀석한테 이름은 지어줘야지."

나는 강아지를 앞으로 쑥 내밀고 유심히 살펴보았다. 강아지는 멀리서도 계속 나를 핥으려고 내 손에 붙잡힌 채 꼬무락거렸다.

 

이 뒷얘기가 짠하지만, 패스-

존 페리, 이 멋진노무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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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행성 샘터 외국소설선 6
존 스칼지 지음, 이수현 옮김 / 샘터사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하지만, 조금만 부러워, 나도 또 읽을꺼니깐.

 

르 귄의 헤인시리즈, 그 중에서도 상징적인 의미로 가득 차 있는 ( 리뷰 쓸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을 읽은 직후에 바로 <마지막 행성>을 읽기 시작한지라 정극에서 시트콤 넘어 온 것 같은 가벼움에 적응 못 하는 것도 잠시!

 

존 스칼지는 정말 재미있다. 나는 일반인(?)에게 장르소설을 거의 추천하지 않지만, 이 정도 재미라면,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인상적인 첫문장으로 시작한 <노인의 전쟁> ("75세 생일에 나는 두 가지 일을 했다. 아내의 무덤에 들렀고, 군에 입대했다." ) 은 재미있었고, <유령여단>은 재미에 철학까지 더 깊이 더했다. 그리고 <마지막 행성>은 재미와 철학에 다시 재미, 그리고 시리즈의 마지막이라는 아쉬움을 덧붙였다.

 

이 시리즈는 하인라인의 <스타쉽 트루퍼스>에서 그리 멀리 가지 않는다. 우주 전쟁 이야기이다. 지구도 구하고 가족도 구하고 우주도 구하는 '평범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농담 따먹기의 귀재인 주인공과 주변인물들 덕분에 시종 피식거리며 읽게 되지만, 스토리의 여운도 길다. 시리즈 각각의 캐릭터가 크게 벗어나지 않고, 1편에서 3편까지 오는데, 각각 다른 이야기와 분위기인 것도 흥미롭다.

 

전편들의 줄거리가 앞에 나오기는 하지만, 순서대로 읽는 것을 추천한다.

 

이제 외전격인 <조이 이야기>를 남겨두고 있다. 실은 <조이 이야기>를 먼저 읽다가 <마지막 행성>을 빼 놓은 것을 기억해내고, 다시 돌아왔다. 2편에 나왔던 조이가 가물가물했지마, 이제 <마지막 행성>까지 읽고 나니, <조이 이야기>를 더 생생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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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3-01-23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하이드님이 부러월 사람중의 하나네요.아직 1권인 노인의 전쟁만 읽었으니까요^^
 

좋은 일과 실망스러운 일이 번갈아 일어나고 있는 꽃집의 화요일,

작업대 위의 연보라 겹튤립이 예쁘게 벌어지고 있는건 좋은일, 문득 급 땡겨서 산 거미발 달린 고사리 후마타를 예쁘게 심어준 것도 좋은일.

 

 

 

 

 

 

 

잭 리처 신간이 나왔다. <악의 사슬>

<원샷>은 톰 크루즈 얼굴 표지로 바뀌었다. 얼굴은 좋은데, 톰 크루즈의 잭 리처는 인정할 수 없기때문에, 영화는 안 볼꺼다. 영화 본 분들 말로는 원작보다 나을 정도라는 이야기가 나올정도로 영화는 괜찮았나보더라.

 

 

 

 

 

 

 

 

 

 

  마쓰모토 세이초는 읽은게 많아서 딱히 이번 시리즈에 관심 두지 않았는데, 이렇게나 많이 나왔었네?!

 

이번에 나온건 <푸른 묘점>

이 시리즈 한 권도 안 사봤는데, <푸른 묘점>부터 시작해볼까 한다.

 

 

 

토마스 쿡 <붉은 낙엽>

 

미국추리작가협회상, 앤서니 상, 배리 상 수상에 빛나는 토머스 H. 쿡의 장편 추리소설. 유괴라는 범죄가 주요 모티브로 사용되지만, 추리보다는 가족과 삶의 진실을 찾는 여정에 집중하는 소설로써, 「뉴스위크」는 '인간의 진정한 동기에 대한 충격적이고 불온한 탐구'라고 극찬한 바 있으며, 「북리스트」 역시 '쿡이 완숙한 천재적 이야기꾼임을 보여주는 걸작'이라는 평가를 남겼다.

