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하이드의 100권' 2차를 하고 있는데, (1차와는 상당히 다른 라인업) 100권 추리기가 쉽지가 않아서 하다하다 지쳐서 잔머리 굴리는 중임.
이 페이퍼의 포인트는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그런 책들. 마구 읽히고 싶은 그런 책들.

기시 유스케의 <신세계에서>
사고 난 후 이벤트 선물만 쏠랑 받고, 반년여를 묵혀 두었던 책. 추리소설은 신간 사면 바로바로 읽어야 맛인데 말이다. 이래저래 최근에 나온 <13번째 인격>까지 번역된 기시 유스케의 책은 다 읽었다. 가장 좋아하는 책은 <천사의 속삭임>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기시 유스케는 너무 흔한 소재를 가지고 글을 쓰기에 저평가 받는것 같다. 추천 할 때도 기시유스케 팬으로서 그런점에 피해의식 아닌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재밌다' 뒤에 '그게 사실 소재는 막 헐리우드 영화같고 그래도 생각할 거리가 많거든, 자료 조사도 많이 해서 읽을거리도 많고,흔한 소재로 이 사람같이 호러를 잘 주물럭거려서 다이렉트로 독자의 심장에 다가가 쫄깃하게 하는 작가가 많지 않거든...' 주절주절 사족을 달곤 한다. 호러물을 전혀 좋아하지 않지만, 어쩌다보니 나와 궁합이 맞아버린 작가. 기시 유스케.
<신세계에서>는 믿을만한 라인업을 내주고 있는 '미도리의 책장' 시리즈이다.
작품 속의 세계는 어느 시대인지, 어디가 배경인지 알 수 없는 '신세계'이다. 모험소설, 성장소설, 미스테리, 스릴러인 이야기속의 인간들은 모두 초능력이 있다. 어릴 때부터 개발하고, 학습한다. 그런 인간들을 '신'으로 받드는 요괴쥐들을 비롯한 여러 기발한 생물들이 나온다. 개성 강한 소년 소녀들의 모험이 1부라면, 그 소년 소녀들이 자라서 겪게 되는 일이 클라이막스격이다.
망한 미래의 어느 시점. 그것은 인간들이 생각한 '신세계'인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생각거리들을 남겨준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
마르케스의 책은 그래도 한번씩은 다 읽었는데, 요즘 들어 자꾸 생각나는 책은<콜레라의 사랑>도 아니고, <백년동안의 고독>도 아닌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이다. 짧고 단순한 이야기인데, 실제 마르케스가 들었던 기사에서 나온 이 이야기는 작은 마을이 배경이고, 등장인물도 몇 안되고, 결말을 제외한 모든 부분은 마르케스의 다른 이야기들과는 틀리게 무려 르포형식에 가깝기까지 한데, 결말의 마르케스 특유의 마술적 리얼리즘은 짧고 굵고, 이 책을 읽기 전, 읽는 동안, 읽고 난 후의 이런저런 잡다한 인간사, 세상사의 은유로써 툭툭 튀어나와 계속 생각나는 책이다.
덴도 신 <대유괴>
우리나라 영화로도 나왔고 (전혀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가 아니였지만;)
책 내용 결말 다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재미있고, 감동적이었다.
이 책은 무려 70년대 후반에 나온 책이고, 주간문춘의 20세기 최고의 책 1위로 뽑히기도 했다.
약간 동화같기도 하고, 가족드라마 같기도 한데, 일단은 미스테리다.
범인도 인질도 경찰도 미디어도 인질 가족도 마을사람도 하나같이 다 따뜻한 인물들이어서 읽는 내내 기분 좋았던 책이다.

차이나 미에빌 <퍼디도 스트리트 정거장>
차이나 미에빌의 책이 더 나온다고 하는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나.
만만찮은 양의 만만찮은 세계관과 만만찮은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다. 처음 한 백쪽은 전체적인 이미지 잡기가 버거웠지만, 읽을 수록 손에 땀을 쥐게 하는(아 이런 진부한 표현^^;) 책이다. 뭐라 줄거리 설명하기도 버거운 SF 소설 괴짜 돼지 과학자와 그의 여자친구인 곤충족. 그 외의 여러 종족들. 부패한 공권력에 반항하고 지를 구하는..은 아니지만, 그 비슷한 주인공네들의 사투. 가장 공포스러운 존재. 의 묘사는 탁월했고, 그 와중에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미묘한 발란스. 무척 기대되는 작가를 발견했을때의 기쁨!

존 스타인백 <에덴의 동쪽>
아- 재밌다. 영화는 소설의 십분지 일도 안된다. 제임스 딘? 이 책에서는 조연일뿐.
3대 두 가족에 걸친 대서사시이고, 가볍지 않은 주제를 남기면서 고리타분하지 않고 재미있기까지 하다. 매력적인 등장인물들, 천사같은 매력을 지닌 등장인물들과 사탄의 매력을 지닌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사이코패스 여주인공에 동양의 신비한 하인까지 나오는 굉장히 박력있는 캐릭터들이 (가장 오래된책, 성서에서 따온 모티브와 오락소설에 나올법한 클리쉐까지 골고루) 있다. 천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지만, 제목만 알던 책을 읽고, 우와- 재미있었다. 고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의 뿌듯함이란!

