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시대의 행복은 불행인가 행복인가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의 저자 후루이치 노시토리가 젊은이들이 행복한 이유로 든 두가지 이유는 첫째로 '미래가 더 나아질 것이라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구소련에 이런 농담 아닌 농담이 있었다고 한다. 


"안녕, 오늘 하루는 어때?" 

"응, 내일 보다는 나아." 


섬찟한 이야기이다. 지금의 우리 이야기이고,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의 절망의 나라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두번째로 든 것이 '컨서머터리'다. 자기 충족적. 지금, 여기 동료들과 함께 어울려 여유롭게 지금의 생활을 즐기는 것.   

마치 한마을에 사는 주민들처럼 '동료'가 모인 '작은 세게'에서 일상을 보내는 젊은이들, 이것이야말로 오늘날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행복한 이유의 본질이다. 라고. 그러면서 예로 든 것이 바로 '원피스'다. 


판매 부수 누계가 2억 부를 돌파한 현대판 성서 '원피스' 에 흐르는 사고방식은 '동료를 위해서'로 요약될 수 있다. '원피스'의 인물들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동료들에 대한 헌신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고 있다 뚜렷한 적도 없고, 절대적인 악도 없는 그 세계에서, 루피(19세, 후샤 마을) 일행은 끝을 알 수없는'동료 찾기를 이어간다. 



여기서 루피(19세, 후샤 마을) 이렇게 괄호친거 진짜 웃기다. 요즘 젊은이들이 행복한 이유를 원피스의 '동료찾기'에 비유하다니. 기발하고 적절하다. 여기서 동료는 친구하고는 좀 다른 것 같다. 말그대로 '동료' 다. 같은 공간에서 작업을 하는 나와 작업실 식구들, 맨션의 각 방에 들어가 각자의 작업과 가게를 하는연남동 어쩌다 가게의 동료들, 마르쉐 같이 공동장터에 나가 마주하는 서로 공감하고 인정하는 비전이 있는 동료, 지인들. 인 것 같다. 알라딘 서재에서, 북플에서 만나는 책 좋아하며 책 이야기 하는 이들도 '동료' 이고, 동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이야기하는 것도 '동료'라고 생각한다. 온오프를 가리지 않고, 그렇게 좋아하는 것들,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중심으로 모여든 이들이 '동료'다. 친구랑은 좀 틀린 느낌이지?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웨옹 2015-01-10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재미있을 거 같아요!

애플망치 2015-01-10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생때 배웠던 가치관과 레알리 다른 현실에 어리둥절하며 시행착오 겪는 많은 이들을 위하여.....

꽃핑키 2015-01-10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 내사랑 쵸파!! ㅋㅋㅋ 애니로만 늘 챙겨보고 있는 원피스를 이렇게 책으로 그것도 하이드님 서재에서 보니 정말 너무 반가워요 ㅋㅋㅋ 루피 19세인지 오늘 첨 알았어요 ㅋㅋㅋㅋ
 

알라딘 서재에서 신간을 뒤적거리다가 웃기는 일이 있었는데, 그냥 혼자 한심해하며 넘어가면 되는 일이긴 하지만, 2연속으로 그 웃기는 일이 일어나는 바람에 다시는 이 두 작가들과 관련해 이와 같은 일을 겪지 않도록 이 치욕을 기록해두기로 한다. 


스튜어트 맥브라이드의 로건 맥레이 시리즈 2권 '다잉라이트'가 나왔다. 


당장 읽어보고 싶지만, 시리즈 2권이니 1권을 먼저 읽어야해. 라는 마음으로. 분명 어디엔가 있을 '콜드 그래닛'을 며칠째 찾고 있었다.


 '신간 중'다잉 라이트'가 눈에 들어옴 - 콜드 그래닛 찾음 - 찾다가 다른재미있는 책 발견함 - 읽음' 만 주구장창 반복하다가.. 심지어... 저 표지가 무서워서 내가 바로 안 읽어서 이 고생이구나 한탄까지 섞었는데,  오늘은 결국, 그냥 1권 책소개랑  리뷰만 대충 읽고 '다잉 라이트'부터 읽어야지. '콜드 그래닛'은 도저히 못 찾겠구나. 


