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보일드 에그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6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레이먼드 챈들러 소설의 주인공 필립 말로처럼 코트 자락 휘날리며 사건을 멋지게 해결하고 하드보일드한 삶을 꿈꾸는 탐정 슌페이. 정작 현실은 잃어버린 애완동물을 찾아주는게 탐정 일과의 전부이다. 여비서와의 로맨스를 꿈꾸며 모집을 했지만 결국 슌페이 옆에는 독특한 캐릭터의 할머니 아야가 있게 된다. 애완동물을 찾아주는 일로 소소하게 지내다 시베리안 허스키 '꼬맹이'를 만나게 되면서 항상 꿈꾸던 진짜 살인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한다.

 

캐릭터들이 통통 튀는 것처럼 살아 있다. 장점이라곤 큰 키밖에 없는 주인공 슌페이나 허풍만 늘어놓고 사건 수사에 도움은 안되지만 가끔 중요한 단서들을 물어다 주는 아야 할머니. 자신을 괴롭히는 것같은 아야 할머니에 대한 짜증도 어느새 걱정으로 변하며 둘이 점점 친해지게 되는 걸 보면서 흐뭇해지기도 한다.

 

코지 미스터리는 처음 접해봤는데 그동안 오해 아닌 오해를 했었나보다. 잔인한 살인 사건을 다루는 소설에서 유머 코드를 삽입해 이야기를 풀어간다는게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었다. 묵직한 무게감과 강력한 포스로 무장한 미스터리 소설들의 주인공들은 어떠하고... 미스터리 소설들은 무조건 심각해야 된다는 나의 안일한 생각을 무참히 깨준 <하드보일드 에그>. 살인 사건과 어울리지 않을 법한 유머 코드로 보는 내내 픽픽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작가가 작정하고 쓴 듯한 상황들은 슬랩스틱 코미디를 생각나게 하기도 했다. 우연의 연속으로 만들어진 사건 해결은 조금 아쉬운 부분으로 남지만 참기 힘든 웃음과 마음 짠한 휴머니즘까지 아우르며 나를 웃기고 울렸다. 

 

재작년이던가... 홍대 와우북 페스티벌을 갔다가 단 돈 이천원 주고 산 책이다. 싼 가격에 혹했고 내가 좋아하는 노란색의 표지가 인상적이어서 얼른 집어 들었던 생각이 난다. 책의 내용을 값어치로 따질 순 없지만 제 값을 주고 샀더라도 아깝지 않을 책이었다. 요즘 우울하던 일상이었는데 그런 나에게 조금의 위안이 되주었던 소설이라 내게로 와준게 너무 고마워진다. 그리고 마침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을 구입한 참이었는데 필립 말로가 우상인 슌페이때문에 얼른 만나 보고 싶어졌다.

 

 

p.153

"하드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어. 부드럽지 않으면 살 자격이 없고."

 

p.333~334 

살다 보면 피해 갈 수 없는 길 앞에 서는 일이 있다. 지금의 내가 그러했다. 하드하지 않더라도, 살 자격이 결여돼 있더라도, 나는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계속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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