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허기지십니까?
바다로 가십시오.
바다로 가실 몸과 마음의 여유가 안 되십니까?
한창훈의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를 읽으십시요. 이열치열, 이한치한, 엎친데 덮치고 메친다고,
엄청나게 허기져집니다. 왜 내 인생은 이다지도 허기져서, 그깟 책을 보고, 수 많은 바다 먹거리에 헉헉대는 걸까요.
알라딘과 문학동네에서 주최한 작가와의 만남, 한창훈 작가와의 인천 바다낚시에 다녀왔습니다.
처음 뵌 한창훈 작가님은 사진에서와 똑같았고, 눈이 빤짝빤짝 빛났습니다.
날밤 새고, 스무시간 쯤 안 자고 온 저는 동태눈깔이었을 꺼에요.
첫 낚시였습니다.
예사롭지 않은 제목에 신간체크를 해 두었으나, 작가님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전 '바다에 나가서' '물고기를 잡아서' '배 위에서 '먹는다' 는 것에 낚였을 뿐.. 이고요.
이전에도 말했지만, 아무 생각 없고, 그냥 야외에서 물고기 잡아 먹는 일만 생각했어요.
인천 남항부두에 도착하여 배들을 앞에 두고, 우리가 탈 배 '덕적호'를 기다리며 그 때부터 어찔어찔 멀미 날 것 같은 기분었지요. 배가 생각보다 작고, 난간은 무릎까지 밖에 안 와 수영도 못하고, 물도 무서워하고, 균형 감각도 없고, 운동신경도 둔하며, 고소공포증까지 있어서 흡사 마라톤 10km 뛸 때 한 5분만에 숨이 턱에 차서 어이쿠, 큰일 났다 싶은 그런 초반이었습니다. 2층에 자리잡고 앉아 옛날과자 담아 나눠준 종이컵을 꽉 쥐고 있을 때까지만 해도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어요.
그러나, 단순하고, 적응력 짱인지라 쉬이 익숙해졌다죠. 아마도.
이 날 일행 중에 유일하게 '먹을만한' '광어' 라는 물고기를 낚아 MVP 도 되었답니다.
거 참 저답지 않게시리 말입니다. 하하
처음 해 본 바다낚시는 그랬습니다.
낚시가 운동 안 된다고 누가 그랬나요?!
다음날 왼쪽 반신 마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타고 나간 바다 낚시는 5분에 한번씩 배가 움직이고,
주먹만한 봉돌( 쇠! 추!)을 단 낚시줄을 바다 바닥까지 닿도록 드리웠다 감아 올렸다를 끊임없이 반복해야 하는
힘 쓰는 일이었습니다.
배가 멈추면 낚시줄을 푼다. 바닥에 닿으면 (줄이 다 풀리면) 잽싸게 잠근다. 잠그고 나면, 감아 올릴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그러면 봉돌로 바닷바닥을 톡톡치며, 어이, 바다의 바닥아, 어이, 바다의 바닥아,
어이, 어이, 눈 먼 물고기야, 하며 물고기를 낚는 것이지요.
그 전에 미끼는 미꾸라지
미꾸라지 피가 빨갛다는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물고기는 미꾸라지 머리부터 먹기 때문에 아가미 다치지 않게(그래야 오래 안 죽고 버틴다네요) 머리 쪽에 바늘을 잘 꿰어야 합니다.
저는 손을 움직이는 일을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왠지 대단히 게으른 멘트다;;)
낚시줄에 채대라는 것을 달고, 끈을 묶고, 봉돌을 달고, 미끼를 꿰는 일련의 행위를 넋을 놓고 보다
작가님께 물어봤습니다.
이거는 뭐라고 부르나요? (아마 저의 첫질문)
' ... 바늘이요.'
.............
' ... 낚시 바늘이요.'
아.. 네.
하도 심오하게 손을 놀리셔서, 낚시 바늘에 뭔가 심오한 이름이 있을 것 같았어요.