하다가 발견한 ..뙇. ..뭐겠어요. 리뷰죠.내가 쓴.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재미나게 봤지만, 재미난만큼 아쉬움도 많은 시리즈의 1편이다.

한 줄이 나와도 모든 캐릭터가 현실에 있을 것 같게 만드는 작가가 있는가하면, 한 권 내내 나와도 긴가민가 하는 캐릭터를 넣는 작가도 있다.

 

그런면에서 이야기의 전개나 결말도 재미나고, 로건 맥레이의 매력도 '더 보고 싶음' 단계까지는 갔으며, 젤리를 주워먹는 인치 경위라던가 '급소차기'라는 별명을 가진 왓슨 순경은 인상적이었으나, 더 망할놈일 수 있었던 밀러나 로건의 옛애인 이소벨, 특히 이소벨은 20%쯤 부족한 평면적인 캐릭터이지 않았나 싶다. 한권 내내 나왔는데;;

 

시리즈물의 미덕은 분위기와 에피 하나하나가 아닌 시리즈를 관통하는 이야기의 전개, 그리고, 캐릭터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시리즈의 1편인 것을 감안할때, 분위기와 메인 캐릭터는 좋았다. 다음 시리즈가 분명 기대되는 작품이다. (분량을 생각할 때 더욱 더!) 곁캐릭터가 심히 아쉽지만, 그것을 상쇄하는 재미가 없지 않다.


다음 시리즈가 분명 기대된다고 해 놓고, 다음 시리즈 나왔는데, 왜 읽지를 못하고, 다 읽고, 리뷰까지 쓰며 기대된다고 했던 전작만 찾어 ㅜㅜ


이런 바보탱이. 한게 바로 엊그제인데, 오늘 또 
















'대낮의 사각' 나오자마자 읽을까 말까 하다가 주문하려고 보니 다카기 아키미쓰 걸작선 2. 라고 나와 있다. 무슨무슨 걸작선 하면 모를리가 없는데, 누군교? 하며 눌러보니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가 나온다. 아, 이 책? 별로 재미 없었는데, 하며 '대낮의 사각'도 잠시 더 보관함에 넣어둔다. 그리고 오늘 갑자기  이런 종류의 회사물이 읽고 싶어져 이 책을 기억해내고 다시 소환해서 보는데,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가 많이 재미없었던가? 하면서 리뷰들 보다보니, 또 내 리뷰가 짠 하고 나온다. 


리뷰 제목은 무려 '다카기 아키미쓰의 이름을 기억합시다!' 이고 


<문신 살인 사건>은 집 어딘가에 있으니 찾아서 읽어야 겠고, 다카기 아키미쓰의 이름을 기억해 두었다. 다카기 아키미쓰 걸작선 2가 나오기를 열렬히 기다려야겠다.


라고 씨부려 놨다. 


데뷔작이던,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이건 엄청 인상 깊어 다음 작품 나오면 첫번째 책 때문에 실망할까 망설이게 될 정도인 첫번째 작품도 있다. 롭 스미스라던가 길리언 폴린이라던가. 차일드 44나 나를 찾아줘.같은 작품을 잊기는 어렵기도 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재미있게 읽고, 기대하고 기다린다! 라고 써 놓았던 책을 읽었던 기억도 못한다는게 참.. 

내 작가가 되기까지 한 권 더! 필요한걸로 알고, 얼른 로건 멕레이도 다카기 아키미쓰도 읽어버리겠다. 

그리고 또 까먹으면, 뭐, 또 한 권 더! 하는거지 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춘 시절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파트릭 모디아노의 책들을 좋아했다기보다 파트릭 모디아노와 파트릭 모디아노를 소개하는 김화영의 번역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 호기심에 읽게 된 정도였다고 생각한다. 여튼, 별로 가리지 않고, 싫어지지 않는 이상 꾸준히 읽는 습관에 따라 읽어왔다. 다른 것들보다 그 몽환적인 분위기. 라고 할만한 정도만 기억하고 있다. 