마틴 에이미스 <머니>
사실 이 페이퍼는 이 책을 이야기하기 위한 페이퍼인지도 모르겠다.
자기파괴적인 주인공인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섹시하고, 퍼니하다. 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저자의 능력일 것이다. 등장하는 인물들도 하나같이 괴상하다. 초섹시한 한물 갈랑말랑한 여자친구 셀리나, 각기 다른 독특한 개성의 영화배우들, 찌질한 친구들, 천상의 여인과 같은 마티나, 레즈비언 각본가, 그리고 런던에서 학생처럼 꾸미고 사는 작가 마틴 에이미스!까지. 저자는 공들여 그들 각각의 뭔가 하나 심하게 모자라는듯한 인생을 묘사한다. 리뷰中 http://blog.aladin.co.kr/misshide/2540514
분권이 아쉽고, 스리슬쩍 나오자마자 들어간 것 같은데, 정말 기발한 책이다. 책 속의 문장들을 체로 걸러 허접한 것을 걸러낸다면, 머니의 문장들을 걸러내면 국물도 안 빠질 것 같은 밀도 높은 소설.
새러 그루언 <코끼리에게 물을>
코끼리가 나오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코끼리가 나오는 이야기들만 모은 은밀한 카테고리가 있을 정도이다.
제목에 나오는 코끼리보다는 '코끼리에게 물을' 이라는 제목이 더 키워드다. 이 소설을 코끼리 소설로 부르긴 뭐하고, 서커스 소설.. 정도로 해두자. (서커스 소설도 모으고 싶은 충동이 있는데, 아직 자료가 많이 부족)
한 순간의 선택, 그것의 또 다른 이름은 아마 '운명'이리라. 으로 서커스 기차에 올라타게 된 주인공.
젊은 시절의 이야기와 아흔세살이라는 나이를 보내는 요양원에서의 이야기가 요리조리 겹치다가 마지막에 감동적으로 합쳐진다. 이야기도 기묘하고 아름답지만, 무엇보다도 1930년대 대공황시절 미국대륙을 횡단하던 서커스 기차에 대한 자료들( 도저히 믿기지 않은 일화들)을 보는 재미가 있다. 서커스. 현실의 딱딱하고 마른 땅에서 잠시 두 발을 떼고 붕붕 날아오를 수 있는 시간이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들, 저자의 서커스에 대한 사랑이 물씬 묻어나는 조사에 의한 디테일한 일화들.이 재미나다.
존 카첸바크 <어느 미친사내의 고백>
이 책 참 재미난데, 표지도 안 땡기고, 사고 나서도 원가 두껍고 글씨 자잔해서 손이 쉬이 안갔더랬다. 막상 읽기 시작하니 단숨에 - 이 작가의 <애널리스트>는 좀 실망스러웠지만, <어느 미친 사내의 고백>은 다시 생각해도 재미나다. 주인공이 미친사내, 전직 소방수, 강간당한 기억이 있는 여검사다. 배경은 정신병원이고. 주인공 라인업만으로도 흥미진진하지 말이다. 라인업만 흥미진진한 것이 아니다. 본게임은 더욱 스릴 넘친다. 존 카첸바크를 '심리스릴러의 거장' 이라고 하는데, 확실히 심리를 따라가는 말의 향연 또한 볼거리, 읽을거리이다. 굉장히 영화적인 클라이막스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미야베 미유키 <외딴집>
미미여사의 책을 많이 읽는데 (그니깐 번역된 책은 다 읽는데) 뭐랄까, 지금에 와서는 그녀의 '선함'이 좀 질린다. 좀 깔것도 있고, 거칠고 투박하더라도 생생한 것이 좋은데, 요코야마 히데오와는 또 다른 의미의 '착한 미스테리'를 쓰는 작가이다. 아니 '착하다' 는 말보다는 '공평하다' 는 말이 더 어울리겠다. '공평함'만은 그녀가 아무리 다양한 장르를 섭렵한다고 해도, 공통되는 키워드가 아닌가 싶다. '공평함' '객관성' '관찰' 뭐 이런것들.. 범작도 기본 이상은 하는 미미여사이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스터리들도 미미여사의 작품들인데 이 책 <외딴집>은 다른 책들에 비해 '외딴책'이지 않나 싶다. 처음에는 시대물이라는 것이 독특했지만, <외딴집>을 제외하고는 그닥 미야베 미유키의 장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외딴집>만은 생생하고, 처연한 것이. 그녀의 장점은 장점대로 살리면서 삶과 죽음의 무심함- 그 시대에 맞는-을 잘 그려낸듯하다. 다른 책보다도 다시 읽어도 재미난 책.

조이스 캐롤 오츠 <사토장이의 딸들>
처음 접한 JCO의 책이다. 처음부터 장난이 아니였음! 첫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철저하게 계산되어 있다. 드라마틱하고, 소설같고(어이,) 매력적인 여 주인공(사토장이gravedigger의 딸이다.) 이 나온다. 나찌를 피해 이민 온 독일계 가족. 믿바닥 중의 믿바닥인 무덤지기로 약속의 땅에서의 삶을 시작하지만, 녹녹치가 않다. 아버지에게, 남편에게 정신적 신체적 폭력을 당하는 여주인공이 새 삶을 시작하기까지. 물론 그 여주인공은 너무나 소설 속의 여주인공같다.아름답고, 똑똑하고, 재치있고, 씩씩하고. 보면서 속이 터지는 여주인공이 아니라, 속이 시원한 그런 캐릭터다. '소설을 읽는 맛'을 느끼게 해주는 소설 이 책 후에 읽은 실험적인 <블랙워터>에서는 갸우뚱, 많은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한 <멀베이니 가족>에서는 약간의 실망을 느꼈지만, <사토장이의 딸>은 여전히 좋다. '
여기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