생계형 낚시꾼..이라고 들었는데, 의외로 고운 손이라 조금 놀랐지요.
물고기는 잡히지 않았어요.
작은 우럭이 잡혔지만, 작아서 다 놔줬어요.
바다와 하늘과 섬을 보며 봉돌로 바다 바닥을 두드리고 있자니
'아무것도 낚지 않아도 좋을 것 같은' 마음이 되었습니다. ( 사실, 살아 있는 물고기 완전 무서워함)
나는 누군가 .. 여긴 어딘가..
나는 아마 인천 앞바다 물고기들에게 미꾸라지 먹이 주러 온 것이 틀림 없어.
나는 아마 채비 장수들 먹여 살리려고 끊임없이 채비를 끊어먹으로 온 것이 틀림 없어.
나는 아마 ... 그냥 물고기 말고, 물을 낚으러 온 걸지도 모르고..
유일한 남자독자 한 분이 말씀하셨지요.
'저는 괜찮습니다. 물고기를 낚으러 온 것이 아니라, 작가님을 낚으러 왔으니깐요.'
저까지 세 명의 독자가 참가했어요. 저만 먹을꺼에 눈이 어두워 냅다 열렬히 신청한 날라리 독자고, 이 남자분,
그리고, 인천에 사시는 바다 낚시 경험 있는 여자분은 열혈팬분이셨죠. 그 분이 한창훈 작가님의 모든 책표지를 모아 폴라로이드로 사진 찍어 놓은 것을 보고 다들 놀랐어요. 속으로 알라딘 칭찬했어요. 잘 뽑았어요, 알라딘, 참 잘 했어요.
왼쪽은 제주도인가에 가서 이 책을 읽었다는 소감, 오른쪽은 작가님 사진을 죄다 모아 놓고 찍은 사진
남편분이 더 좋아하신다고. 부부가 다 한창훈 작가님 팬이시라고 하는데, 왠지 감동스러웠어요. 훌쩍
다시 바다로 ...
물고기도 안 잡히고, 배도 고프고, 힘도 들고,
배고파요! 라고 속으로 말한 것 같은데, 어떻게 다들 듣고 라면 주문했다고 이야기한 걸 보면
입밖으로 말했는지도...
처음에 생각했던, 우아하게 낚시대 드리우고 있다가 물고기 쓩쓩 낚아서 그 자리에서 회쳐서 먹는 그런 그림은 절대 나오지 않았어요. 바닷바람에 헝클어진 머리 .. 낚시 바늘에 꿰어 꼬블탕꼬블탕 괴로워하는 미꾸라지들, 낚시대를 어리버리하게 잡고, 낚으라는 물고기는 안 낚고, 땅에 걸린 바늘을 빼내기 위해 삐질삐질 땀을 한양동이씩 흘리며 물고기 아닌 바다 바닥과 사투나 하고 (이게 바로 다음날 엄청난 근육통의 원흉!) , 그 외의 시간에는 멍 때리며 엄마 생각... 한 건 아니지만 ^^; 무튼,
전날 낮술 (적절하게 동태찜과 탕을 먹었지요) 의 해장거리가 잡히기를 바라며
'해장물고기' '눈먼물고기'를 번갈아 주문처럼 속으로 외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라면과 김밥
... 많지요? 전 봤어요. 면을 잔뜩 제 그릇에 올리시던 작가님
전날 술을 드셔서 국물이 더 땡기셨던 걸까요? 아님 제가 배고프다고 찡찡대서였을까요? 후자로 생각하기로 했어요.
무튼, 어우, 많네. 하며 다 먹었어요. 김밥 한 줄 가지고 에고이스트님과 나눠 먹자고 해 놓고
다른 김밥까지 가져와 더 먹었어요.
그리고 다시 바다 ..