그 파트릭 모디아노가 노벨상을 탔고, 발표가 난 날 기념으로 산 책은 '도라 부루더' 였다.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그 때 파트릭 모디아노를 좋아하는 번역가 한 분이 자랑하며 내 놓은 파트릭 모디아노 베스트에는 '청춘시절' 구판이 들어 있었다. 나는 그 책을 읽고 싶었지만, 물론 절판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꽤 인기 있는 작가이기도 하고, 노벨상 버프까지 받았으니, 그의 절판본들과 번역되지 않았던 책들이 속속들이 나와 그럭저럭 구할 수 있는 책들은 거진 읽었던 상태에서 안 읽은 책들이 더 많은 상태가 되어 버렸다. 


다른 궁금한 책들을 제쳐두고 주문한 '청춘 시절' 


서른 다섯살 생일을 맞는 루이와 오딜이 어느 순간, 파트릭 모디아모의 소설 속 주인공들이 늘 그렇듯이 그 옛날의 노래가 들리며, 희뿌연 날씨 속에 문득 청춘, 스무살을 앞두던 그 시절로 가는 기차에 탑승하게 된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을 묘사할때 곧잘 이야기되곤 하듯이, 주인공들은 안개 가득한 거리를 헤매이고, (주로 파리 의 거리) 주변 인물들은 안개로 안 보이다 툭, 툭 시야에 나타났다가 나타났던 것처럼 사라진다. 그런 분위기. 


여기 청춘시절은 가난하고, 무력하고, 도와줄, 도와주는 사람들의 말에 수동적으로 따르고, 겁나 하고, 불안해 하지만, 새로운 것을 볼 때마다 감탄하고, 즐기기도 한다. 


그리 길지 않은 '청춘시절'을 덮고,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을 찾아 다시 서른 다섯살로 돌아가 처음부터 읽으며 그 구절을 찾아 옮겨둔다.  


오딜은 주머니를 두져 10프랑짜리 지폐 석장과 2프랑 85상팀을 그러모았다. 오후가 기울어갈 무렵이면 루이는 동네 건물들을한 바퀴돌아 우유 1리터, 빵,그리고 햄 몇 조각을 사오곤 했다. 그는뮈게 호텔에 전화를 걸었다. 브로시에는 다음주나 되어야 돌아온다고 했다. 

배고픔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 그들은 잠을 자거나 가능한 한 오랫동안 누워 있었다.그들은 시간 개념을 상실해갔다. 만약 브로시에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절대로 방에서 나가지 않은 채 침대에 누운 그대로 음악을들으며 차츰차츰 표류해 갔을 것이다. 외부세계에 대한 마지막 영상은  네모난 창틀 속으로 진종일 쏟아지던 눈송이들이었다. 

 

네모난 창틀 속으로 진종일 쏟아지던 눈송이들.의 풍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물선 2015-01-09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화영님께서 모디아노 낭독회를 프랑스문화원에서 하신다는데...^^

하이드 2015-01-09 11:39   좋아요 0 | URL
전 듣기보다 읽기에 강해서 ^^ 낭독을 듣는건 뭔가 맘이 어수선해지고 그렇더라구요. 성격이 급해서 그런가봐요.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 어려운 시대에 안주하는 사토리 세대의 정체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이언숙 옮김, 오찬호 해제 / 민음사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저자 후루이치 노리토시의 다음 책이 나온다면, 꼭 한국에도 소개되었으면 좋겠다.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이란 제목은 해제를 쓴 '우리는 차별을 찬성합니다'의 오찬호의 말대로 우리나라에서 오해하고 혹은 알면서도 써먹기 딱 좋은 말이다. '힘들어도 열심히 해서 행복을 찾아라' 라는 식으로 말이다. 작정하고 오해하지 않는한 제목 그 자체만으로도 질문과 답없는 답을 내준다.


'요즘 젊은이들 발칙해' 라는 흔해빠진 말로 시작하는데 '젊은이'는 무엇인가, '젊은이론'부터 시작해서 부제인 '어려운 시대에 안주하는 사토리 세대의 정체' 에 대해 풀어나가고 있다. 그리 길지 않으면서 꽉꽉 차 있고, 수치만 좀 바꾸면, 그대로 우리나라의 이야기인지라 정말 빠져들어 읽었다. (가장 충격적인건 지은이의 맺음말 이었다.) 


