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 지음, 최인자 옮김, 제인 오스틴 / 해냄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꽤나 웃기고 흥미로운 독서였다. 페이지가 팔랑팔랑 넘어가진 않지만,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제대로 읽은 사람이라면, 첫페이지부터 마지막페이지까지 빵빵 터질 것이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기 위해서 늦게나마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읽는다면 ... 좋은 독서입니다!  

오만과 편견에서의 등장인물은 물론이고, 대사와 스토리까지 그대로 따왔다. 하나 사소한 장치를 더했는데, 그건 바로, 좀비.다. 진지한 패러디 소설로 읽을지, 아님, 총알탄 사나이마냥 웃기는 소설로 읽을지는 독자에 달렸다. 나로 말하면, 둘 다다. 거기에 더해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읽을 때 답답했던 여주인공의 몇몇 행태에 대해 이 소설에서는 속 후련한 대사들도 많이 나온다. 거만하기 짝이 없는 다아시경을 처음 본 엘리자베스는 '거만하기 짝이 없는 이 남자가 밖으로 나가면 뒤따라가 목을 따버릴' 작정이고, 리디아를 납치한 위컴에 대해 메리와 키티는 목을 따버리겠다며 '피의 맹세'를 한다.  

다아시와 빙리는 내 기준에 여전히 밍숭맹숭하지만,  원작에서 가장 좋아했던 베넷경의 시니컬함은 좀비 소설 버전으로 잘 살아 있고, 엘리자베스와 자매들, 엘리자베스의 절친이자 콜린스와 결혼하게 되는 샬롯의 경우에는 꽤나 새로운 모습들을 읽을 수 있다. 이와 같은 코드에 상당히 익숙하다고 자부하는 나조차도 흠칫할 정도의 표현들이 종종 나오고 ('배를 갈라 창자를 꺼내 목을 졸라 버리는'... 것정도로는 끄떡없었지만 아주 가끔은 더한 표현들도 나온다.), 일본에 가서 무술을 배웠네, 중국의 샤오시엔 사부인가뭔가( 딤섬이름 같다;) 한테 소림사 하드트레이닝을 능가하는 훈련을 받고 살아남은 자매.라는 설정은 이 소설을 B급 소설로 부르기에도 부족하지 않다.    

가끔 영문소설에서 보곤하던 '리딩 가이드'가 책 뒤에 나와있다. '리딩 가이드' 에 대한 호오는 아직까지 불분명한데, 책 읽고, 책친구와 토론하는 정도로 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리딩 가이드'의 질문들은 원작 <오만과 편견>에 대입해도 될만한 질문들도 꽤 있다. 

재미있었던 질문중에  '일부 비평가들은 좀비란 존재가 결혼- 끊임없이 당신의 생명력을 빨아먹으면서도 당장 죽지는 않는 영원한 저주로서의- 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당신은 이 견해에 동의하는가? 아니면 좀비의 상징적 의미에 대한 또 다른 견해가 있는가?' 라는 질문이 있는데, 확실히 이 소설에서 '좀비' '전사' 는 작가가 패러디하고자 하는 어떤 '추하고 결코 죽지 않는 좀비와 같은 개념' 을 이야기한다는 느낌이다. '돈' 인 것 같기도 하고, '여자를 속박하는 여러 굴레'인 것 같기도 했는데, '결혼' 으로 대입해도 꽤 맞는 얘기인 듯하다.  

이 외에도 리딩가이드 치고는 꽤 웃긴 질문들이 많아서,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하는 책이었다.  

기발하고 대담한 기획, 쇼킹한 표지, B급 과 고전을 오가는 문장의 미묘- 한 균형. 그저 웃자고 하는 얘기는 아닌 것 같은 패러디의 심오함. 무척 궁금했던 책인데, 꽤나 예상밖이다. 소설이 계절을 탄다면, 역시나 이 계절에 어울리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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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8-17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리뷰를 보니 넘 재미있을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