여덟 살 소녀 에이미가 집에서 실종된다. 용의자로 지목된 인물은 실종되기 전, 에이미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중학생 키이스. 아르바이트로 베이비시터 일을 하는 키이스는 사건이 벌어진 날 밤 에이미의 집에 머물렀던 것이다. 곧바로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고, 마을 사람들의 의혹과 편견 섞인 시선이 키이스에게 쏟아진다.

 

 

볼 생각 없었는데, 여기저기서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장난 아니라서, 봐야겠다. 1쇄는 책임진다는 피니스아프리카에 대표님 ( 이 책은 고려원북스) , 밤에 책 생각나서 잠이 안 온다는 모 미스터리 카페 회원님 등등등

 

 

새삼 책 고르는 재미를 느끼게 해준 터미널의 반디,

 

 

 

 

 

 

 

 

 

 

 

 

 

 

 

 

 

 

 

 

 

 

 

 

 

 

 

 

 

 

<이것은 물이다>는 졸업연설문이다. 얼마전 닐 게이먼의 필라델피아 예술학교의 졸업 연설을 의미있게 봤고, 칩키드 표지로 책으로도 나온다길래 신기해했는데, 이렇게도 나오나보다. 졸업연설문 장르라니, 특이하다. 두고두고 볼, 읽을 졸업연설문이라..

 

캐롤라인 냅의 책은 어디 보관함 저어어어어어 밑에 다 담아 있긴 한데, 이 책 훑어보니 재미있겠어서 다시 보관함 위로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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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13-01-22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정보 감사해요, 제가 이책을 언제 읽을지 몰라도 관심가져 보관함에 넣어두겠습니다,

moonnight 2013-01-22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에욧!!! 책이 훨씬 더 나은데요. 원 샷 말입니다. -_-;
저는, 친절한 톰 아저씨에겐 미안하지만, 재미없다. 이렇게 생각했는걸요. ㅠ_ㅠ (내가 이상한가 -_-a)좌우지간, 저역시 톰 크루즈의 잭 리처는 너무... 말을 말아요. 흑. ㅠ_ㅠ

붉은 낙엽은 신문서평에서 읽고 보관함에 담아두었는데 하이드님께서 믿음을 심어주시는군요. 사야겠어요. ^^

캐롤라인 냅 책은, 재미있어요. ^^ 드링킹 읽고 너무 좋아서 읽게 되었는데 실망시키지 않더군요. 막 절절함이 느껴져서, 안타까왔던 기억있어요.

사야할 책들이 너무 많아요. >.<
 

 

 

 

 

 

 

 

 

강상중의 <살아야 하는 이유>를 읽는다.

<고민하는 힘>과 <청춘을 읽는다>의 내용이 새록새록하다.

낯익은 베버와 소세키, 빅터 프랑클이 다가온다.

 

 

 

<살아야 하는 이유>의 서문을 읽으면, 이보다 더 처절한 서문이 있을 수 있을까 싶다. 그야말로 피를 토하는 것과 같은 서문이다.

 

"왜 태어난 것인가? 왜 살아야만 하는가? 왜 세계에는 행복한 자가 있고 불행한 자가 있는가? 인생에 의미는 있는가? 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가?:" 아들의 물음에는 이 세계를 찢을 만큼의 절박감이 감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들 어른은 그 물음에 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들도 어딘가에서 "행복을 발견한 최후의 사람들"(니체)의 심경으로 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들이 거듭나고 '회심'을 이루었다고 생각한 바로 그때, 아들은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것, 언제까지고 건강하기를,안녕"이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 슬픔에 우리는 얼마나 오열했던가. 그런데 아들이 죽고 몇 달이 지났을 때, 일본의 도호쿠 지방을 덮친 대지진이 일어났고 원전사고라는 미증유의 비참한 사태가 현실이 되었다.

 

 

이 책이 쓰인 배경에는 이런 슬픈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럼에도 삶에 대해 예라고 말하려네"라는 절명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토르 에밀 프랑클의 말을 버팀목 삼아 이 책을 썼다.

 

 

한국 사회는 학력이나 자산, 소득이나 지위의 극단적인 격차와 함께 행복과 불행의 차가 역력하여 과거 어느 때보다 사회 안에서 르상티망(원한)이 깊이 퍼져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사회에서는 살아가는 의미를 찾지 못해 번민하며 고민을 계속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혹은 비참하지는 않더라도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는 것에서 적극적인 의미를 발견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죽은 아들과 내가 합작한 기도의 말이다.

 

아주 작고 얇은 책이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최근에 읽었던 한병철의 <피로사회>가 오버랩되기도 한다.