'청년'은 39세까지가 법적 청년이라고 한다 '청년'과 '젊은이'는 비슷하게 많이 쓰이는데, 그렇다면, 나도 아직 청년이고, 젊은이이다. 어째 당신이 젊은이요. 라고 묻는다면, 이 책에 나온 '1억명이 모두 젊은이' 라는 말에 따르면 나 역시 젊은이인 것이다. 

그러니 이건 '젊은이' 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모두가 읽어야할 이야기이다. 


세대간의 갈등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고, 점점 악화되면 악화되었지 나아질일이 없으니 심각한 문제이다. 아기가 태어나서 젊은이가 되기까지, 생산인구, 현역이 되기까지 한두해 걸리는 일도 아니라 무슨 수를 써도 당장 해결될 수도 없는 것이라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있겠지만, 약 2000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에게서 공통점을 찾아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일이다. 거기에는 남녀 차이도 있고 지역 차이도 있으며 빈부의 차이도 존재한다. 물론, 이러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면서도, 하나의 세대로서 '젊은이'에 대해 논의하려고 했던 것이 젊은이론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논의는 더 이상 진행할 수 없게 되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중산층 붕괴론과 격차사회론이 유행하기 시작한 탓이다. 이제 '1억 명 모두가 중산층' 이라는 말이 무의미해진 것이다. 


바꿔 말하면, '세대 내부에는 격차가 없다'라는 전제가 있었기 때문에 '젊은이'에 대한 논의가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전제가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젊은이론'은 큰 위기를 맞게 되었다. 

 


세대간의 문제보다 계층간의 문제가 더 크다. (격차사회) 이런 전제를 깔고, 그러나 이 책은  이 엄혹한 시대에 행복도가 훨씬 더 높아진 젊은이들에 관한 이야기이므로, 젊은이들에게 포커스를 맞추어 그들이 왜 행복한가.를 짚어보고 있다. 


저자는' 요즘 젊은이들 발칙해' 라는 흔한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모든 이야기에 수치와 역사와 논리와 예시를 보여주고 있다. 점점 힘들어지고, 모든 수치와 현재를 볼 때 점점 더 힘들어지는 절망의 나라의 그 중에서도 더 힘든 젊은이들의 행복도가 점점 더 높아지는 것은 왜인가. 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책이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리 없다." 라는 생각이 들 때, 인간은 "지금 행복하다."라고 생각한다. 이로써 고도성장기나 거품경제 시기에 젊은이들의 '생활 만족도'가 낮게 나타났던 이유가 설명된다. 말하자면, 그 시기의 젊은이들은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것이다."라고 믿었다. 더불어 자신들의 생활도 점차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도 품고 있었다. 따라서 지금은 불행하지만, 언젠가 행복해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소박하게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것이다." 라는 생각을 믿지 않는다. 그들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은 그저 '끝나지 않는 일상'일 뿐이다. 그래서 "지금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었을 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외국계 은행을 8년 다녔고, 자영업을 4년간 해보고 작년 여름 경에 접고 지금은 프리랜서로 작업실에서 일을 하고 있다. 회사도, 가게도 프리랜서도 다 하고 있는셈인데, 돈은 점점 덜 벌게 되었지만, 마음은 점점 편해졌고, 작업실로 나온 지금은 황송할만큼 시간을 벌고, (돈은 못 벌고) 매일 매일 행복한 거리들을 발견하며 만족하고 있는 지금 시점에, 생각해 볼만한 이야기였다.  


회사를 다니며 돈을 많이 벌어도, 부모한테 지원 받지 않는 이상 번듯한 집을 사고, 번듯한 직장을 다닐 일은 없다. 직장생활과 자영업 생활의 사이클에서 벗어난 나같은 사람 외에도 


아둥바둥 살아도 안 되는 체념의 분위기 속에 일에 내 시간은 물론 내 영혼과 자존심, 혹은 자존감까지 바치며 쳇바퀴 돌듯 일해도 안 되는거라면, 지금 이순간을 즐기며 소소한 행복을 찾는 것이 맞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는데, 


그게 바로 '희망'이 없어져서라니. 다양한 케이스가 있겠고, 나의 이야기도 꼭 맞는다고는 할 수 없으나 분명 맞아떨어지는 부분도 있다. 나는 '희망'이란 말보다 '욕망'이라고 바꾸고 싶긴 하다. 욕망을 버리니 소소한 행복이 보인다. 라고. 


