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라는 참 이상한 일 - 어이없고 황당하고 늘 후회하면서도 또 떠나고야 마는
한수희 지음 / 인디고(글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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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동남아나 일본은 꼭 여행을 했다. 그리고 그 여행만을 위해서 일상을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여행을 좋아했다. 아! 물론 지금도 좋아한다. 그런데 지난 긴 추석 연휴 동안 대만을 두 번째 갔다 온 후에는 여행이 점점 싫증나기 시작했다. 두 번째 갔을 때 느꼈던 건, 아시아 어디를 가도 다 비슷하다는 느낌이랄까. 태국이나 대만이나 말레이시아나 마카오나.... 많이 다르지만 비슷하게도 느껴지기 시작했고, 태국 말고는 두 번 이상 가고 싶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낯선 곳에서 자면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서 오히려 여행을 가면 더 피곤해지는 내 스타일 때문이기도 할 터이다.

 

어쨌거나 늙어가는건 그런게 아닐까 싶다. 부모님과 함께 해외여행을 가고 싶어도 부모님은 한국이 제일 좋다고 어디를 가냐고 하신다. 이제는 나도 공감이 된다. 혹은 너무 피곤하고 무미건조한 삶에 이제는 아예 적응이 되어버려서일까... 마치 쳇바퀴 속의 다람쥐 같이 살아서 주어진 자유가 낯설게 느껴져서 그런건가... 올해 내 나이 서른 셋이 막 되었는데 내 정신은 이미 노인이 되어 버린 기분이다.

 

간만에 겁나 재미나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읽은 책이다. 기어코 새벽 한 시까지 다 읽고 잠이 들었다. 애 둘 딸린 아줌마가 된 저자 또한 나처럼 이제는 좀 더 편한 여행, 혹은 아예 여행을 안 가는게 더 편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충분히 이해된다. 그런 저자의 소싯적 맘껏 여행하고 다닐 때를 회상하며 끄적인 글은 놀라울만큼 시니컬하지만 또한 놀라울만큼 재미있다. 어쩌면 글을 이렇게 맛깔나게 쓸 수 있을까?

 

한 가지 뼈저리게 공감하는 건 바로 제목이다. 내가 이토록 여행에 싫증이 나도 비행기를 타고 그 나라를 가면 또 좋아진다. 짐을 싸들고 공항버스를 타고 공항에 가서 발권을 하고.. 이 모든 과정들이 이제 조금 지겨워지고 옛날만큼 설렘이 없어진 배부른 투정을 했지만 잠깐이라는걸 안다. 여행이라는 건 그런것이다. 귀찮기도 하고 싫증이 나기도 하고 번거롭고 서러워도 다녀 오면 내가 그만큼 성장한 걸 느낀다.

 

여행에 대해서 아름답게 포장하지도 않았고, 억지로 신파를 끌어내지도 않아서 참 마음에 드는 책이다. 억지로 치장한 아름다움은 추하게 느껴질 뿐이다. 요즘은 이런 책이 워낙 많아서 가끔은 환멸이 느껴지기도 한다. 혹은 내가 점점 차갑고 냉정하게 변해가는건가 싶기도 하고. 그럼에도 내가 원하는 에세이는 이와 같은 약간의 조소가 겸비된 담백한 책이다.

 

맛있게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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