  현시대를 살면서 현시대를 조망하기는 어렵다. 지식인들의 도움으로 지금 사회에 대해,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나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강상중의 '소세키'와 '베버' 는 근대를 살며 미래를 내다봤다. 그들이 그들의 저서와 작품 속에서 문제시 했던 것은 지금에 와서 정말로 문제가 되어 버렸다.

 

 

돌아보게 되는 계기는 맹신했던 '과학'과 개발해야 하는 것으로 보았던 '자연' 이었다. 아무 의심없이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에 젖어 불행한 다수와 행복한 극소수의 사회를 살면서, 사소한 행복을 위해 돌아봐야 하는 것들, 놓으면 안 되는 것들, 놓아야 하는 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준다.

 

빅터 프랑클이 가장 중요시 했던 인간의 가치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3가지는 창조, 경험, 그리고 '태도' 이다.

 

"인생이란 '인생쪽에서 던져오는 다양한 물음' 에 대해 '내가 하나하나 답해 가는 것' "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 예라고 말하겠네' 라는건, 유태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터 프랑클의 이야기이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그들은 삶에 대해 예라고 말하겠다고 노래했다.

 

창조와 경험에는 개인차가 있을 수 있으나 '태도'만은 누구라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도 언제인가는 가장 훌륭해질 수 있고, 그렇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인생에 대한 '태도' 라고.

 

 그러면서 예로 든 것은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긍정으로 넘쳐나고, 자기계발로 푸시하며, 앞만 보고 달려나가지 않는 사람들을 패배자 취급하는 사회가 옳은 것인가.

 

 

 

지금 우리의 시장경제는 어떤 의미에서는 만성적으로 실업을 만들어 냄으로써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좀 더 분명히 말하자면, 시장경제는 사회가 붕괴하지 않을 정도까지 실업률을 높이는 쪽이 부를 극대화한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자본주의는 그 정도로까지 노골적으로 변용하고 일탈해 버린 것입니다.

 

행복론보다는 비관론을 강조하고, 인생에 순응하는 것같은 태도는 어쩐지 좀 맞지 않아 보인다. 다시 한 번 읽어봐야 할 부분이다.

 

자신이 세계에 대해 요구해가는 것이 '창조'이고 자신을 넘어선 세계로부터의 요구에 대해 책임을 갖고 답해 가는 것이 '태도'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태도를 단순히 수동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세계를 자신의 힘이 미치지 않는 '초의미'의 존재로 의식하면서, 게다가 그 안에서 자신에게 요구되는 역할에 대해 하나하나 책임을 갖고 결단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태도'라는 것이고, 운명을 그저 시키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윌리엄 제임스의 영향을 받은 소세키, 윌리엄 제임스는 'born once'보다 'born twice'를 주장했다.

평온한 한번의 삶보다 치열하고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서 '거듭나기' 를 하는 것이 가치 있다고.

 

오전에 느즈막이 샵에 나오는데, 라디오에서 요조가 <매력만점 철거농성장> 이야기를 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말했다. 강기사가 물었다. '카타르시스'가 뭐니? 응, 그건 연극에서 나온 말인데, (머릿속의 시학 내용을 뒤적뒤적이며) 비극적이고 완전 불행하다가 그게 풀리면서 느끼는거야, 그러니깐, 복수초에서 그 여자가 열라게 당하잖아, 그러다가 복수하잖아, 그러면 그거 보면서 느끼는게 카타르시스인거지. 그냥 계속 평온하고 행복하면 모르는데, 죽도록 고생하다가 찾은 평온하고 행복이 카타르시스야.

 

라고 말해주었는데, 지금 글 쓰다 보니 다시 생각났다.

 

힘든 고비를 겪고 느끼는 감정의 고양, 그것이 더 생생하고, 가치 있고, 인간다운 것인 것일까? 뭉뚱그려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지금의 나는 twice born, 거듭나기.의 중요성을 알 것 같다.

 

그러니깐, 다시 강상중의 '살아야 하는 이유'로 돌아가면, 그러니깐, 죽지 말고 살아. 라는 것. 인생의 물음에 결단을 내리며 응답하며 삶에 대해 예라고 말하는 것.

 

이것은 힐링북은 아니다. 어떤 책이든지간에 독서로 치유될 수 있겠지만, 요즘 많이 나오는 '힐링북' 카테고리의 책은 아니란 이야기. ( 그 카테고리에 넣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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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3-01-20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신문에서 본건데 고통은 극복하는게 아니라 견디는 거라고 한 정호승시인 말씀이 생각나요. 서문이 너무 ㅜㅜ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생각과는 다른 책이었네요.