저자가 두번째로 드는 이유가 '컨서머터리' 이다. 


행복한 젊은이들의 정체는, '컨서머토리'라는 용어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컨서머토리란 자기 충족적이라는 의밀, '지금 여기'라는 신변에서 가까운 행복을 소중히 여기는 감각을 말한다. 딱 이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듯싶다.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매진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과 어울려 여유롭게 자신의 생활을 즐기는 생활 방식이라고 바꿔 말해도 좋을 듯하다. 다시 말해, 미리 '더 행복한 미래'를 상정해 두고 그것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아주 행복하다.'라고 느끼면서 사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지닌 젊은이들의 증가, 바로 여기에 '행복한 젊은이'의 정체가 담겨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뜻이 맞는 사람들간의 공동체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 때문이 아니라 이 나라가 절망적인데, 지금의 행복을 찾는 것이 나쁘단 말인가? 라는 생각도 든다. 


젊은이들은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수적으로도 노년층/장년층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고, 적기도 한데, 투표율마저 저조하다. 그러니 정치에 목소리를 내지도 않고, 무시당하며 더더욱 악순환에 들어가는거다. 


이 책에서는 젊은이들의 정치, 사회 참여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희망 없이,뜻이 맞는 작은 공동체에서 즐기는 것으로 더 단절되고, 무시당하는 것 아닌지. 하지만,그런 각종 신문 칼럼 등에 나오는 '패기없는 젊은이론' 은 몇가지 조사를 보면 사실이기도 하고, 사실이 아니기도 하다. 저자는 이 책을 2010년에 쓰기 시작했고, 그 다음해에는 3.11이 있었다. 3.11은 많은 일본 사람들의 세계관과 생활가치를 바꾼 일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젊은이들의 참여는 과거보다 결코 낮아지지 않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쯧쯧' 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소극적이지만,  


아마도 이것은 일상의 답답함을 깨뜨려 줄 많나 매력적이고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출구'를 좀처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 이대로는 안 된다. 그렇지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품은 젊은이들이 ㅁ일 수  있는 간단 명료한 '출구'가 있다면, 젊은이들은 기꺼이 그 문을 박차고 들어갈 것이다. 


사람들이 행동을 시작하고, 그것이 대규모 운동으로 이어지는 계기. 바로 그들이 지닌 가치관이나 규범의식이 침해당했을 때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앞서 2장에서 서술했듯이, 젊은이들의 가치관은 더욱 컨서머토리화하고 있다. 무언가 높은 대상을 향해 분발하는 것이 안라, 친구 간계 등 자신과 가까운 세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의식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렇게 도면 아무리 '격차사회'라든가 '블랙 기업'이라고 시끄럽게 떠들어 대도, 젊은이들 스스로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생각하는 한 대규모 시위 따위는 발생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그러나 바꿔 말하면, '자신들의 사회'가 침해도거나 '자기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세계가  지적을 당했을 때는 어떤 움직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중국에 농촌과 도시 호적이 따로 있다는 것을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농공호적을 가지고 도시에 일하러 오는 사람들을 농공민이라고 한다. 책에서는 농촌에서 도시로 와서 하층민 생할을 하는 농공민과 도시에서 태어나 일자리를 못 찾아 고생하는 개미족들을 비교해서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농공민의 행복도가 개미족보다 높다. 


격차사회의 농공민이 바로 젊은이들.인 것은 아닌가. 라는 물음을 보다보면, 지금 이렇게 행복해할때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이등시민이 되어 버리는 것이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해' 라고 하고 있을 때인가 싶은거다. 