그리고 거의 집에 갈 무렵 ( 이 날 고기가 잘 안 잡혀서, 선장님이 평소보다 더 오래 바다에 있었지요)
제가 광어라는 걸 낚았구요. 하하하하하하
정신도 차리기 전에 문학동네 출판사의 예쁜 직원분들이 ' 회 떠도 .. 어쩌구 저쩌구' 하더니
어느새 우리 앞에
예쁜 광어회가 차려졌어요.
아홉의 배수로 떠 달라고 했는데, 광어가 워나아아아아아아악 크다 보니, 저렇게 많이 나왔어요.
적어 보이신다고요? 이건 낚시꾼의 뻥이 아니라, 저 접시가 완전완전 컸어요 ... 아, 물고기 뻥은 평소에 안 쳐봐서 어떻게 치는 건지 모르겠네요. 광어 잡았을 때 옆에서 작가님이 뭔가 배꼽 빠지는 얘기를 했는데, 까먹었구요.
이렇게 이야기해볼께요. 선장님이 저보고 광어 들으라고 하고 사진찍었어요.
인천 남항부두에서 '덕적호'를 타시는 분이 계신다면, 사무실에서 한 번 찾아보세요.
사무실에 광어 든 하이드가 광어 아가미에 손을 꿰고 덜덜 떨고 있는 사진이 있을지도 몰라요.
광어를 한껏 앞으로 내밀었으니, 얼굴은 작아보이고, 광어는 커보였길 바래보아요.
마지막에 광어 잡아서 다행이에요.
정말이지 어이가 없는 한 편, 기쁘기도 하고, 강기사에게 문자를 보냈어요.
'엄마! 나 광어 잡았어!!'
강기사가 답문을 보냈어요.
' 회 잘쳐먹고와라'
회를 잘 쳐서 먹고 오란 얘기겠지요? 설마 딸래미한테 회를 '처먹고' 오라고 할 교양 없는 강기사는 아니니깐요.
무튼, 잘 먹고 오라는데도 뭔가 기쁘지만은 않은 묘한 기분
소주가 없을뻔 했는데, 내가 마음속으로 마구 텔레파시 보내서, 누군가 소주 이야기를 했고,
한 병을 어디선가 가져왔어요. 종이컵 몇개와
MVP라고 작가님께 제일 먼저 술잔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깐, 할 껀 다 했지요? 후훗 - 제가 오기 전에 그려 봤던 건 다 했어요. 딱 하나만 빼구요.
에이, 좀 더 따라주세요.
하고, 술잔이 돌고, 종이컵이 모자라 작가님한테까지 술잔이 안 가고, 건배를 하려는 즈음에
저는 이미 꼴딱꼴딱꼴딱 (소주 세잔 분량이였나봐요) 원샷을 하고, 작가님께 술잔도 돌렸어요.
아쉬운 거 하나는 책에 회 뜨는 장면이 그마이 많이 나왔는데, 작가님이 회 뜰 준비도 되어 있었건만
홀랑 회를 떠 와 버린거죠. 이거 빼고는 정말이지 의외로 상상하던 그림이 다 나와버렸죠. 아니, 그 이상이 나왔죠.

돌아오는 길에 드디어 날이 추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은 도시의 하늘보다 더욱 빨갛게 물들어 바다로 녹아들었습니다.
낚시 다녀와서 반 정도 읽었던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를 마저 읽었어요.
이번에는 한창훈 작가님의 목소리가 오버랩 되더군요.
작가님이 계시는 거문도는 여수에서 두시간 반 정도 배타고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런날이 안 오는 것이 아마 더 좋은 건지도 모르겠지만, 팍팍한 일상에 쪽쪽 빨려 영혼이 허기질 때
어쩌면 '바다'에 가서 재충전할 수도 있겠다는 보험을 들어두었어요.
오늘 아침, 책을 마저 읽고, 책에 나오는 이 맛있는 것들을 못 먹다니, 왠지 막 신경질이 날 지경이었지만 ^^;
책 읽고, 배고프세요. 허기지세요.
그리고 나서.
마음 속에 '바다'라는 보험 하나 들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