하이드 2013-01-20 20:34   좋아요 0 | URL
이전 책들도 굉장히 인상깊게 읽었는데, '살아야 하는 이유'는 뭐랄까, 책을 쓰는 것이 아니라 저자가 삶을 새기는 것 같은 절절한 책이에요.
 
밥벌이의 지겨움 - 김훈 世設, 두 번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모든 밥에는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 밥을 삼킬 때 우리는 낚싯바늘을 함께 삼킨다. 그래서 아가미가 꿰어져서 밥쪽으로 끌려간다. 저쪽 물가에 낚싯대를 들고 앉아서 나를 건져올리는 자는 대체 누구인가. 그 자가 바로 나다. 이러니 빼도 박도 못하고 오도가도 못한다. 밥쪽으로 끌려아야만 또다시 밥을 벌 수가 있다.

밥벌이가 지겹다는 말은 처음의 공감의 단계를 넘어가, 이제는 그마저 너무 흔해져버려 '그래서 어쩌라구' 하는 심정이 되어버린다. 아주 오래간만에 읽는 김훈의 문장은 어떻게 끄적이건간에, 촘촘하게 날이 서있다. 세상에 예민한 작가의 글은 깜냥 안 되는 독자를 피곤하게 한다.

 

연필과 지우개와 종이를 놀려 밥벌이를 하는 작가는 몸에 대한 자연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인지, 인간이라면 가져야할 자연스러운 동경인지 모르겠다.

 

전화기 너머, 모니터 너머의 누군가와 숫자와 돈으로 밥벌이를 하던 나는 몸을 쓰는 일을 하는 지금, 몸 쓰는 일의 정직함과 보람에 대해 뿌듯하게 느끼고, 감탄하고 있기에, 후자인걸로 하고 싶다.

 

자장면을 배달하던 소년도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졌고, 자장면 배달통이 깨어져 내용물이 쏟아져 ㅏ왔다. 우동과 짬뽕과 군만두가 아스팔트에 쏟아졌고 나무젓가락이 흩어졌다. 짬뽕 국물이 피와 범벅이 되어 아스팔트에 늘어 붙었다. 음식을 주문한 사람은 아마도 배달이 너무 늦는다고 식당에 전화를 했을 것이다.

 

일상은 아니지만, 매일 어디에선가 일어나고 있는 주변의 일도 김훈의 문장을 거치면, 불편할 정도로 생생해진다.

김훈은 '밥벌이의 지겨움'이 나오던 그 때처럼 지금도 연필과 지우개와 종이를 쓰고 있을까? '핸드폰'이라는 낚싯바늘을 삼켰지만, 여전히 자동차를 싫어할까? 그럴것 같다.

 

자전거와 바퀴 이야기는 지루했지만, 꽃과 풀과 물고기와 새 이야기는 다시 눈여겨 봤다.

 

꽃은 꽃 한송이로서 아름답고 자족한 세계를 이룬다. 꽃은 식물의 성적인 완성이며, 존재의 절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꽃은 스스로 자지러진다.꽃에는 그리움이 없다. 꽃은 스스로 아무것도 그리워하지 않으면서 그 꽃을 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앞에 보이는 대상을 그리워하게 한다.

 

몸과 자연에 몰두하는 작가는 노동을 싫어한다고 말한다.

 

나는 노동을 싫어한다. 불가피해서 한다. 노는게 신성하다. 노동엔 인간을 파괴하는 요소가 있다. 그러나 이 사회는 노동에 의해 구성돼 있다. 나는 평생 노동을 했다. 노동을 하면 인간이 깨진다는거 놀아보면 안다. 나는 일할 때도 있었고 놀 때도 있었지만 놀 때 인간이 온전해지고 깊어지는 걸 느꼈다. 기자를 보면 기자같고, 검사를 보면 검사같이 보이는 자들은 노동 때문에 망가진 거다. 뭘 해먹고 사는지 감이 안 와야 그 인간이 온전한 인간이다.

 

좀 다른 얘기긴 한데, 예술하는 사람들이 독특한건, 독특하지 않게 굴어야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대부분의 우리는 밥벌이를 위해 평범한데 말이다.

 

김훈의 글은 독자를 밀어붙이는 것 같다. 나같은 독자는 밀어 붙이는대로 밀릴 수 밖에 없는 무력한 기분이다.

'밥벌이의 지겨움'의 마지막 장을 덮고, 바로 읽기 시작한 책이 강상중의 '살아야 하는 이유' 였다. 강상중, 소세키, 빅터 프랑클, 의 이야기를 읽으니, 김훈의 글과 태도가 더욱 억세게 느껴진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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