근대  사회는 국민의 평등을 부르짖으면서도, 언제나 '이등 시민'을 필요로 해 왔다. 예를 들어,일본을 포함한 근대 국가는 '이등 시민' 의 역할을 계속 '여성'에게 부과해 왔다. 남성은 열심히 노동하여 한 가정을 먹여 살리는 대들보가 되고, 여성은 육아와 간병등 가사를 통해 남성을 돕는, 이른바 '브레드위너 모델(breadwinner model)'이 형성된 거이다. 그러나 남녀평등을 촉구하는 주장이 등장하고 노동력 부족 현상이 현저하게 나타나면서, 유럽은 여성의 사회 진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동시에, 값싼 노동력 확보를 위해 '이민'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민 노동자의 수용을 지속적으로 거부해 온 일본은 '여성' 에다가 '젊은이'까지 '이등 시민'으로 만들어 버릴 기세다. 

이미 일본 젊은이의 '이등 시민화'는 진행되고 있다. '꿈'  혹은 '보람'이라는 말로 적당히 얼버무리면 젊은이야말로 저렴하고 해고하기쉬운 노동력이라는 점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이대로 간다면 일본은 '느슨한 계급 사회'로 탈바꿈하게 될것이다. '일등 시민'과 '이등 시민'의 격차는 점진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일부 '일등 시민'은 국가와 기업의 의사를 결정하는 데 분주할테지만, 다른 수많은 '이등 시민'은 태평하게 하루하루의 삶을 소일하는 그런 구도가 만들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사람들이 불행한 사회라고 단정할수는없다. 예컨데 최저 시급이 300엔 정돌낮아진다고 해도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소한의 생활'을보증하는, 가령 Wii나 PSP를사람들의손에 쥐어주기만 하면 폭동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젊은이들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글을 썼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마지막에 어떤 종류의 장미빛 결론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역사는 다른 옷을 입고 이렇게 계속 되풀이 되고 있고, 그러므로 아직 이러이러한 다른 선택지들이 남아 있다.


역사적으로 봐도, 지금 시대의 일본은 그리 열악하지 않다. 돌아가야 할  '그때'도 없고, 눈앞에는 처리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게다가 미래에는 '희망'조차 없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 달리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왠지 행복하고 왠지 불안하다. 우리들은 바로 그러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절망의 나라에 사는 행복한 '젊은이'로서. 


왠지 행복하고 왠지 불안하다 는 이도저도 아닌 결말 같지만, 그 이도저도 아닌게 작금의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행복하거나 불행한 것과 모르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리뷰에 인용도 많고, 두서없이 길어졌지만, 이 외에도 할 이야기가 많다. 책에서 확인하시길. 

아, 내가 에필로그에서 가장 놀랐다고 했던 부분은 맺음말에 '스물 여섯해를 살아오면서' 라는 문구. 젊은 사회학자. 정도로 생각하고 읽었는데, 이 책을 스물 여섯에 썼다니. 그야말로 '젊은이' 이다. 옮긴이가 썼듯이 기본이 확실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쉽고 정확하며 다양한 자료와 분석에 감탄했는데, 나이가 없어도 대단하다 생각했는데, 나이 알고 보니 기가 막히다. 

저자의 다른 책이 나온다면 꼭 읽어보고 싶다. 
이 책을 읽고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반의 반도 못 쓴 것 같다. 나머지는 책에서 확인하시길. 



댓글(0) 먼댓글(1)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후루이치 노시토리가 재미있는 점
    from 책과 고양이와 이대호 2015-01-10 01:31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의 저자 후루이치 노시토리가 젊은이들이 행복한 이유로 든 두가지 이유는 첫째로 '미래가 더 나아질 것이라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구소련에 이런 농담 아닌 농담이 있었다고 한다. "안녕, 오늘 하루는 어때?" "응, 내일 보다는 나아." 섬찟한 이야기이다. 지금의 우리 이야기이고,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의 절망의 나라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두번째로 든 것이 '컨서머터리'다. 자기 충족적. 지금, 여기 동료들과
 
 
 

사회 담론을 만들어내는 책들이 있다. '88만원 세대'라던가, 피케티의'21세기 자본'이라던가. 

이 책도 그런 조짐을 보인다. 어젯밤에 잠깐 읽기 시작했는데, 상당히 흥미롭게 잘 읽힌다. 
어떤 이야기를 할지는 역자서문, 저자의 한국판 서문과 프롤로그에 잘 나와 있지만, 어떻게 이야기할지 궁금해 단숨에 읽어낼 것이다. 

2010년에 방송된 대하드라마 '료마전'에서 오카다 이조로 분했던 사토 다케루(당시 21세, 사이타마 현)는 에도바쿠후 말기와 현대를 비교하면서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절대로 에도바쿠후 말기가 아닌 현대에 태어나고 싶다."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칼로 사람을 베야만 살아나을 수 있었던 바쿠후말기의 상황과 달리, 요즘 시대는 "1박 2일 일정으로, 친구들과 함께 바비큐를 먹으며 지바로 가는 행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카모토 료마처럼 유신이라는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싶은 것이 아니다. 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영웅으로 칭송받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사토 다케루에게 중요한 것은 그런 영웅주의가 아니다. 단지 "1박 2일 일정으로, 친구들과 함께 바비큐를 먹으러 지바로 가는" 작은 행복인 것이다
사토 다케루의 발언이 상징하는 바대로, 요즘 젊은이들이 품고 있는 생각은 바로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 및 작은 행복을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관이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것이다." 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일본 경제의 회생 따위는 바라지도 않는다.혁명 역시 그리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성숙한 현대 사회에 잘 어울리는 삶의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젊은이들이 행복하다."라고 잘라 말할 수 있을 만큼 상황이 간단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인프라와 생활 환경의 측면에서,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그 어느 시대보다도 최고의 '풍요' 속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
오늘날 일본의 젊은이들이 아무리 '나는 행복하다.'라고 생각해도, 그 '행복'을 지탱해 주는 생활 기반은 서서히 썩어 들기 시작해다. 그리고 어떤 측면에서는, 이처럼 '뒤틀린' 사회 구조 내부로부터 젊은이들 스스로 자신들이 행복하다고 여기는 '기묘한' 안정감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많은 면에서 우리나라를10- 20년 앞서가고 있어서 2001년에 나온 이 책은 여전히 우리의 현재이고, 미래이다. 다시 뒤져보지 않아도 머리에 쏙쏙 박히는 몇가지 팩트들은 일본보다 더욱 암울한 우리나라의 상황을 짐작케한다. OECD 국가들 중 젊은이들의 자살율이 지난 10년간 가장 높다거나, 노인빈곤률이 OECD 국가들 중 압도적으로 1위라던가. 일본의 평균 연령이 45세이고, 한국은 38세로 젊은 나라이지만, 우리나라의 노령화 속도는 일본의 그것보다 훨씬 어마어마하다는 거.    


이와 같은 세대 문제에 자유로운 연령대는 없을 것이다. 젊은이도, 노인도. 이이슈와 관련되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페이퍼 제목으로 적은 '절망의 나라 불행한 젊은이들' 은 한국 젊은이들을 말한거지만, 이 책의 제목은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이다. 서문에 힘들어도 만족하고 소소한 기쁨을 찾아라. 라는 이슈로 이용될 수 있다는 이야기에 놀랐다. 절대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은 한국에서 오해받기 딱 좋은 책이다. 제목만 보면 '힘들어도 행복을 추구하는 젊은이가 있다!"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지 않는가? 이것은 '고난을긍정적으로 이겨 내는 스토리'를 과하게 좋아하는 한국 사회의 특징과 무척이나 어울린다. 그래서 이 책은 사회에 대한 절망감에 행복해하지 않는 젊은이들에게 '불평 좀 하지 마라.'라면서 권장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물론 이 책은 그런 '주술적'인 내용이 아니다. 

노리토시의 사회학적 시대 진단은 간단하다. 첫째, 일본 사회는 절망적이다. 둘째, 일본 사회에 자기 스스로 행복하다고 여기는 젊은이들이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그리고 이 둘은 서로 인과 관계로 엮여 있다. 즉, 절망적인 사회 덕택에 개인이 행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럼 다음 질문이 가능하다. 아니, 사회가 뒤틀렸는데, 어떻게 스스로 행복하다고 여기는 '기묘한' 안정감이 가능하지?


노리토시는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그가 발견한 젊은이들의 '행복'은 '희망적인 미래'를 기대하지 않기에 가능하다. 쉽게 말해, 미래를 포기 했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지다. 


  

저자가 제시하는 결말과 제안도 상당히 현실적이라 읽어나가면서 실망하지 않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